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문·전기고문에 사형도 모자라 ‘이자 고문’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1> 인혁당 배상금 반환 소송


▶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줄여서 인혁당 사건이라고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중앙정보부가 주도해 꾸며낸 인혁당 사건은 국가 폭력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7년과 2008년 사법부의 재심에서 사건 관련자 전원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오랜 고통의 시간도 끝난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난 7월 중앙정보부에서 이름을 바꾼 국가정보원이 되레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1974년에 강제로 연행돼서 취조받던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 있는 거야, 우리가. 저지른 죄도 없고 영문도 모르겠고 이해되지도 않는 상황인데 살아남을 희망이 없었던 그때 그 기분이라니까. 국정원이 어떤 곳입니까. 인혁당 사건을 날조해 가지고 죄 없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인한 집단이에요. 무슨 양심으로 줬던 배상금을 도로 뺏겠다는 겁니까.”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에서 만난 전창일(92)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전창일 상임고문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피해자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의 사건 조작이 드러나, 재심 무죄판결도 받고 국가배상금도 이미 지급받았다. 그런데 국정원이 전 상임고문 등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가족 77명에게 배상금 일부를 돌려달라는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지난 7월 제기했다. 국정원 쪽은 이에 대해 “법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말하는 ‘법’이란 2011년 1월27일 대법원 판결을 가리킨다.

이미 받은 436억 중 250억 달라는 국정원

인혁당 사건 관련자와 그 가족 77명은 재심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은 2009년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는 국가가 가해자가 되어 위헌적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위자료와 그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제시한 이자(지연손해금) 기준일은 고문 등 국가의 불법행위 종료일 다음날이었다. 그 결과 전창일 상임고문 등 67명은 대법원에서 형을 확정판결 받은 1975년 4월9일을 기준으로 이자가 포함된 635억원을 받게 됐다. 이성재(84)씨 등 10명은 석방 다음날인 1979년 6월27일 또는 1982년 12월24일부터 이자를 포함한 125억원을 받게 됐다. 이들은 법무부에 가집행을 신청해, 배상금의 65%인 436억원을 2009년 8월 미리 받았다. 검찰의 항소는 기각됐다.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위자료 원금은 인정했지만 이자가 너무 많아 ‘과잉 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예외적으로 국가 배상금 이자 지급 기준일을 서울고등법원 손해배상 소송 변론 종결일로 늦췄다. 전창일 상임고문 등 67명의 이자 기준일은 2009년 11월13일로, 이성재씨 등 10명의 이자 기준일은 2010년 7월2일로 바뀌었다. 이 판결로 30여년치 이자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이 판결 뒤 2년간 침묵을 지키던 국정원은 지난 7월 ‘부당이득’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국정원이 부당이득이라며 내놓으라고 한 돈은 250억원으로, 이미 지급된 배상금 436억원의 절반이 넘는 액수다. 국정원이 말한 ‘부당이득’에 대한 이자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다.

국가배상금 너무 많다며

30여년치 이자 깎은 대법원

판결 2년 지난 뒤에야 국정원은

지급된 배상금 일부 돌려달라며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냈다  

“국정원이 젊었을 땐 고문하더니

이젠 또 여생을 위협하네요

처음으로 아버지 덕 보나 했는데


딸이 부동산에 집 내놨어요”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과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의 주체가 국정원이라는 점은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의 분노를 한층 키웠다. “손해배상금의 이자 기준일은 불법행위 성립일로 보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그런데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다는 애매모호한 조건을 달아 예외적으로 이자 기준일을 바꿨다. 판례를 바꾸려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열어야 하는데 이것도 열지 않았다. 내용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의 인혁당 사건 피해자 쪽 대리인인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가 지적했다. 대법원이 언급한 ‘과잉 배상’은 불법행위가 발생한 시기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발생했다. 인혁당 사건은 1974년에 일어났지만 형사 재심 무죄를 받기까지는 33년의 시간이 흘렀다. 33년의 시간을 낳은 건 인혁당 피해자들이 아니라 이들의 진실 규명을 막은 국가였다.

