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전우회와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을 겪는 환자

 
 
고엽제 전우회는 억울하다
 
 
웬만하면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정치 세력의 편을 들어주던 고엽제 전우회가 경천동지할 일을 벌였다. 전두환의 턱 밑인 연희동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인 것이다. 1984년도의 고엽제 피해 보상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묵살 조처로 피해보상이 무산된 것에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979~84년 미 연방법원에 제기된 고엽제 피해 배상 소송에 국내 피해자들도 참여했어야 했는데 전 전 대통령의 묵살로 못했다. 이제라도 사실 관계와 이유를 밝히고, 부정하게 쌓은 돈을 추징금으로 내놓으라”
 
한겨레신문의 보도는 이렇다.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의 베트남 참전 군인들은 미국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 1984년 1억8000만달러를 배상받았다. 한국 고엽제 피해자들도 뒤늦게 1996년 소송을 냈으나 미국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1984년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국인 고엽제 피해자의 존재를 감춘 탓에 배상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고엽제전우회의 주장이다.”
 
 
고엽제 전우회가 없는 말을 만들어 할 리가 없으니 참으로 후안무치한 정권은 쿠데타 정권인 것이다. 왜 고엽제 피해자들이 당연히 그 제조사로부터 받아야 할 피해보상금을 못 받게 훼방을 놓았던 것인가? 나는 여기에 쿠데타로 비롯된 독재 정권의 본질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엽제 피해자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거나 한반도 비무장 지대에서 근무 하다가 고엽제 피해를 입은 현역병 출신들이다. 내가 1971년도 시월에 입대하고도 불과 두어 달 차이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지 못하였으니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고엽제전우회원들은 나보다 군 선배들이 될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피 터지는 전투를 벌였던 나의 군 선배 하나는 삼십대 후반부터 탄탄하던 몸이 시름시름 하기 시작 하다가 연락이 끊겼다. 연락이 끊기기 전에, 몸놀림이 예전 같지 않다고 지적하는 나에게 그 자신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한숨을 쉬며 답답해하곤 하였다. 훗날 생각해보니 베트남 전쟁에서 고엽제에 노출돼 얻은 병이었던 것이다.
 
 
 
1969년도에 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도 반대하던 3선 개헌을 기어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 시키고 1971년 대통령 3선에 나선 박정희 후보는 김대중 후보의 기세를 90만 표 차이로 누르고 3선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이듬해 베트남 전쟁은 북 베트남 쪽으로 기울기 시작 하였다. 대략 십년에 걸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그 때 베트남전쟁에 참전치 못한 것은 미국의 패전이 가까워 졌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과 월남공화국의 패색이 짙던  1972년도 10월에 박정희 정권은 느닷없이 유신개헌을 선포 하였다. 살기 고달픈 국민들의 스산한 가을 저녁에 난데없는 홍두깨를 들이민 것이다. 동시에 국회등 국가기관과 대학교 등에 탱크를 주둔 시키고 그 날 저녁에 야당 인사들을 포함한 지식인, 대학생등을 불문곡직 대거 체포 하여 정보부, 군 정보부대등에 연행 하였다. 영문을 모르고 연행된 이후로는 사정없는 매 타작이 벌어 졌다. 가혹한 고문이 자행된 것 이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체제이며 그 체에 하에 정권 인 줄 알았던 국민은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동물에도 유전자가 있지만 정치권력에도 유전자는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라면 지론이다. 속성이라 해도 좋고 본질이라 해도 좋다. 그 날 저녁 난데없는 정부의 포고령에 국민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겠지만 놀라기는 왜 놀란단 말인가? 요컨대 쿠데타로 시작된 정권의 유전자가 아니었던가. 그것을 알면서도 선택한 것은 국민이다. 정권을 선택 해 놓고 뒤 늦게 후회 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유신정권은 우방국인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인정한 대로 철저한 독재정권 이었다.
 
 
1975년 4월 30일 쿠데타로 얼룩진 무능하고 부패했던 월남 정권은 패망 하였다. 미군은 베트남에서 철수 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북쪽의 김일성 정권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대하여 국가안보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당시 유신정권을 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던 대통령 박정희의 당시 일기가 훗날 공개 되었다.
 
