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석손님 (9) - 숨 죽이고 사는 나날


 
 
입석손님 (9)
.
숨죽이고 사는 나날
.
정릉 산자락 아래 들어앉은,
평화로워야 할 용호 외조모 댁도
서울이 적군에게 점령당한 충격으로
공포감에 쌓여 있었다.
.
용호는 아버지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에게 큰 절을 올리고, 보이지 않는 여동생 용희를
찾느라고 집안을 두리거리자, 할머니가 일르셨다.
.
"용호야, 너 작은 할머니 집에 가서, 용희 데려와라.
아까 옥수수 찐 거 들려보냈더니,
얘가 가서 라디오 듣느라고 그러는지 안 오는구나.
우리 껀 그나마 고장이 나서
칙칙거리기만 하고 안 들려.
전기도 들어오다 말다 그러고..."
.
용호가  나간 다음, 용호아버지는 배낭에 갖고 간 쌀을
내놓고 또 장모에게 비상금을 건네며,
적들에게 주의하시라고 당부했다 
.
"장모님 세상이 확 달라졌으니
되도록 사람들을 멀리 하십시요.
누가 뒤로 적들과 내통하는지 모르거든요.
미국이 참전하면 이 전쟁은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들
그러는데, 알 수가 있어야지요."
.
그리고 오늘 새벽 한강 인도교 폭파사건과
시장에서 이북사람들한테 들은 얘기들을 전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스파이 정치를 하기 때문에
가족도 믿기 어렵고,
특히 청년들은 전쟁도구로 이용하려고 붙잡아 갈지도  모른다고.
.
용호는 원산에서 온 수학 선생님한테 수업시간에,
북한 얘기를 들어,
단편적으로 북한 사정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
                    UN군의 참전(1950. 07. 01), 부산 상륙
.
김일성이는 북에서 해방 직후부터
전국의 중학생 이상 학생들한테 군사훈련을 시키면서
남쪽 놈들이 쳐들어 올 테니까 방어해야 한다고 했단다.
.
저희들이 먼저 남한 동족에게 대포를 쏘며
쳐들어 올 준비를 하면서, 남한이 쳐들어올 거라고 했다니,
정말이지 공산당 수법은 야비했다.
 .
다음날, 우선 당분간은 사태진전을 봐야 하기 때문에,
용호는 동생과 함께 외할머니 집에 머물기로 하고,
아버지만 혼자 뒷길로 시내로 들어가,
한강 건너는 길이 있는가, 알아보기로 하고 혼자 떠났다.
.
아버지는 출발하기 전에도 아들과 딸에게 다시 일렀다.
"너희들은 나오라고 해도 절대로 나가지 말도록 해야 한다."
아버지는 같은 얘기를 외할머니에게도 간곡히 부탁 했다.
.
"장모님, 세상이 험악하니까, 이 애들은 누가 와도
없는 것처럼 해주세요. 시장에서 들었는데,
인민군들은 중학생 이상 사내애들은 모조리 잡아다가
군대에 넣을 거 라는 소문입니다."
.
외할머니한테 오래 있을 줄 알았으면,
공부할 책을 가져오는 건데 하고 용호는 후회했다.
그러나 한가하게 책 들고 공부할 여유가 없어졌다.
.
인민군 앞잽이들과 노동당원들이 붉은 완장 차고,
거리를 횡행하며 집집마다 뒤지다시피 하면서,
젊은 사람들 나오라고 하는가 하면,
그것도 뜻대로 안 되자,
붉은 완장 찬 여맹원들이 나타나, 가가호호,
위협적으로 거짓말하면 안 된다면서 인구조사를 해갔다. 
.
 
