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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인쇄 다라니경 발견-대학입시예비고사제 실시-유성환 의원, 국시발언 파동-반정부학생데모로 타놈내각 총사퇴
![]() 타놈 끼티카쫀 [위키피디아]
1966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목판인쇄 다라니경 발견
다라니경은 서기 751년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현존 목판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 1968 문교부, 대학입시예비고사제 실시 발표
1986 유성환 의원, 국시발언 파동
1973 태국, 반정부학생데모로 타놈내각 총사퇴 --
타놈 끼띠카쫀(타이어: จอมพลถนอม กิตติขจร, 1911년 8월 11일 ~ 2004년 6월 16일)
타이의 군인, 정치가로 1931년 왕립사관학교 졸업 후 직업군인이 되었다.
그는 사릿 타나랏의 절친한 동료로 방콕 주둔 제1사령관이 되어 1957년 사릿 타나랏이 피푼 송크람을 몰아내기 위한 쿠데타를 일으킬 때 그를 지원했다.
1958년에 짧은 기간 동안 총리를 재임하고 1958년 말에 부총리 겸 국방장관이 됐다.
1963년 12월 사릿 타나랏이 죽자 뒤를 이어 총리가 되어 8번째 타이의 헌법개정안을 위해 기초할 의원들을 임명했고 1968년 6월 새 헌법이 제정했다.
1969년 2월 선거에서 타놈의 통일 타이 인민당이 승리해 계속 재임했고 공산주의자들의 폭동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전투부대를 베트남 전쟁과 라오스 내전에 파병했다.
1971년 11월 내각과 의회를 해산시키고 비상사태를 선포해 모든 정당활동을 금지시켰다.
1972년 12월 타놈을 총리 겸 외무장관으로 둔 채 임시헌법이 공포되자 1973년 10월 학생폭동이 일어났고 타놈은 학생시위대를 향해 군대가 발포해 수많은 학생들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군부가 타놈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 타놈 정부는 붕괴됐다. 이 후 타놈은 국외로 망명했고 1976년 10월 다시 은밀히 귀국했다가 2004년 사망했다.
-- 유성환(兪成煥, 1931년 8월 20일 경북 성주군-)
![]() 유성환 [출처: 경북 매일]
12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학력[편집]영남대학교 법정대학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
정치 역정[편집]4.19 혁명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사회대중당 소속으로 도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나, 이 후 제7대 총선부터 제10대 총선까지 연거푸 신민당의 국회의원 공천에서 떨어지고, 1981년부터 1984년까지는 정치활동 규제대상에 선정되는 등 고된 야당생활을 보낸다.
1985년의 제12대 총선에서 어렵게 당선되나(신한민주당, 대구 중·서), 이듬해의 대정부 질문에서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주의가 아닌 남북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하고(유성환 통일국시사건), 제13대 총선 출마도 좌절된다.
이 후 김영삼의 3당 합당에 합류해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에서 민자당 전국구로 재선 국회의원이 되고, 1997년의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인제를 지지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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