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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동화 마해송 타계-한소간 직통전화 4회선 개통-색소폰 발명자 삭스 태어남
![]() 마해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66 창작동화의 선구자 마해송 세상 떠남
1990 한-소간 직통전화 4회선 개통
1818 벨기에의 색소폰 발명자인 아돌프 삭스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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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송 [ 馬海松 ]
1905-1966. 아동문학가, 수필가.
이칭별칭 호 해송(海松)
유형 인물
시대 근대
출생 - 사망 1905년 ~ 1966년
성격 수필가
출신지 경기도 개성
성별 남
본관 목천(木川)
저서(작품) 바위나리와 아기별, 어머님의 선물, 토끼와 원숭이, 모래알 고금, 떡배 단배
정의
1905∼1966. 아동문학가·수필가.
개설
본관은 목천(木川). 본명은 상규(湘圭), 아명은 창록(昌祿), 호는 해송(海松). 경기도 개성 출신. 아버지는 응휘(應輝)이며, 7남매 중 4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개성제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개성간이상업학교를 거쳐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옮겼으나 1920년 동맹휴학사건으로 퇴학하였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예술과에서 수학, 졸업하자 곧 일본의 종합교양지 ≪문예춘추 文藝春秋≫의 초대 편집장을 거쳐 1930년에는 ≪모던니혼≫지를 발행하다가 광복 후 귀국, 1945년 송도학술연구회 위원장, 1950년 국방부 한국문화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6·25중에는 국방부정훈국 편집실 고문, 승리일보사 고문을 지내면서 평안북도 영변까지 종군하였다. 그 뒤 마을문고 보급회장, 대한소년단 이사 등을 지냈고, 1962년에는 서울특별시 시민헌장을 기초하기도 하였다.
그는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잡지 ≪여광 麗光≫의 동인이 되었고, 일본 유학 중에는 ‘일본유학생동우회극단’의 일원으로 국내 각지 순회공연을 하였으며, 1922년에는 문학클럽 ‘녹파회(綠波會)’를 공진항(孔鎭恒)·김영보(金泳俌)·고한승(高漢承)·진장섭(秦長燮) 등과 조직함으로써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3년에는 ≪새별≫지에 최초의 탐미적 창작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어머님의 선물>·<복남이와 네 동무> 등을 발표하는 한편, ‘송도소녀 가극단’을 도와 지방 순회를 하면서 자작동화를 구연하였다. 1924년 ‘색동회’에 가입하여 어린이를 위한 문화 활동을 계속하면서 ≪어린이≫지를 통하여 많은 동화를 발표하였다. 동화 창작은 1935년까지 꾸준히 계속하였다.
풍자적인 <토끼와 원숭이> 등의 중편과 많은 단편을 발표하였고, 광복 후에는 장편동화에 주력하여 <앙그리께>(1954)·<멍멍 나그네>(1959)·<모래알 고금>(1957∼1961) 등을 발표하였다.
한편, 아동문화운동에도 크게 관심을 가져 천주교에 귀의하기 전해인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기초하여 발표하였고, 또한 1958년 최초의 ‘어린이헌장비’를 대구에 건립하는 데 진력하였다.
1959년에 <모래알 고금>으로 제6회자유문학상을, 1964년에는 <떡배 단배>로 제1회한국문학상을 각각 수상하였고, 같은 해에 ‘고마우신 선생님’으로 추대되었다. 1965년에는 그의 회갑을 기념하는 아동문학집 ≪마해송할아버지≫가 나왔고, 1967년 1월에는 새싹회에 의하여 ‘해송동화상’이 제정되었으나 2회로 중단되었다.
저서로는 위에서 든 것 외에 소설 <홍길동>(1927)과 동화집 ≪해송동화집≫(1934)·≪토끼와 원숭이≫(1947)·≪떡배 단배≫(1953)·≪모래알 고금≫(1958)·≪멍멍 나그네≫(1961)·≪마해송아동문학독본≫(1962)·≪비둘기가 돌아오면≫(1962), 그리고 소설 <아름다운 새벽>(1961) 등이 있고, 수필집 ≪편편상 片片想≫·≪속편편상≫·≪전진(戰塵)과 인생≫·≪씩씩한 사람들≫·≪요설록 饒舌錄≫·≪오후의 좌석≫(1962) 등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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