1974년 5월1일 전창일 상임고문의 서울 성북구 집에 중정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 없이 연행된 전 상임고문은 곧바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건으로, 무슨 죄명으로 끌려왔는지 알지 못했다. ‘죄가 없으니 곧 풀려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수사관은 “당신의 동지들이 다 자백했으니 숨김없이 털어놓으시오”라며 압박했다. 원하는 진술을 하지 않으면 물고문, 전기고문을 가했다. 당시 전 상임고문은 중동지역 공사 수주를 준비하던 극동건설 외국공사 부장이었다. 정치적인 단체에 몸담지 않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단지 이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우홍선씨, 이수병씨 등과 안면이 있었을 뿐이었다.

8명 사형 이후 비참하게 살았던 피해자 가족들

인혁당 사건은 1974년 4월25일 중정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배후에 과거 공산계 불법단체인 인민혁명당이 있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발표 며칠 전인 4월3일 대학생들의 유신헌법 철폐 시위가 있었는데, 중정은 이 시위의 주도자를 민청학련으로 지목하면서 배후 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끌어들였다. 민청학련 관련자 57명과 인혁당 관련자 24명이 국가보안법,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전창일 상임고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1년 뒤 1975년 4월8일 인혁당 관련자 8명 사형, 7명 무기징역 등이 확정됐다. 사형수 8명은 형 확정 18시간 만인 4월9일 사형당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날을 ‘세계 사법 암흑의 날’로 지정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비판하는 민주화운동 세력에 ‘간첩’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국가 안보’를 내세워 민주화운동 세력에 재갈을 물렸다. 박 대통령의 독재 수호에 앞장선 건 중정이었다. 중정은 간첩 사건의 결론을 내려놓고 고문과 가혹행위를 동원해 거짓 진술을 받아냈다. 그 결정판이 바로 인혁당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이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에서 밝혀지기까지 28년 동안 피해자와 가족들은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75년 4월8일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9년여를 감옥에서 보낸 전창일 상임고문 가족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부인인 고 임인영씨가 운영하는 양장점 앞에는 항상 경찰이 있었다. 경찰은 양장점 손님들 한명 한명의 신분증을 요구하며 영업을 방해했다. 양장점을 다른 곳으로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참다못한 임씨는 외신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폭로했고, 그 뒤로는 인혁당 사건의 부당함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중정에 끌려가 협박당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번은 잡혀갔다 나왔는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세 딸이 쌀이 없어서 이틀을 굶고 있었대요. 내가 자식들 죽이겠구나 하고 펑펑 울었다고 했어요.” 전 상임고문이 말했다. 중정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때 인혁당 사형수 8명의 옷을 모아 깃발을 만들어줬다며 임씨를 구속했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지만 수개월 옥고를 치러야 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가난과 주변의 편견으로 자녀들의 고통도 컸다. ‘수십년을 교도소에 갇혀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석방운동으로 잦은 취조를 받아 신경쇠약에 걸린 아내와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를 잃고 비참한 모습으로 아버지들을 맞이했습니다. 우리에겐 집도 없었고 수십년 세월 가장을 잃고 쌓인 부채로 인해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습니다.’ 전창일 상임고문의 셋째 딸이 쓴 A4 다섯 장의 호소문에는 당시의 아픔이 묻어 있다.

