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픔으 시간들 (46) -아나운서 이야기 2 -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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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시간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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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이야기 2  -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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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근 아나운서는 후에
MBC와 경향신문 사장 직무대리를 역임했다.
지금은 텔레비전 뉴스는 주로 기자들이 진행하고 있지만
TV 시대 이전 라디오시대에는 뉴스보도는 아나운서들의 담당이었다.
그때는 다는 아니었지만
중진에 속하는 아나운서들의 뉴스보도 억양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과는 동떨어진 특이한 어조였다.

무엇에 쫓기는 듯, 뒤에서 적이 쳐들어오기라도 하는 듯한
다급한 낭독법은 때로는 억양이 너무 강해
듣는 사람들의 귀에 거슬렸다.
그것은 아마 우리말이 발전할 수 없었던
일제 때 일본인들이 시작했던 방송국에서
그들의 뉴스보도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았다.
왜냐 하면 1950년대까지만 해도 뉴스원고를 읽는
우리나라 나이 든 일부 아나운서들의 낭독조는
일본 아나운서들과 억양의 유사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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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아나운서들
1955년 내가 성우 강습을 받던 때부터 낯이 익은 아나운서들 가운데
최계환(崔季煥, 전 KBS아나운서실장, 전 명지대학 객원교수),
전영우(全英雨, 국문학 박사, 전 수원대학교 인문대학장),
최세훈(崔世勳, 전 MBC 아나운서실장, 시인) 씨가 떠오른다.
그 분들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편안한 미소의 모습이었으며
소박한 인품이 호의를 느끼게 했다.
여성으로는 강영숙 (姜映淑, 예지원 원장) 아나운서가 인기가 높았다.
나는 그 이름을 서울중앙방송국 들어가기 전 1954년 가을
KBS 부속건물에 들어 있던 군방송실에서부터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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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문관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강영숙 아나운서 말이야. 똑똑해요! 아까 본관 복도에서 만났는데
나보고 상냥하게 웃으면서 인사하더라고.
여자는 인사성이 발라야 하거든.
그 아나운서는 키도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따악 보기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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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나운서 강영숙 씨는 노력하는 방송인으로서
학구적인 면도 보여주었다.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나운서의 벗> (인간사, 1959)을 출판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남에게 호감을 주는 최계환 아나운서가 TBC에서
오래 담당했던 <장수무대>를 들으면서, 재주는 재주다,
저 어려운 진행을 어떻게 저렇게 스무스하게 잘하나, 하고
나는 감탄하곤 했다.
나와는 개인적으로 특히 대화를 나눈 적은 별로 없었으나
어디서 만나도 좋은 인상의 그 아나운서를 보면,
저 아나운서의 인기가 많이 올라갔으면, 하고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런 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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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4월 개국한 동아방송의 장수 토크프로,
교양과 재미를 겸한 <유쾌한 응접실>의 훌륭한 진행자는
전영우(全英雨)아나운서였다.
 당시는 동아방송 아나운서 실장이었다.
나는 그 아나운서에 대한 두 가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1950년대 중반 서울중앙방송국에 입사 당시
 20대 초반으로 보이던 그는
지적인 면에서 이미 상당히 실력 있는 아나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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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초기 아나운서 시절 정동방송국에서의 일이었다.
어느 날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드라마 연습을 끝내고
나는 혼자 스튜디오로 들어가 입구에서 보이지 않도록
의자를 돌려놓고 의자에 푹 파묻혀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녹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와,
외부 친지들에게 내부를 보여주면서
하나의 방송프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되어 방송되는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우연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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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음성은 젊은데 누군데 저렇게 아는 게 많지?
참 침착하게 설명을 잘 한다!"하고 나는 놀랐다. 후에 알고 보니
그이는 신인 아나운서 전영우 씨였다.
또 하나의 기억은, 1963년 4월 25일 개국과 동시에, 전(全) 아나운서가
 KBS에서 동아방송 아나운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전영우  씨는 그때까지 선배들의 이상한 뉴스보도 억양을 탈피하여
일반 대화에 가까운 편안한 낭독으로 뉴스를 전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뉴스방송을 한 건 그 아나운서가 처음이라며
그 발전된 스타일의 뉴스보도는
당시 우리 KBS 성우실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동아방송 아나실장 시절에도 전영우 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 성우들하고 잠깐 씩 나누는 가벼운 대화에서도
꾸밈없고 소탈한 언행이 늘 기분 좋은 인상을 주었다.
출발부터 그처럼 남다르던 인품은 역시 아나운서로서도 성공했지만,
후에 스피치 분야의 독보적인 연구로 학자로서도 대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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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나운서 최세훈 씨는 시인이었다.
역시 문학도답게 그가 발표하는 글을 읽어보면
상당한 수준의 고급 지식을 흡수하고 있는 현대지성인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보통 키에 살결이 희고 곱슬머리인
최세훈 아나운서는 1950년대 중반 내가 처음 방송국에서 봤을 때는
대학생 같은 젊은 얼굴이었다.