<월남공화국이 공산군에게 무조건 항복. 참으로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한때 우리 젊은이들이 파병되어 월남국민들의 자유 수호를 위하여 8년간이나 싸워서 그들을 도왔다. 연파병수 30만 명. 이제 그 나라는 멸망하고 월남공화국이란 이름은 지도상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참으로 비통하기 짝이 없다.>
 
 
 
베트남 전쟁을 단순히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결이라는 단순 도식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당연한 반응이 될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하지만 다 사람 나름일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의 본질이 대한민국 대통령 이었던 박정희의 인식처럼 그리 단순했던 것일까? 그의 친자이며 현 대통령인 박근혜의 인식도 선친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한나당 부총재 시절 대통령 김대중이 수교국인 베트남 공화국을 방문하여 과거의 베트남 전쟁 참전과 그로 인한 베트남 인민들이 당한 고통의 역사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자 한라나당 부총재였던 박근혜의원은 당장 분기탱천하여 이렇게 반응 하였다.
 
 
-김대중: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데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 한다."   
 
 
-박근혜: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가슴과 대한민국의 명예에 대못을 박았다."
 
보도를 통해서 박근혜 의원의 그 발언을 읽은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치인의 발언은 훗날 뒷감당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하므로 매우 신중하고 절제 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는 박근혜대표의 한나라당이 노무현대통령을 비난하고 흉 볼 때 누누이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발언을 책임 져야할 위치에 올랐다. 대한민국 외교의 수장인 대통령 직위에 오른 것이다. 대한민국과 베트남 공화국이 돈독한 수교국인 된 이즈음에 그는 대통령이 되어 과거 자신이 했던 발언을 장차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국민의 관심이 적지 않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당사국인 베트남 공화국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본다.
 
 
냉전시대의 특징인 외교의 이분법 구도는 불식 되어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피 터지는 십년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베트남은 이미 수교국이다. 공산국가라고 철천지원수로 알던 중국과 베트남과 대한민국은 매우 돈독한 수교 국가들이 되었다. 베트남 처녀들이 한국에 시집을 오는 세상이다. 두 민족 간에 피가 섞이고 2세가 태어나 이 땅에 살게 된다는 의미는 단순한 외교적 의미 이상인 것이다. 결국 유신정권의 대통령 박정희나 한나라당의 지도자였던 박근혜나 국가 비젼 백년대계는 커녕 삼십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단견의 소유자들이었다는 평가를 면키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그의 인식은 바뀌어야 나라 외교의 실정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 반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역사를 동일시하고 착각에 사로잡혀 노심초사 하며 결국 유신개헌까지 단행하며 영구집권을 하려했던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의 그 단순한 인식은 뭐가 잘못 됐을까?
 
당시 한나라당의 지도자 박근혜 의원의 판단은 선친의 정치적 인식에 근거한 단순한 것이다. 북베트남 공산정권에 맞서 미국과 여타 동맹군들(호주,뉴질랜드,필리핀. 월남을 국가로서 승인했던 영국은 미국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군인도 파병치 않았다)과 함께 참전했던 우리 국군은 모욕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북베트남 공산정권에 맞서 싸운 우리국군이 뭐가 잘못한 게 있느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월남전을 한마디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과의 전쟁 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고 이영희 선생을 비롯한 학자들의 논문을 근거로 베트남 전쟁의 역사를 재구성해 본다.
 
