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기슬레인 맥스웰은 누구인가? 사랑하는 딸, 몰락의 원인


2000년 경의 기슬레인 맥스웰. 아버지의 딸의 이름을 딴 야트 (요트) 숙녀 기슬레인 호에서 찍은 사진. IMAGE SOURCE,GETTY IMAGES / 라벗 맥스웰과 자식 9. 기슬레인 맥스웰은 엄마 무릎 위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IMAGE SOURCE,SHUTTERSTOCK

 

 

: 존 켈리, BBC 뉴스

 

입력 2021.12.30.

BBC 원문 2분 전

 

 

기슬레인 맥스웰은 런던과 뉴욕 상류사회에서 소문난 미인이었다. 이제 맥스웰은 미성년 여자 아이들을 다듬어 밀매한 혐의로 유죄가 됐다, 자신의 삐딱한 아버지의 변덕을 대접하는 것을 익힌 뒤, 맥스웰은 그후 또 다른 폭군 독재자 제퍼리 엡스틴을 위해 똑같은 일을 했다.

 

 

[시사뷰타임즈] 기슬레인 맥스웰은 1961년 성탄절 날에 태어났다. 3일 뒤, 15살짜리 오빠 마이클을 태우고 가던 차량이 악스펏셔 도로를 끼고 가던 대형화물트럭과 충돌했다. 마이클 맥스웰은 의식불명인 상태로 그의 인생 중 나머지 7년 을 보냈다.

 

맥스웰이 물질적 풍요 속에 태어나긴 했지만, -아버지가 출판업 거물 라벗 맥스웰- 보고 들은바에 따르면, 기슬레인 맥스웰의 초젼 시절은 감정적 부주의로 망가진 것이었다. 엄마 베티는 나중에 회고록에서 마이클에게 사고가 난 후로 아기 맥스웰은 파괴된 부모에게서 거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었음을 시인했다.

 

1965년 어느 날, 엄마 베티에 따르면, 3살 된 기슬레인 맥스웰이 자기 앞에 서더니 엄마, 나 존재하고 있어라며 선언했다고 한다. 베티도 이 타박거리며 걷는 아기가 신경성 식욕 부진증이 있다고 믿었다. 이것을 보상해 주고자, 그때부터 부모는 극단적으로 반대로 나아가면서 막내 딸에게 과할 정도로 정을 퍼붓기 시작했다.

 

맥스웰은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 모두에게 가하는 학대와 남용에서 제외된 적이 없었음에도, 곧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딸로 부상한다. 그리고, 베티는 자신의 1994년 회고록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이 망가졌다. 내 자식들 중 유일하게 이렇게 됐다고 진정으로 말한다.” 고 적었다.

 

현재 뉴욕 법정은 기슬레인 맥스웰에게 너무도 충격적인 여러 혐의 -소아애 병자인 금융업자 제퍼리 엡스틴이 학대할 어린 소녀들을 다듬어 성 밀매했다는- 를 유죄라고 했고, 맥스웰의 망가진 어린 시절에 대해 설명이 되는 것을 찾아보려 한다.

 

그러나 맥스웰의 범죄들이 변명이 불가능한 것과 똑같이, 이 여자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공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맥스웰의 전기 중 자세한 세부 사항들은 항상 이례적으로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맥스웰은 영국의 테임즈 강 옆의 상류 도시인 악스펏 (옥스포드) 시가 내려다 뵈는 이틀리 (이탈리아) 풍의 대저택들이 즐비한 헤딩튼 힐 홀에서 자랐다. 부호인 맥스웰의 아버지는 이곳을 스스로 구입하기 보다는, 이곳의 집 소유주인 악스펏 시 의회를 어떻게든 설득하여 가장 적은 금액으로 월세를 주되 집을 개조하여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임차를 하려 했다. 아버지는 시 의회가 내놓은 임대 주택 중 이 나라에서 최고라고 했다.