드라마 소개 멘트를 넣으러 스튜디오에 와서 남자 성우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에서도 문학적 분위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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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9월호부터 다음해 9월까지 월간 여상(女像)에
13회에 걸쳐 발표한 최세훈 아나의 <ON AIR(방송중)>란
제목의 연재물은 짤막한 설명에도 일일이 연월일을 표시하는
성의 있고 정직하게 엮어진 글이었다.
매회 그 연재물에 붙여지는 작은 제목도 별미.
그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얼마나 천직으로 생각하며
그 일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는
 3회에 붙인 <말의 화가(畵家)라는 제목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핵심을 찌르는, 정말 너무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이었다.
그런 풍부한 감정으로 시어(詩語)를 창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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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었다. 당시 아나운서들은
성격이 다른 여러 방송프로에 출연하면서
드라마 연기와는 또 다른 아나운서만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함을 만들어내기에 최선을 다했다.
화가가 색의 조화를 살리면서 작품을 창조하듯이,
아나운서들은 음악해설이면 그 프로에 알맞은 무드와 정서를
이끌어내려고 잔잔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원고를 읽었으며,
공개방송이면 또 방청객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연구를 했으며,
스포츠 중계에는 그 시간에 적합한
민첩함과 긴박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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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에 연재했던 최세훈 아나의 글은 <증언대의 앵무새>
(동화출판사, 1967)의 제목으로 묶어 단행본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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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모습의  아나운서들
그들은 방송국에서 의상도 늘 단정했으며,
말 한 마디를 해도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이었다..
아나운서 가운데는 예능에 소질 있는 이들도 많아,
1957년 12월 정동에서 남산 중턱 예장동으로 방송국이 이사간 이후
멋진 새 공개홀도 마련되자, 연말에는 공개방송으로
성우들과 노래경연으로 아나운서들은 오래실력을 과시해 보였다.
그럴 때 보면 무대에 나오는 아나운서들은
남녀 공히 노래를 잘 불러
듣는 사람들 귀를 마냥 즐겁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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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훈 아나도 한번 스테이지에 나와 청취들에게 노래를 선사했다.
유호(兪湖)작사 박시춘(朴是春)작곡 <고향만리>는
1948년 현인(玄仁)씨의 히트곡.
훗날 리메이크되어 여러 유명가수들에 의해 불리면서
많은 팬들에게 애창되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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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일제 말기, 우리 젊은이들이 작열하는 태양열 아래
숨 쉬기도 힘든 열대지방, 남태평양 보르네오 섬에
학도병과 징용으로 끌려가 내 나라에 다시는 살아 돌아갈 길 없는
생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러
고향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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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속에 보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바닷가 저편에
고향산천 가는 길이 고향산천 가는 길이
절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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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전가요에 속했지만 사람들 기억에 그리움을 남긴 그 노래를
남산 KBS 신축 공개홀에서 가수 아닌 젊은 최세훈 아나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열창, 노래를 들으면서
한 순간 방청석은 잔잔한 애수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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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훈 씨는 1962년 3월 <자유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할 때도
화제의 출발이었다. 시 분야 응모작품 682편의 경쟁에서
<수련(睡蓮 - 연꽃의 한 종류)>이란 작품으로 1위 당선.
당시 심사평에서도 다음과 같은 높은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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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대한 우아성과 예민한 감성을 나타내고 있어
자연물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는 것. 
<주간방송> 1962년 3월 4일자 4면에 발표한
최 아나운서의 다른 시 <구전신석(口傳新釋)>에는
생명을 바라보는 시인의 진지한 사색이 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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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는 여호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인 새빨간 능금을 따먹고 아담에게도 먹게 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다.
그 죄로 그들 두 남녀는 에덴 낙원에서 쫓겨났다.
 하나님 명령을 어긴 원죄로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인 인류는
땀흘려 일하며 근심 걱정 속에 살다가 죽을 운명을 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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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그 유명한 인간고행의 기원론을
두뇌회전이 빠른 시기의 20대 최세훈 시인은 <구전신석> 후반에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해석을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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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내일의 비늘 돋친 몸둥이에
칭칭 휘감겨 곤두박질 치는 것도
배암의 잘못이 아니다
숨을 쉬는 죄다     
                      ( 一九六ㅇ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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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최세훈 시인은 글자 하나에도 세심한 배려를 했다.
시를 끝내고 줄을 바꿔 기입한 시작(詩作)의 연도도
읽는 사람 마음에 생각의 여운을 주었다.
1960년은 그의 시인 데뷔보다 2년이 앞선 시기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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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잘못한 일이 무수히 많다.
개인적으로 최세훈 씨에게 폐를 끼치고도 보답을 못한 일이 있어,
그이 말에는 거절을 못할 입장이었다. 그러던 차 
MBC 아나실장 시절 그가 나를 설득하여 협조를 구할 일이 하나 생겼다.