전창일 상임고문은 1982년 12월24일 형집행정지로 세상에 나왔다. 같은 날 인혁당 사건 관련자 전원이 특별사면으로 남은 형을 면제받았다. 전 상임고문은 자신의 사건을 맡았던 김종길 변호사를 찾아가 재심 청구를 논의했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체제는 그대로니 기각될 게 뻔하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가능할 테니 기다리자.’ 변호사 말에 재심을 청구하지 않았다. 10년, 20년, 아니면 죽고 나서야 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 대신 감옥에서 생각했던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 북한에 계신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억울한 감옥살이가 분단에서 기인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문익환 목사의 일을 돕다 1980년대 말부터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활동을 시작했다.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세기가 바뀌어야 했다. 최초의 정부 차원의 과거사 위원회인 의문사위가 2000년 발족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민주화 정부가 들어섰지만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소속 가족들이 422일이나 농성을 해서야 만들 수 있었던 위원회다. 그 의문사위는 장석구 사망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벌이면서, 2002년 ‘인혁당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고 발표했다. 인혁당 사건의 진실이 28년 만에 밝혀진 순간이다. 어린 자녀가 성인이 되어 손자·손녀를 낳을 만큼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사건에 대한 더 심층적인 진상규명은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 조사 끝에 2005년 12월7일 발표됐다. 진실위는 “인혁당 사건은 학생들의 유신체제에 대한 거센 저항에 직면한 박정희 정권이 학생 데모의 배후에 북과 연결된 공산주의자들이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이용한 사건”이라며 중정의 책임, 고문과 가혹행위 등의 인권침해를 지적했다. 이 진실규명 결정문에서 국정원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자행된 권력의 오용과 남용으로 중대한 인권침해가 국정원의 전신인 중정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리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사법부도 진실규명에 힘을 실어줬다. 사형수 8명은 2007년 1월23일에, 그 외의 피해자 17명은 2008년~2013년 6월 사이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국고금을 전두환씨처럼 훔쳤습니까?’

이런 과정을 거쳐 받은 국가의 배상금은 전창일 상임고문과 그 가족들에겐 그냥 돈이 아니었다. “사형수와 장기수들의 피에 대한 보상이죠. 국민의 한 사람인 전창일을 괴롭히기만 했던 국가의 사과였고요. 재심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내 나라라는 걸 느꼈어요.” 국가 배상금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겪으며 고생하기만 했던 가족들은 이제야 편히 누울 집을 얻을 수 있었다. 전 상임고문은 국가배상금을 개인을 위해서만 쓰지도 않았다. 일부는 떼어 ‘4·9통일평화재단’에 출연했고,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에 헌신하는 개인·단체에 기부했다. 인혁당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였다.

이미 받아 쓴 돈을 다시 내놓으라는 국정원의 소송 앞에서 전 상임고문은 절망을 느꼈다. “국정원이 젊었을 땐 물고문, 전기고문 하며 죄 없는 사람 괴롭히더니 나이 들어서는 또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위협하네요. 딸이 부동산에 집을 내놨어요. 처음으로 아버지 덕 보고 먹고살 만하게 됐는데…. 요즘 애들 보기도 미안해요. 차라리 이 돈을 안 받았더라면 이 고통은 없었을 텐데.” 전 상임고문의 셋째 딸의 심정도 아버지 못지않은 절망이었다. “우리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나요? 우리가 탈루자입니까? 세금을 횡령했습니까? 국고금을 전두환씨처럼 훔쳤습니까? 배상금은 국가가 과실을 용서해달라며 준 것입니다. 부당이득이 웬 말입니까?”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민주당으로, 국민대통합위원회로 문제해결 방안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소송을 다들 굴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명예회복하고 국가배상까지 받았는데 이제 와서 인혁당 사건을 만든 주체인 국정원이 생존권을 옥죄고 있으니까요. 하루아침에 피해자에서 채무자가 된 거죠. 국가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니 정부가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려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의 배상금을 출연해 만든 4·9통일평화재단의 안경호 조사실장이 말했다.

두차례의 진상규명이 있었고, 재심 무죄확정판결도 받았다.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인혁당 사건에 대한 판단은 끝났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올해에는 국정원이 인혁당을 세상으로 자꾸 불러낸다. 39년이 지난 지금도 인혁당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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