미국은 왜 월남에서의 전면전을 시작 했었던가? 프랑스는 1863년부터 대략 100년에 걸친 베트남 식민지화 정책으로 베트남 민중들과의 끈질긴 인도지나 반도 전투를 이어 갔다. 그 결과로써 패망한 끝에 손을 털고 난 이후, 미국이 남 월남 정권을 지원 한다는 명분과 소련의 견제를 위하여 베트남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양해 해 달라는 케네디 대통령에게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그 지역에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당신은 끝없는 미로에 빠져 들 것이다. 민족이라는 것이 한번 눈을 뜨고 궐기한 다음에는 아무리 강대한 외부적 세력도 의사를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일부의 현지 지도자들이 이기적인 목적으로 당신을 섬길 지라도 민중이 그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내 세우는 이념은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불러일으키지 못 한다. 오히려 그 민중은 당신이 내 세우는 이데올로기를 당신의 지배욕과 동일시 할 것이므로 반공주의를 내 세우는 명분은 오히려 그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도와주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당신네들은 우리 프랑스의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어리석은 정책이 될 것이다. 우리 강대국들이 불행한 아시아 민족들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은, 그들 민족의 국가나 살림살이를 떠 맡을 것이 아니라 전횡적이고 억압적인 정권을 낳게 하는 고통과 욕된 상태에서 그들이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베트남은 1863년부터 2차대전 종전까지 근 100년에 걸친 항불(抗佛) 해방투쟁 후 1945년7월 全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수립 하였다. 그 후로도 프랑스 40만 대군과 호지명이 이끄는 북베트남 인민과의 전쟁은 1954년 5.7 디엔 비엔 푸 결전에서 프랑스군이 항복하기까지 장장 7년 반까지 혈투가 계속 되었다. 베트남 민중은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서 2년 후에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을 통 틀어 통일선거를 실시한 후 통일국가를 건설한다는 합의조항이 있었다. 베트남이 북과 남으로 구분 되었던 것은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으로 프랑스는 식민정책의 편의상 베트남을 북,남 중 등 세 구획으로 구분하였으나 정작 프랑스는 남베트남에 집중적인 경제적 투자를 하였다. 베트남에서 여의치 않으면 최소한 남베트남만을 점령하여 식민지화 하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베트남인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남북 구분의 큰 의미는 없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서구에서 유래된 이념이 아닌 베트남 민족주의 였던 것이다.
 
 
프랑스와 호지명의 베트남민주공화국 간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될 때, 남베트남의 지도자는 1949년 6월 프랑스가 내 세운 왕족인 '바오 다이' 정권 이었다. 이것은 프랑스 연방내의 '바오 다이 왕국' 이 된다. 이것은 일제가 만주에서 쓰러져 가던 청나라 황족인 푸이를 데려다가 만주국을 세운 것과 비슷한 식민지 정략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바오 다이 왕국은 철저히 무능 했고 철저히 부패 하였다.
 
제네바 협정에서 합의한 남북총선 기일이 2년이나 지나갈 무렵, 미국은 무능하고 부패한 남베트남 지도자가 총선에서 이길 가망은 없다고 전망 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영국수상에게 서한을 보내;
 
“ 제네바 휴전 협정대로 지금 베트남에서 총선을 실시하면 베트남인 80%가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호지명에게 투표할 것이다."
 
 
라고 전망 하였다. 결국 미국과 프랑스는 제네바 협정을 파기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는 군대를 철수 하였고 미국 군대가 베트남으로 들어 왔다. 여기서 위에 기술한 드골 대통령의 충고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정부는 프랑스를 대신하여 최소한 남부 베트남에 진주하려 했을 것이다. 미국정부는 무능한 바오 다이 대신에 민족주의자인 '고 딘 디엠'을 내세워 남부 베트남의 총선을 실시케 하였다. 여기서 프랑스의 반대가 있었으나 묵살 되었다. 그러나 유능한 민족주의 지도자로 알고 있었던 고 딘 디엠은 폭정을 일삼다가 1963년 군사 쿠데타로 사망하게 된다. 그 이후의 남부 베트남의 실정은 정부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무능으로 인하여 군사 쿠데타가 연속으로 일어나 이미 미국,영국,프랑스로부터 승인된 국가 인 남부베트남(월남)은 망쪼가 들어가기 시작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 신문보도로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기서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공산국가들을 의식하여 국가로 승인하지 않은 북 베트남 사회민주주의 공화국과 미국과의 본격적인 전쟁의 발단이 된 이른바 '통킹 만'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상 이영희 선생등의 논문 재 구성)
 
일각에서는 케네디 대통령이 월남에서 한 발을 빼고 있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때 맞춰 미국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던 케네디는 달라스 유세에서 저격 당하여 사망하게 되고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 하였다. 미국은 월남전의 본격적 확전을 북 베트남이 통킹 만에서 통상적 작전을 수행중 이던 미 군함을 습격함으로써 발단이 되었다고 공식 발표 하였었다. 존슨 대통령이 직접 TV 방송에 나와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미국정부의 그 공식발표는 훗날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자작극 이었던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십년에 걸친 베트남 전쟁은 끝난 이후였다. 다음은 미국의 다류멘터리 영화 ‘War made easy'(www.war made easy,com)에 나오는 존슨 대통령의 발표 내용이다.
 