1965년 1월이었다. 그는 휘문출판사에서 윤미림에게
다리를 놔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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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있는 일역으로 된 논픽션전집 50권을 빌려달라는 부턱이었다.
얼마 전 서린동의 한 외국서점에서 들여온
일본 치쿠마출판사(筑摩書房)의 세계논픽션전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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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에 쪼들리던 가난한 정부 살림으로는 아직 국교도 없는 일본서적을
수입하기가 쉽지 않던 때, 출판사 간부가
어떻게 서점가에서 성우 아무개가 어느 서점에서
어떤 전집을 들여놨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자기 회사에서도 논픽션전집을 내고 싶다면서,
안면이 있었던 MBC 최세훈 아나실장에게
윤미림의 그 전집을 빌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최 실장은 어려운 일이지만 말해보겠노라고 답하고,
나에게 그 얘기를 전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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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에 윤미림 씨가 책을 내더라도
출판사하고는 친해 놓는 게 괜찮지 않아요?"
20대 후반까지 단편 하나 못 내놓고 있는 주제에
책은 무슨 책을 내겠는가….
나에게 그런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발전이 더딘 내 머리에 실망이 컸던 나는
설혹 글을 쓰게 된다고 하더라도, 작가는 작품을 잘 만들어야지
인위적으로 만든 출판사와의 친분에 기대어
책을 내겠다는 생각은
가져본 일도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르는 출판사였지만
최세훈 아나운서의 요청을 나는 조건 없이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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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려주어 피해를 입었던 경험이 있는 나는
책은 절대로 빌려주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했었다.
더구나 번역을 하면 새책들이 망가질 것을 각오하면서도
순전히 옛날 최세훈씨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
최세훈 실장 얼굴을 봐서
새 책 50권 가운데 15권을 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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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차를 갖고 와서, 우리 집에서
그 전집을 직접 실어간 사람은 젊고 얌전하게 생긴
조그마한 체구의 출판사 편집장,
그는 빌려갈 책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
사전에 우리 집을 방문했었다.
자기는 대학에 강사로 출강한다고,
우리 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전공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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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주는 교훈
교훈을 주지 않는 인간관계는 없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쌓아놓기만 하고  미처  읽을 사이가 없었던
옛날 출판사에 빌려줬다가 돌려 받은 논픽션전집을
읽어보려고 펴든 순간,
나는 책의 참상에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어쩜 남의 책을 빌려서 번역을 한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르트르의 해설이나
기록으로서 가치 있다고 보이는 대목은 책마다 전부 짝 짝 면도날로
 잔인하게 다 짤라낸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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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파,
옛날 내 책을 직접 빌려갔던 사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출판사 편집장의 명함을
몇 년 후 헌 명함철에서 찾아냈다.
빌려갔던 책의 일부를 1965년 5월 7일자로 인편에 돌려주면서
보낸 그의 명함이었다. 명함 뒷면에 이렇게 씌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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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안녕하시옵니까. 빌린 책,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서 죄송스럽습니다.
끝난 것 8권 보냅니다. 나머지 7권은 며칠 후에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관용바라옵니다. 弊社刊(폐사간) 흑인문학전집
1질 증정하오니 笑納(소납)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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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색이 변한 명함 한 장을 들고 또 몇 년을 추적한 끝에
그 출판사 편집장의 연락처를 간신히 알아냈다.
그에게 무슨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그이에게만은 여러 권의
내 책이 당한 비극을 알리고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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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그 동안 그는 동양철학 전공의 학자가 되어
 TV에도 자주 얼굴을 보이는 유명 인사 최 모 )씨였다.
그런 걸 나는 그를 찾느라고 많은 수고를 했었다. 내가 전화했을 때
나를 기억하며 반갑게 응대하는 그 학자에게 차마 말을 못하고,
사실을 알려야 하는가를 꽤 오래 뜸을 들이며 생각하다가,
문제의 서적 사고를 1993년 12월 1일자로 편지로 알렸다.
등기우편이었다.
회신이나 전화 연락도 없었다. 침묵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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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이 입을 딱 다물었다.
서적을 반환 받은 시점에서 책 속을 일일이 점검하지 않은 게 나의 불찰,
책은 역시 빌려주는 게 아니었다.
설마 그것들을 빌려갔던 출판사 편집장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으려고 했으나 사과 한 마디 없는 그의 침묵에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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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났던 일,
몇 10년 전에는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방송에 뻔질나게 나오더니,
그 이후 윤아무개는 신문이나 잡지에 한번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일 것이니, 모르는 척해도
상관없겠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출세한 그는 윤미림을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내 편지를 모르는 체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순히 입장 거북해서 가만히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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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나실장 최세훈( 씨를 다리 놔
자기 책임 하에 빌려갔던 서적이
 문제가 생긴 것을 뒤늦게라도 알았으면 미안하다는
인사 한 마디는 해야 도리일 것이다.
최세훈 씨에게는 부담만 줄 것 같아
 오래 전에 지나간 불쾌한 사건을 알리지 않았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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