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석손님 (17) - 아픈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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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손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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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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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에서 남자에게 안겨,
소곤거리던 여자는 목이 메이면서,
자기 눈시울을 누르고 잠깐 사이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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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뭣 땜에?"
남자가 여자 눈을 들여다보면서 걱정스럽게 속삭였다.
"아무것도 아녜요. 감격해서 그런 가봐요."
여자는 눈물을 삼키면서 머리를 옆으로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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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에는 집에서 식사하는 하숙인들이 없고,
하숙집 주인인 수란 고모도 귀가하여, 
용호는 저녁 때, 수란과 함께 종로로 나가 외식을 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몇 번 들린 일이 있는,
인사동의 찻집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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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걸어도 옛 정취가 느껴지는 인사동 길,
종로 쪽 입구에서 안국동으로 통하는 길은
얕으막한 건물들과 거리 풍경이 친근감을 준다.
인사동에는 어둠이 내려앉고
상가 불빛이 휘황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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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화원처럼 많은 관엽식물 화분과,
꽃과 나무 사진 액자들이 많이 걸려 있는 다방 안은,
음악이 잔잔하게 흐를 뿐,
휴일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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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하숙집에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수란을 보고,
용호는 그녀의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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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몸뻬 차림으로 주방에서 일하던
정씨아줌마와 지금 하얀 칼라의 밤색 원피스 차림의
단정한 여성이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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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여성을 중학교 중퇴의 배운 것도 없는,
하숙집에서 막노동이나 하는
하층부류의 여자라고 보겠는가.
의상 색상부터
심플한 디자인의 까만 핸드백과 같은 색 구두,
화장 끼 없는 하얀 얼굴,
그녀는 분명히 지성미 넘치는 품위를 풍기는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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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란 씨는 꼭 영국 고전영화에 나오는
제복 입은 여학생 같네요. 의상 색갈이 낙엽지는 계절과도  
잘 어울려요. 같은 여성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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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눈으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그는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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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에서 아늑한 코너에 자리 집은 그는
수란을 옆에 앉히고,
숫제 그는 그녀 쪽으로 돌아앉아 신기한 듯이
그녀 손을 잡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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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란 씨, 왜 이런 모습을 그 동안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아저씨, 이 원피스 맞춘 지 오래 된 거예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여,
쑥스럽고 부끄러워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대답했다.
그때 종업원 아가씨가 차 주문을 받으러 와서,
잠깐 두 사람의 대화가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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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란 씨 뭐 할래요?"
"아저씨하고 똑 같은 거요."
"커피 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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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이 간 다음, 용호는 수란을 쳐다보면서
의미 있는 말을 꺼냈다. 
"수란 씨, 이제, 아저씨라고 그러지 마세요.
난 수란 씨라고 그러는데…."
"그럼 아저씨를 뭐라고 불러요?"
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는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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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용호 씨라고 부르지요, 뭐…."
"아이, 안돼요. 격이 틀리는데요.
내가 어떻게 감히 아저씨 이름을 부르겠어요….
아저씨 같은 분을 짝사랑하는 것만도 영광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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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저으면서 말했다.
눈길을 아래로 떨구며 말끝을 흐리는 여자의 말소리가
쓸쓸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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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종업원이 차를 날라왔다.
용호는 차를 마신 다음 화제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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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님한테는 나하고 나간다고 말씀드렸어요?"
수란은 대답 대신 고개로만 대답하며
그에게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언제나 웃고 살아요. 수란 씨는 웃는 얼글이
특히 보기 좋아요."
"후후후…, 내가 심각했나요? 심각해진다고
고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
다 체념하고 사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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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모는 늘 나보고 그러세요. 넌 박복하게는 안 생겼는데,
부모형제 다 있는 집안에 태어나서, 부모 사랑도 못 받고,
왜 고생만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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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란은 남녀차별이 극심한 집안에서
힘들었던 성장과정과,
결혼을 서둘렀던 결과가 고통을 가중시켰던 일들을
꼭 남의 얘기처럼 웃음을 섞어가며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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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싸둥이까지 딸이 셋인데, 또 딸이 나왔으니까,
부모는 집안이 망쪼가 드는가보다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아이의 이름도
지어주기 싫다고 하는 것을,
지금 집의 고모가 수란이라고 지어주었대요.
내 아래 남동생 둘은 다 대학 공부 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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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욕심도 많아 딸이라도 학교에서
일등도 하고 급장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수란은 집에서
부모의 차별 대우에 반감이 쌓여,
해방 후 중2에서 중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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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언니가 일하는
지방 성당에서 잔심부름하면서 숙식을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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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는 어린이용 종교서적은 많았지만
수란은 종교책보다는
일반 소설 읽기를 더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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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육이오 전쟁 통에
고생고생하고, 휴전 되던 해, 스물 세 살 때,
좋은 변화가 있을까 싶어,
중매로 읍내 학원강사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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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란은 결혼한 남편이 첫 남자였다.
그런데도 남자는 왜 첫날밤에 피가 안 나오느냐,
바른대로 대라고 가진 협박을 다 해,
결혼이 두 번 째 지옥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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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테어나고, 님자가 교통사고 당하고 백혈병 앓다가
죽었을 때는 지옥에서 벗어난 것 같아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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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비극을 생글거리며 얘기하는
수란을 바라보면서,
용호는 인생의 출발부터 잘못된 이 착하고 귀여운 여성에게
동정심과 애착으로 몇 번 눈시울이 아파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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