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시간들 (8) - 드라마 배우가 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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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시간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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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출연, 드라마 배우가 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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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방송실에서 월급이 안 나온다는 것은
그만 두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으나
함께 들어간 남자문관들도 그대로 참고 있고,
그렇다고 다른 데 갈 곳도 없는 나는,
이러다가 머지않아 허무하게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어렴풋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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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한 푼 못 받으면서도 그만두라는 소리
안 듣는 것만 다행으로 여기면서 매일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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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여 종로3가 집이냐고 들어가면, 무주택자들이 바글바글
그 작은 한옥은 옛날 어느 양반댁 소실 마나님 소유었다.
주인은 아직 피난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양반(兩班) 댁과 성씨만 같으면 다 모여든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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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무소에서 배급받는 안남미와 19공탄,
연탄은 밤낮 꺼지고 안남미 밥은 맛없어 정말 못 먹겠고,
날은 추워오는데 입고 출근할 옷도 없고,
구두 뒷축은 다 떨어져나가고,
헌 미군담요를 몸에 두르고 밤을 지내다보면 밤새도록 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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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생활고를 타개하려고
어느 날 오후 군방송실에서 멍청하게 창 밖을 바라보면서
돈 벌 궁리를 열심히 하고 있던 내 귀에
충격적인 말이 들렸다.
"야아! 지금 저쪽 서울방송국 위층의 민구하고
아래 있는 장민호하고 얘기하는데,
오늘 남해연이는 네 프로나 했대!
중앙방송국은 출연료가 6백 환인가, 8백 환인가?"
"그럼 줄잡아도 2천 4백환 이상은 벌었다는 얘기 아냐?
쌀 다섯 말 값이 넘잖아? 이 오뉴월 가뭄에 그게 어디야?
잠깐 동안 방송하고 그렇게 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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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으로 통하는 옆 사무실 남자문관들의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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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루에 쌀 다섯 말 값을 벌어?
나는 번개 맞은 것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떨리는 입술만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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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연(南海燕)씨는 30대 초반의, 눈이 크며 인물이 좋은,
당당한 체구의, 당대 최고의 방송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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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다~~~! 나도 남해연이처럼 돈을 버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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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드라마 한편 제대로 된 것 들어본 일도 없으면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조금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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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방송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인가 10분 드라마가 나갔다.
하루는 악극단 출신 여배우가 오지 않아,
군방송실에서 급하니까 나를 대타로 소년역을 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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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하는 한 마디였다.
연출자가 시키는 대로 해봤다. 그랬더니 사무실에서 모두,
참 잘한다고 용기를 주어, 그 이후 두어번 더 애들 역으로 출연하고
출연료 500환씩받고 감격했던 일이 있는데, 그 경험을 근거로
나는 혹시 그 방면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군방송실에서 보면 악극단출신 배우들은 좀 대우가 안 좋았다.
고상한 직업이 아닌 것 같았다.
부끄럽더라도 2년만 눈 딱 감고 방송배우로 돈 벌어
그 일 그만 두고 대학 다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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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5급 공무원의 세금공제하기 전 봉급이 6 천환 대,
하루 방송만 하고 2,400을 번다면, 금시 부자가 될 수 있는 수입,
여하간 2년만 방송으로 돈을 벌어 대학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내 머리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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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대학, 대학, 하니까, 나도 대학을 생각한 것이지,
사실은 대학을 다녀야 할 목적도 없었다.
대학이란 단어도 서울 와서 처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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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나는 방송연기가 무엇인지,
그 일이 내 적성에 맞는지,
나처럼 원시 생활권에서 살아온 인간에게
그게 얼마나 비참한 고비들을 많이 넘어야 하는 직업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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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당해야 할 고난을 전혀 상상도 못하면서,
그저 마음만 먹으면 되는 직업으로 간단히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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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는 만용,
세상물정에 캄캄했으므로
오직 생존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따라
허황되게 미래를 결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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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무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서울 출신자들보다 방송연기 배우기가 몇 배 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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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1954년12월 22일, KBS 전속극단원 모집이 있어,
시험보고 KBS 전속극단원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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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합격자 20명이 1955년 1월 초부터 3개월 연수 마치고
방송 출연을 시작했다.
나의 경우는 물인지 불인지 모르는 위험한 출발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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