 
PRESIDENT LYNDON B.JOHNSON: ……that renewed hostile actions against United States ships on the high seas in the Gulf of Tonkin have today required me to order the military action,( 북베트남군의 통킹만 해역에서의 미 합중국 군함에 대한 적대행위로 인하여 나는 군사행동을 명령 하였다.) 
 
 
통킹만의 적대적 행위가 미국정부의 자작극으로 밝혀진 후에 워싱턴 포스트의 당시 외신 팀장 이었던  머레이 마더(Murrey Marder)는 그 통킹 만 사건의 보도를 철회 한 적이 있느냐는 칼럼니스트 노만 솔로몬(Norman Solomon)의 질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 하였다.
“"I can assure you it never happened. There was never any retraction. Well, if the news media were going to retract its reporting on the Gulf of Tonkin, it would have to retract its reporting on virtually the entire Vietnam War.” 
(나는 실제로 그 사건이 있었는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 그러나 기사의 철회는 없었다. 만약에 언론이 통킹만 사건 보도에 대한 철회를 한다면 베트남 전쟁의 거의 대부분 기사는 철회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낱 대한민국의 소시민으로 미국이라는 거대국가의 내부적 정치나 외교전략등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럴만한 식견도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다만, 국제정치 역학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단세포적인 이념을 앞세워 외교에 나선다거나, 이 인류 사회를 흑과 백으로 구분 한다거나, 선 대 악이라느니 하는 냉전시대의 부정적 가치관에 경도되어 인류사회를 일도양단 의 재단으로 판단 할 때 우리나라의 외교 앞날이 밝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공화국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인식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수교국인 베트남 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될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 자신의 발언이 족쇄가 되지 않으려면 인식의 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줄 안다.
베트남공화국이 월남전 당시에는 미국과 피차간 철 천지 원수였겠지만 미국과의 수교를 앞두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주석의 다음과 같은 미국에서의 공식발언은 이것이다.
"전쟁얘기는 이제 구태의연한 것이며 베트남은 항상 미국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 응우옌 민 찌엣 -베트남공화국 주석- 】
 
 
 
 
베트남 전쟁 당시에 박정희 유신정권은 그 전쟁을 한반도 정세에 직결 시키면서 동시에 정권안보를 도모하였지만 베트남 반도의 사정과 한반도의 사정, 베트남 전쟁과 6.25 전쟁은 그 본질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결국, 가난한 가정을 위하여 푼돈이나마 돈을 벌기 위하여 그리고 박정희 정부의 정책과 정치선전대로 '공산오랑케'들을 무찌르기 위한 자유진영의 전사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우리의 어린 병사들은 오늘날 고엽제 휴유증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되었다. 이들은 억울한 노인들이다. 그 어느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삶이 아닌가? 오직 한번 뿐인 개인의 삶은 그 어느 가치보다 우선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은 고엽제 전우회의 증언대로 이들의 정당하게 보상 받을 길을 차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뒷구멍으로는 대기업들로부터 수 천 억 원의 천문학적 뒷돈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쪽박을 깨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다. 전두환 정권은 무엇때문에 고엽제 후유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들의 쪽빡을 깼는가?
 
 
나는 일 국민의 자격으로 박근혜 정부가 전두환으로부터 1원도 안 빼고 전액 추징할 일천육백칠십이억원정을 전부 고엽제 피해 예비역들을 위하여 쓴다고 해도 결코 반대하지 않을 작정이다. 정부와 특히 검찰의 분발을 촉구 한다.  
 
 
사족: 베트남과의 수교에 있어서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던 미국의 정치인들 언론들 그리고 5만여명에 이르는 베트남 전사 미군 가족들이 박근혜의원과 같이 "참전용사의 무덤에 못을 박는 일"이라고 비난하면서 반대 했다는 보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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