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석손님 (10) - 붉은 완장들 총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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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손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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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완장들 총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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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 남매는 다락으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가만히 닫고,
수상한 내방자의 동태를 살폈다.
웅성거리는 분위기로 봐서 찾아온 사람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명인 것 같았다.
조금 후 그들을 돌려보내고 현관 문을 걸어잠그고 돌아온 할머니는,
다락의 아이들한테 작은 소리로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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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위부 소속 여맹 뭐라 하는 여자가
붉은 완장 차고 , 붉은 완장 찬 다른 여자들하고 남자들이 왔어.
여기 할아버지를 따라 청년 두 사람이 가는 것 같았는데,
못 봤느냐고 묻기에. 그런 일 없다고 했더니,
혹시 그 청년들이 오면 자기네한테 알려달라면서,
약도를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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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쥐 죽은듯이 다락에서 나오지 마라.
할머니가 수시로 연락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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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긴장된 음성과 표정에서,
현실이 얼마나 다급한 위험 속에 있는지, 
용호는 사태의 심각함을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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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는 외가의 내력을 마치 소설 읽듯이 전에 어머니에게 들었다.
외할머니나 바로 아래 여동생이 결혼하던,
1909년을 전후한 시대에는,
당사자들은 서로 얼굴도 못보고 어른들 중매로 혼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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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은 안중근의(安重根)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오전 9시 30경, 이등박문 저격에 성공,
그 사건은 한·일 두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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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험악한 시대에 태어난 할머니의 여동생도,
신랑도 보여주지 않는 중매 절차를 거쳐 혼인.
중매쟁이 말이, 앉아 있는 신랑감이 아주 잘생겼다고 하여,
양반 뼛대만 보고 혼인을 결정했었다.

그러나 혼인 날 보니, 신랑은 한쪽 발이 불구였다.
어릴 때 발을 뱀에 물려,
목숨은 구했지만, 한 쪽 발은 등나무처럼 비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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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불구 신랑과 아내는 금실이 좋고,
동생 남편은 건강한 사람처럼 대외활동은 못 해도,
술 담배 안하고 성실하여,
가족을 소중히 여겨 부지런히 불편한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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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내외는 늦게 아들 하나를 얻어,
초등학교 나와 3개월 간 나라에서 실시하는 특별 강습 받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지방에서 근무 중에
왜정말기 학도병에 끌려 나갔다가 해방 후 무사히 귀환,
지방에 근무 중이다. 이번 전쟁 일어나자, 잘 있으니.
걱정하시지 말라는 연락은 인편에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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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 외조모는 평생을
그 여동생 가족을 돌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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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정릉 시골 200평 남짓한 땅에 목조건물 두 채를 지어
여동생 내외에게 하나를 주어 살게 하고,
남는 터는 관상수 몇 그루 외에는
두 집 식탁용으로, 채마밭을 만들어, 철 따라 야채를 재배했다.
채소가꾸기는 주로 동생 남편 담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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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화로운 전원 마을이 북 인민군의 침입으로
하루아침에 평화는 사라지고 시시각각 공포만 더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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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전 지휘하는 맥아더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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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소식은 주로 동생 남편이나 할머니 자매들이
시장에 나가 날라왔다. 간혹 잡음이 칙칙거리면서,
들리다 말다 하는 라디오로도,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UN군이
지상과 하늘과 바다에  참전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지만 확실한 전황은 알 수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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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할머니들이 재래시장에 함께 나가는 날에는,
할아버지가 용호 남매 숨어있는 집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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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에서 돌아온 어른들이 전하는 얘기는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올라가는 참혹한 소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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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살기 괜찮은 집안은 공산주의자들 눈에는,
악질반동분자요, 썩어빠진 부르조아라 처단해야 하는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한 빨갱이들이 더 잔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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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한 복판에 책상 몇 개를 쭈욱 늘어놓고,
붉은 완장 찬 젊은 패들이 반동분자로 지목한 사람들을
그 위에 세워놓고 죄상을 주어 섬긴 다음 박수 치면,
그 자리에서 즉결 판결이 나, 처형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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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야만적인 살인장난이 반복된다는 소문이
쑤군 쑤군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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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나온 반동분자로 분류되어 처형되는 사람들은
정치보위부여맹원들 꼬임에 넘어가 나온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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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악마들이, 정치보위부에 나가서 자수하면 용서도 받고
평양 가서 좋은 대우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곶이 듣고
자수한 시민들을 적들은 그렇게 무참하게 처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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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못보고 몇 달을 다락에 숨어있던 용호 남매는,
얼굴이 노랗게 떠 핏기가 없어지고,
용인 처가에 간다는 아버지는 소식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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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UN 군 전투기들의 폭격이 무서워
사람들은 거리에 나다닐 수가 없었다.