 

기슬레인 맥스웰의 어린 시절 내내, 호화로운 잔치가 헤딩튼 힐 홀에서 열렸고, 정치인들, 유명인사들 및 언론계 고위층 사람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 유명인사들이 떠나고 난 뒤의 건물은 어린이가 성장할 장소로는 감정적으로 심히 엄격한 곳이었다.

 

라벗 맥스웰은 체코슬로밬 (체코슬로바키아) 유태인 정착촌 -아버지의 가족 대부분이 대학살에 살해됨- 에서 지극히 빈곤한 가운데 일어나 영국군 전쟁 영웅이 됐고 그후 학술적 잡지 출판, 노동당 국회의원 그리고 결국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신문들 중 하나인 미러 일보사주가 됐다.

 

사업가로서, 그는 약자를 괴롭히는 자라며 심한 욕을 먹었다. 집에서는 한편, , 좐 프레스턴의 자서전 묘사에 따르면, 아이들을 육체적 및 말로 학대했던 지독히 엄격한 아버지라고 했다.


자식들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세계 지정학적인 것 또는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계획에 대해 추궁을 받곤 했는데, 이 거창한 주제는 아버지가 자신들의 대답을 불만족스럽게 여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줄어들곤 했다. 라벗의 자식들 중 한 명인 이안은 그는 우리들을 혁대로 때렸는데, 아들은 물론이고 딸도 때렸다고 했다.

 

막내 딸인 기스레인 맥스웰이 가장 좋아하는 딸이긴 했어도, 이러한 일에서 면제되진 않았다. 맥스웰의 형제 자매들 일부가 처박혀 있거나 반란을 한 반면, 맥스웰은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려고 걱정을 했고, -맥스웰은 2000, 태틀러 잡지사에 아버지는 영감을 주는부모라고 함- 아버지를 기분 좋게 유지하는데 전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음은 분명했던 것이, 나중에 아버지는 자신의 개인 야트 (요트) 이름을 다른 딸 세 명 또는 아내의 이름이 아니라 기슬레인의 이름을 따서 숙녀 기슬레인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분명하게, 그는 막내 딸에 대한 원대한 희망이 있었는데, 맥스웰을 죽은 케네디 대통령 아들에게 시집 보내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 듯 했다.

 

맥스웰은 말보로 단과대 및 악스펀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현대 역사 및 언어를 전공했다.

 

맥스웰과 동시대에 악스펏 대학에 있었고 똑같은 사회 동아리에 들어갔던 작가 애너 파스터낙은 아직은 내학생이었던 나에게도 맥스웰이 권력과 돈에 관심이 잇다는 것은 매우 분명해 보였다.” 고 하면서 맥스웰은 상대방에게 입맞춤을 하는 손짓을 보내거나 양 볼에 입을 맞추는 시늉을 하면서도 (ait-kissing) 그 상대방 어깨 너머로 더 강력한 사람 또는 더 흥미로운 사람이 있는 지를 살피는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고 했다.

 

 


air-kissing 이?


 

영국 수상의 여 형제이자 또 다른 동시대 악스펏 동문인 레이저 좐슨은 기슬레인 맥스웰을 길 건너편에 있는밸리어 -악스펏 대학 내 단과대- 학부 학생 휴게실 (JCR)에서 목격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최근 양미간을 찌푸리고는 거만한 눈을 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빛나는 여걸 미인,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내 남자 형제 보리스 좐슨의 허벅지에 올라 앉아있네라고 비난했다.

 

졸업후, 맥스웰의 아버지는 막내 딸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축구 동아리이자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악스펏 유나이팃의 이사로 임명했고, 맥스웰에게 기업 선물을 공급하는 회사도 차려 주었다.


