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석손님 (8) - 자옥의 3개월


                1950년 육이오전쟁 때 끝없는 피난길행렬

입석손님 (8)

지옥의 3 개월

1950년 6월 28일 오후 저녁때가 가까운 무렵.
용호는 용인으로 들고 가려던 옷 가방을 들고.
아버지와 나란히 성북동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갔다.
.
외손녀 용희를 데리고 계신 용호 외할머니가
양식이 떨어지면 큰 일이라면서,
아버지는 양식을 준비한 배낭에 메고 있었다.
.
미아리 고개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피난민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았다.
한 어린애는 등에 업고 또 한 아이는 걸리면서
머리에도 이는가 하면,
.
소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짐을 지우고
거기에 마차도 끌게 하고, 피난민들 행색이 모두 말이 아니었다.
.
서울을 점령한 북괴군 차량들이 시내 곳곳에 쫘악 깔리고,
벌써 붉은 완장 찬 젊은이들이 핏발 선 눈으로
애꿎은 행인들에게 험한 눈길을 번뜩였다.
.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점령당한 첫날,
중무장한 붉은 군대 차량도 두렵지만,
붉은 완장 차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청년들의 시선도 섬뜩했다. 
용호는 아버지 옆에서 흘끔 흘끔 주위를 살피면서 걸었다.
.
서울 거리 광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앞으로 저 북의 군대들이나 붉은 완장들이
남한 국민에게 무슨 짓들을 할 것인지, 긴장 대문에
금방 뒤에서 누가 부르기라도 할 것 같아,
용호는 머리가 쭈삣거렸다.
북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드물었고,
잔부 남으로 내려오는 발길들 뿐이었다.
.
해는 아직 남았지만, 길을 지나는 사람들 표정은 모두 어두웠다.
적과의 싸움이 어떻게 결판이 날지,
UN군은 언제 참전하는 건지…,
미군이 빨리 도착해야 하는데…,
.
                  서울거리를 누비는 소련제탱크
.
용호  머리  속에서 미국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때,
아버지가 멈춰 서며 아들을 돌아보고 말을 꺼냈다.
"네 동생들이 어떻게 지내는 지 걱정이구나."
용인 친정에 가 있는 아내와 애들 얘기였다.
.
아버지 얘기를 듣는 순간, 북괴군의 전쟁공포에서 제 정신이 들며,
세상 떠난 어머니 모습과 지난 날의 일들이 용호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한 살 위였으며, 4년 제 중학 출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용호 낳으면서 직장을 그만 두었다.
.
건강 때문이었다. 직장과 가정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쉽게 피로를 느끼는 허약한 몸이었다.
.
해방되던 해 겨울, 용호와 세 살 터울이 9세 되는 용희를  남기고, 
어머니는 맹장염 수술이 잘못되어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주변에서 어른들이 근심 섞인 말들을 했다.
.
미군들이 사용하는 패니실린 같은 항생제만 있었어도,
용호 어머니는 살아날 수 있었는데, 그걸 구하지 못해
병을 이기지 못한 거라고.
.
.
.
어머니 떠나고 처음 며칠은 외할머니가 용호네 살림을
돌봐주시다가, 아버지와 의논하여 초등학교 2학년인 용희는
학교도 옮기기로 하고, 아주 정릉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
용희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손에 자라,
할머니와의 생활이 더 자연스러운 아이였다.
.
집안 살림이 힘들어 그런 면도 없지 않겠으나, 
용호 아버지는 아들과 자취를 하다가,
아내 보낸 지 1년이 지나자, 말괄량이 같이
키가 멀대처럼 큰 처녀 하나를 데리고 왔다.
.
용인에서 간단한 예를 치르고 재취한 아내였다.
색씨 나이 21세∼∼∼.
아버지보다는 17 세 아래, 용호보다는 여덟 살 위.
.
말괄량이는 다음 해부터 연년생으로 아이 3 남매를 낳았다.
음식솜씨도 별로고, 도대체가 너무 젊어서,
할 말도 없긴 하지만, 용호는 아버지 여자와 말을 하기는커녕,
불러본 일도 없었다.
워라고 부른다지?
.
아버지도 용호 마음을 이해했는지, 누구라고 지적은 하지 않고,
그냥, 어디 갔니? 혹은 언제 나갔니? 이렇게 표현하다가,
그 몸에서 아이들이 태어나자, 애엄마 있니? 이렇게 불렀다.
.
아버지 인생은 아버지가 결정할 일이긴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용호는 남녀는 참
묘한 관계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
아버지는 잔에 어머니하고는 다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늘 아내한테 명령하는 태도였었다.
그런데 이번 여자하고는 아주 다정할 뿐만 아니라,
젊은 새 여자가 반말로 대하고,
툭하면 화까지 내며 버릇없이 굴어도,
그걸 다 받아주면서 아버지는 늘 여자 비위를 맞추는 편이었다.
.
아버지는 아직 늙지 않고 생활력도 있는 남편이건만,
한번도 그 여자한테 불쾌한 얼굴을 보인 일이 없었다.
.
새 여자한테 아버지가 어떻게 하든
용호는 자신은 아버지 인생에 간여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버지 인생은 어디까지나 아버지가 결정할 문제,
누구를 아내로 맞이했든,
아버지가 만족하고 행복하냐가 중요한 것… ,
.
다만, 젊은 여자가 하루빨리 철이 들어,
아버지를 존경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속에 있는 정도였다.
.
따따 따따따∼∼∼ , 
따따 따따따∼∼∼ , 따따 따따따∼∼∼ , 
 .
그때였다. 어디선가, 콩볶듯 총소리가 몇 군데서 들렸다.
총소리 나는 방향이 미아리 어디쯤 같은데,
거기는 아직도  피난민들이 내려가는 곳,
어디서 전투가 벌어진 것 아닌가?
.
.
                     1950년 여름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
용호는 아버지와 함께 총소리 들려오는 쪽을 살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날은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
사위와 외손자가 현관에 들어서는 걸 본 외할머니가,
뛰어나오면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인민군들하고 소련군들이 서울 들어왔다던데, 어떻게 왔어?"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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