제공권을 빼앗긴 인민군들은 지상에서 남한 시민들, 특히
문화인들을 소탕하는데 점점 더 악랄하게 기승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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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9월 15일 UN 군 인천상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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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할아버지가 외출에서 돌아와 전해준 얘기.
유명한 소설가 누구누구는 삼청동 처가에 안전하게 잘 숨어있는걸,
그 집 유치원 다니는 어린애가, 지프차 타고 온 어떤 아저씨가 
과자를 주며 아무개 선생님 아디 계시냐고 묻자,
집안으로 뛰어들어가며, 골방으로 안내하는 바람에
납치되어 희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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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비참한 얘기는 널려있었다.
그와 같은 비극 속에서도, 9월 15일,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UN 군의 인천상륙 뉴스,
9월 28일, UN 군과 아군은 적으로부터 서울 탈환에 완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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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복 후 정릉으로 찾아온 용호 아버지는 너무 몰골이 야위어,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는 놀라는 장모와 자식들에게
그 동안 겪은 일들을 대충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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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빨갱이들이 남대문 가게를 부수고 가방을 약탈해가는 걸
제지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조금 있었다.
상대 패꺼리들이 정치보위부에 반동분자로 고발해버려,
그는 붙잡혀 소공동 미도파 근처 작은 건물 지하에 감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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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가 된 서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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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전란으로 번듯한 건물들은 거의 다 파괴l되고,
부서진 잔해만 널려있어, 사람 사는 도시 같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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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 아버지가 지하실에 감금당하던 처음에는
우박 쏟아지듯이 폭단이 떨어지는 아군의 공습을 피해,
밤에만 끌려나가, 정치보위부 인간들 감독을 받으면서
틈틈이 으슥한 자리에 구덩이 파는 노역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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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정치보위부 감시자들은 노동 일을 중단시키고,
용호 아버지와 함께 구덩이 파던 사람들을,
다른 건물의 협소한 지하실로 옮겼다.
그리로 끌려온 시민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마음대로 일어서고 앉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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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무장한 인민군 두 사람 씩,
출입구 쪽에서 교대로 감시하고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비참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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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하루, 아들 용호의 피아노 치는 중학 선배 학생이
붙잡혀 들어와, 용호 아버지는 깜짝 놀랬다.
그  학생은 자수하면 살려준다고 하여 자수했더니,
이리로 끌려 들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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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용호아버지는 이 학생에 관한 얘기만은
아들 앞에서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학생이 적들에 의해서 생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이,
아들에게 심한 충격 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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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에서는 매일 호명되어 나가면,
곧 다시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한번 불려 나가기만 하면, 조금 후 밖에서 총소리가 나고
그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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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 아버지 차례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던 어느 날,
살아 날 길이 없는 그는 산다는 것을 단념하고 있을 때,
한 인민군이 들어와
인민군 감시자에게 뭔가 귓속말을 나누더니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아들의 선배학생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불려나가는 용호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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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도 못 보고 이젠 죽었구나,
애비 없이 그것들이 얼마나 고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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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 아버지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모든 걸 단념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있던 다른 인민군이, 용호 아버지 이름을 확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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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는 남대문 시장 아무개 동무가
당신 사상 보증한다고 하여, 내보내는 것이니,
나가서 우리 북반부 위대한 장군님을 위하여
신명을 바치라는 짤막한 훈시를 남기고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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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풀려났다구∼? 내가 살았다구?
그는 살아난 게 믿어지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
희한한 일도 다 있네, 남대문 상인 누가 내 사상을 보증 섰지?
그 이름이 누군지 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한 젊은이 얼굴이 떠올랐다.
아, 그 사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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