그러나 태틀러 잡지사나 나이절 뎀스터의 1일 우편 (Daily Mail) 지의 수다/험담 난 -이제 맥스웰이 정기적으로 등장하는 고정 인물이 돼 있는- 에선 보통 맥스웰을 여자 사업가가 아니라 차라리 사교계 유명인사로 묘사돼 있었다. 맥스웰은 이틀리 귀족인 지안후랑코 씨코냐와 연애하기 시작했다.

 

맥스웰은 또한 개인 회원들의 여자들 만을 위한 배타적 동아리도 만들었다. 파스터낰이 두 세 번 도움을 주러 왔었지만,개념의 동아리는 그 당시 혁신적인 듯했지만, 파스터낰은 맥스웰이 남녀평등주의자로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인 것으로 봤다.

 

파스터낰은 내 기억으로는 맥스웰은 다른 여자들에게 세상사에는 별 관심없이 활기차고 매력적인 류의 사람이긴 했지만, 어느 여자와 대단히 친한 친구가 됐었다는 기억은 없다.” 고 하면서 여자들은 맥스웰에게 정말이지 중요하지 않았고 또 다른 힘 있는 남자에게 접근하는 수단 밖에 안 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했다.

 

19911, 맥스의 아버지가 힘들어 하는 뉴욕 일간 뉴스 지는 손에 넣은 뒤, 맥스웰은 자기 아버지의 대리인으로 이 신문 본사에 파견됐다. 이것이 맥스웰이 맨해튼 사교계 현장에 입문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11, 맥스웰의 세상은 뒤집어져 버렸다. 아버지가 캐네리 (카나리아) 섬 앞바다에 있던 딸 이름으로 숙녀 기슬레인이라고 지어주었던 그의 개인 야트 갑판에서 증발해 버렸고 나중에 그의 시신이 바다에 떠있는 채로 발견됐다.

 

기슬레인 맥스웰은 곧장 이 야트가 정박돼 있었던 라스 팔마스 (: 캐너리 제도에 있는 항구도시) 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어느 모로 봐도, 맥스웰은 아버지를 잃었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죽은 바로 다음 날, 부둣가에 모여있던 세계의 언론들이 부탁하자, 맥스웰은 감정에 복받친 연설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벗 맥스웰이 직원 32,000명을 희생시키며 회사 주식 가격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미러 그룹의 연금 기금 44천만 파운드 (583백만 달러) 에 침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맥스웰 가족과 영국 정부는 사태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하게 됐는데, 후자는 구제 기금으로 결국 1억 파운드 (132백만 달러) 를 지불했다. 19926, 이란 및 케빈 등 라벗의 아들들 중 2명이 체포되어 사기 협의를 받았다. 이들은 결국 1996년에 무죄가 선고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아버지 유죄임이 명백했으나, 기슬레인 맥스웰은 계속 아버지를 옹호했다. 맥스웰은 1992년 초, ‘허영으로 가득찬 세상 (Vanity Fair)’ 이라는 이름의 잡지사 엗워드 케빈에게 아버지는 비뚤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고 하면서 내가 볼 때 도둑이란 돈을 훔치는 어떤 사람을 말한다. 우리 아버지가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아니다. 난 아버지가 한 일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뭔 일이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 돈을 자기 주머니 속에 넣었다고? 아버지가 그 돈을 가자고 도망갔다고? 아니다. 비뚤어진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정의는 이러하다.” 고 했다.

 

맥스웰의 나머지 자매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사고가 아니면 자살 둘 중 하나라고 받아들였던 반면, 이 막내딸은 살해된 것이 분명하다고 우겼다.