                         북한의 서울 점령 (1950. 06. 28)
.
갑자기 집안에 감쪽같이 숨을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할머니는 궁리 끝에 우선 안방 다락을 치우고
손자손녀를 다락으로 올려보냈다.
식사도 거기서 먹도록 하고, 밤에만 내려와 방에서 자도록 했다.
.
용호 외조모는 19세기 말엽에 태어나,
정식으로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지만, 
평범한 여성이 아니었다.
.
젊어서 결혼 전에 러시아에서 담배장사도 하고,
한 동안은 함경북도 회령에서 잠시 목재상을 하기도 했던
남편은 견문이 넓어, 아내를 많이 개화시켜 주었다.
.
수세식 화장실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상상도 못하던 때 
러시아 사람들이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침대 생활하는 것도,
연필로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
현명한  여성이었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의의가 좋아 다정했었다는 얘기를 용호는 어머니에게 여러 번 들었다.
.
용호 생각에도 외할머니는 감성이 풍부하고 마치
인생의 진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처럼 생각하는 방향이
정확하며 진실했다.
.
                               전국이 피난행렬로 덮이고
.
딸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할머니는 보통 사람들처럼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고, 아주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며
사위를 위로했다.
.
"진 서방도 지금 당장이야 얘네들 엄마가 없어 허전하겠지만,
마음 안정되는 대로 좋은 색시 깜 구할 생각하도록 해.
그래야 생활이 안정되지. 남자들이야 상처하고
1년 안에 재혼해도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 없어요.
.
여자 같으면야, 혼자 되고 바로 재혼하면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주위에서 온갖 비판이 쏟아지겠지만, 
남자야 그런 눈치 볼 필요 없잖아?
사회가 그만큼  여자에게는 가혹한 거지."
.
할머니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침착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분, 아버지에게 재혼 권유를 하는 할머니를
똑똑하시다고 생각하면서도, 용호는 새 여자가 들어오면,
우리 집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질 까를 상상하고 있었다.
.
외할머니가 외동 딸을 먼저 보내고도  슬픈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의지가 대단히 굳은 분이라고 감탄을 했었는데,
지금 용호와 용희 숨길 장소를 꾸미면서,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
북괴군 모르는 곳에 숨길 장소를 꾸미는 할머니 표정은
조용하면서도 단호했다.
절대로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함이었다.
.
용호가, 할머니는 언제나 일 처리하시는 게  똑똑하시다고 생각하면서
다락에 이부자리와 침구를 올려놓는데,
쾅, 쾅,  쾅, 누가 현관문 두드리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계속)
.
 

Comment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65 입석손님 (19) - 깨물어주고 싶어 윤미림 13-08-24 1199
64 입석손님 (18) - 감질나는 사랑 윤미림 13-08-24 1173
63 입석손님 (17) - 아픈 과거 윤미림 13-08-24 1254
62 입석손님 (16) - 사랑의 밀어 윤미림 13-08-24 1160
61 입석손님 (15) - 소곤소곤 윤미림 13-08-23 1646
60 입석손님 (14) - 애무 윤미림 13-08-23 1608
59 입석손님 (13) - 여자 리드할 줄도 몰라? 윤미림 13-08-23 1517
58 입석손님 (12) - 아픔을 딛고 전진 또 전진 윤미림 13-08-23 1856
57 입석손님 (11) - 생사의 갈림 길 윤미림 13-08-23 1667
56 입석손님 (10) - 붉은 완장들 총 출동 윤미림 13-08-23 1356
55 입석손님 (9) - 숨 죽이고 사는 나날 윤미림 13-08-23 1220
54 입석손님 (8) - 자옥의 3개월 윤미림 13-08-22 1274
53 입석손님 (7) - 아, 통곡한다, 우리 정부는 어디에 윤미림 13-08-21 1675
52 입석손님 (6) - 전쟁의 참상 윤미림 13-08-21 1059
51 입석손님 (5) - 포성만 은은히 들려오고 윤미림 13-08-21 1223

[ 시사 View 社說 ]

中華思想 구겨버린… 입력 2020.1.23. [시사뷰타임즈] 중국은 고대로부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오로... 더보기

[한석현 칼럼 '횡설수설']

헌법재판소 재판관 잰위애게 "헌법재판소 판사들에게!" 한석현 글 <마귀의 역사를 물리쳐라> 2017. ;3. 10 2017, 3. 11일은... 더보기

[이명수 칼럼 '민초지후']

쪽바리 일본의 독도침탈용 대대적인 망나니 굿판 옛말에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쪽바리 일본에 해당되는 말이라 하겠다. ... 더보기

[오대환 칼럼 '사강정론직필']

어리석은 참으로 어리석은 정권 박근혜 정부가 이란이 미국의 금융제제로 한국에서 찾아가지 못한 3 조원의 돈을 못 찾아... 더보기

[홍정호 '정치인 분석']

조국 조국 정무직공무원, 대학교수출생1965년 4월 6일 (만 52세), 부산소속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더보기

[윤미림 메타세콰이어]

아픔의 시간들 (49) - 방송을 떠나다 . . 아픔의 시간들- (49) . 방송을 떠나다 . 여권 받는 고통, 로맹 롤랑 전집 35 권 맨 뒷장마다... 더보기

[현영춘 칼럼 '세상잡설']

상식과 몰상식. 민주주의 국가에서(그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흔히..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이라해도),... 더보기

[김재찬 칼럼 '단순무식']

아이들아 얼마나 무서웠니 ? 시사뷰 횐님들 그동안 안녕 하셨습니까 !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닉네... 더보기

[박근혜의 모든 것]

[세계의 지식인들 “박근혜 집권 반대, 유신독재의 회귀”] 교협, 58개국 552명 지식인 연대 서명 성명 발표 …박근혜 후보 집권 초국경적 파급력 클 것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