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석손님 (11) - 생사의 갈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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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손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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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갈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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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 아버지는 남대문 자신의 가게 옆 구석진 길에,
싸구려 옷 몇 벌 걸어놓고 팔던 젊은 사람 모습과 이름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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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순하기만 하고 장사에는 서툴러 벌이도 시원찮은 데다가,
제대로 된 터를 잡을만한 장사 밑천도 없어,
여기 저기서 구박만 받는 게 안 되어,
용호 아버지는 그 젊은 친구가,
용호네 2충 목조건물 한쪽 옆으로 와서,
옷을 걸어놓고 파는 걸 모르는 척 눈감아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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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의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아들아이라도 오면,
용호 아버지는 그 애한테 과자 값도 쥐어주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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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인민군 침입 후,
남대문시장에서 그 젊은이는 보이지 않았다.
시장의 다른 상인들 말에 의하면,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몰입해있는 자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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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어떻게 내가 소공동  지하실에  붙잡혀 들어간 것을 알고 도와주었을까∼?
용호 아버지는 궁금했으나,
지옥보다 무서운 그 지하실에 다시 가서,
물어볼 입장도 아니어서, 그대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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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않은 사람의 도움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목숨을 건진 용호 아버지는 극도의 긴장으로
살아 있다는 게 실감도 나지 않고 얼떨떨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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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이 심해 중앙청 인근인 집에는 들리지 못하고,
남대문 가게로 가서 상품은 다 도난 당한 자리에,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다가, 다시 한강 상류 쪽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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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서 참외 두어 개를 사서 요기하고,
용인 처가로 돌아가, 몸을 추스르고,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직후, 정릉에 먼저 들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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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수복기념식에서 맥아더 장군이 박수 치는 가운데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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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은 했지만,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만도 감사하여,
할머니와 용호 남매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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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순간에 목숨을 건진 얘기 끝에 아버지는
용호와 용희 남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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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수복 됐다고는 하나,
아직 다 도망가지 못한 적들이
이 근처 산 속 으슥한 곳에 숨어있다가 어두운 밤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너희들은 절대로 밤에는 나다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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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집에도 들리지 마라. 내가 다녀올 테니까….
집에 먼저 들릴까 하다가,
중앙청 주변에는 군대들 경비가 삼엄하여 못 가고,
여기 먼저 들렸다. 거긴 아마 폭격으로 다 망가졌을 거다.
집이 남아있다면 기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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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이 말끝을 흐리는 40대 초반의 아버지가
갑자기 노인이 된 것처럼 나이가 들어보였다.
용호는 아버지가 불쌍하여 가슴이 메어질 것처럼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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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들은 다 잘 있어?"
장모가 화제를 바꿔, 사위에게 물었다.
"아직 어리니까, 병나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여겨야죠.
모기장 안에 재웠는데도, 애들이 모기에 물려,
몸뚱어리들이 콩 멍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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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빨갱이들 난리 통에 논에 제 때 사람 손이 가지 않아,
금년 벼 농사는 망쳤다고, 농사꾼들은 걱정이 태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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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들도 못됐지만, 시골 공산당 패들이 더 악독해요.
시뻘건 완장을 차고 돌아다니면서,
조금 살만한 집은 가만 두지  않았으니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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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 착취해서 니들 부자 된 거라면서,
곡식이고 옷가지고 남아나는 게 없이 다 뺏어가요.
특히 군인하고 경찰 가족들은 반동분자라고 희생 많이 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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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 아버지는 점심식사만 하고 다시 시내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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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는 이 삼일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서린동 선배한테 가려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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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리 어디를 봐도
우리 군경 합동 치안 대책반들은 민심을 안정시키면서,
적에게 부역한 자들 색출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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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09.28, 서울 수복 후 태극기를 중앙청에 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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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적들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남한의 점령지역마다 돌아다니면서 중학생이라도 키만 좀 크면,
전부 붙잡아다가 의용군 만들어, 후퇴할 때는 총알받이로
앞세우고,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사살해버리는 잔악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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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었다.
남한에 있던 공산당들은 군경 가족들이나 문화인들을
가진 고문으로 고생시키다가 총살,
구덩이에 파묻고 달아나는 야만적인 죄악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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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귀를 막고 싶은 적들의 잔혹한 얘기들이 떠올랐으나,
반겨줄 선배가 보고싶은 마음에,
용호는 반 뛰어가다시피 서린동 선배네 집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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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집은 이사 가는 집처럼 대문도 열려있는 데다가,
인기척 없이 집안이 휑하니 비어 있는 것 같았고,
마당에는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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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여보세요∼"
대문 앞에서 몇 번 부른 다음에야,
안에서 낯이 익은 일하는 아줌마가 나왔다.
용호룰 보자 뛰어나와 손을 잡으면서,
"어떻게 소식 들었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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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아무  것도 모르고 왔다고 하니, 
간단하게 그 지간 얘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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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어른이신 의사 선생님은 인민군하고 정치보위부 놈들이
강제로 납치해가고,
글쎄 막내 아드님은 자수하라는 친구 놈 꼬임에 넘어가 자수했다가,
지하실에 갇혔다가 사살 당해, 구덩이에서 며칠 전에 시체를 찾아,
사모님과 친척들이 오늘 장지로 갔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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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는 너무 놀라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선배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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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가족을 무참하게 희생시키다니∼∼?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 착한 형이 지하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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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잘 쳐, 3.1 절 같은 교내 행사에
음악선생님은 그 형에게 피아노 반주를 시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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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어디에선가,
온화한 표정의 선배가 웃으면서 다가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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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는 비오듯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저
"형∼, 혀어엉∼∼∼"하고
허공을 향해 울부짖으며 천천히 정릉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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