 

맥스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미러 그룹 연금 추문은 영국으로 하여금, 맥스웰을 결코 환영하지 않는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199211, 맥스웰이 4천 달러 (3,019파운드) 에 뉴욕으로 날아가는 편도 콩코드 여객기 표 한 장을 구매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5, 해리 마운트 -The Oldie의 편집자이자 Daily Mail Daily Telegraph에 자주 기고하는 영국의 작가이자 언론인- 는 맨해튼에서 외롭다고 느끼고 있었다. 33세인 그는 일간 전보 (Daily Telegraph) 지의 뉴욕 특파원으로 막 임명됐지만, 이직은 뉴욕시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 친구가 그에게 기슬레인 맥스웰의 집에서 열리는 잔치 자리에 자기를 따라 깍두기처럼 가고 싶냐고 묻자, 마운트는 기다렸다는 듯 그 기회를 덮썩 잡았다. 맥스웰은, 어쨌거나, 맨해튼 사회에서는 저명한 인물이었고 빌 클린튼,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심지어는 교황 좐 폴 2세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미국의 대단한 사람들 및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맥스웰의 영국 상류사회의 말 억양 및 앤드류 왕자와의 우정은 맥스웰을 이국적이자 매혹적인 인물로 드러나게 했다.

 

마운트가 맥스웰의 동부 위쪽에 있는 5층짜리 대저택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맥스웰이 자신에게 달려들어 질문세례를 퍼붓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마운트는 맥스웰이 마치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남자라도 되는 양 자신이 대꾸하는 내용에 초집중하여 경청했었다고 회상한다.

 

현재, 자신이 맥스웰과의 조우에 대해 갈을 올렸던 옛것 잡지 (Oldie magazine) 의 편집자인 마운트는 맥스웰이 나한테 특히나 우호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엇다.” 고 하면서 그 여자는 완벾하게 정중해 있음으로싸 닐 이주 꼼짝 못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었다.” 고 했다.

 

마운트는 맥스웰이 자신의 많은 감정을 늘어놓는 것 및 매력은 자신의 문제 많았던 어린시절의 부산물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누구라도 이 대단한 연결과 확신이 섞여지게 된 채로 대단한 사람들 및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동하지만,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선 확신을 갖지 못한다.” 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평소의 흔한 상태 보다 스스로가 좀 더 멋지다는 확신을 자기 자신들에게 갖지 못한다.”

 

마운트가 자신이 빼먹은 것이 뭔가 있다고 깨달은 것은 나중에서였다.

 

기슬레인 맥스웰은 신탁 기금에서 매년 8만 파운드 (106,000 달러)를 받는 상태가 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자기에게 해당되는 돈이라는 것을 나중에 회고했고, 이 금액은 맥스웰의 호화로운 집 값으로는 거의 충분치 못할 것이었다. 여러 해 뒤, 검사들은 이 부동산은 제퍼리 엡스틴이 돈을 대줬던 것이렀을 것이라고 했다.

 

그 단계에서 마운트는 맥스웰과 잘 알려진 이 금융업자와의 관계에 대해 놀랐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엡스틴의 맥스웰과의 관계를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언론인들이 샅샅이 조사했다


2005, 14살 짜리 소녀의 부모가 경찰에게 엡스틴이 자신들의 딸을 성추행했다고 말했고, 3년 뒤, 엡스틴은 징역 3년 형을 받았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 엡스틴에 대한 주장들은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성관계를 위한 엄청난 여자 아이들 연결망을 운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2019년 그는 성 밀매 혐의로 다시 체포됐고 겨우 한 달 정도 후게 그는 감방에서 죽었다. 불가피하게 당국자들의 초점은 맹스웰에게로 향했다.


 

맥스웰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엡스틴은 비천하게 태어닌 암창나게 부유한 사람이었는데, 브루클린의 노동자 계층 이웃에 어울리는 상태였었다.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엡스틴은 결과적으로 수치를 당했으며 논란이 있는 여러 정황 속에 자살로 보이는 상태로 죽었다.

 

기슬레인 맥스웰의 엡스틴과의 관계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서로에게 이로운 것이었다. 맥스웰은 엡스틴을 자신이 알고 있는 부유하고 힘있는 친구들에게 소개해 줄 수 있었고; 그 다음으로, 엡스틴에겐 맥스웰이 기대하며 자랐던 생활양식에 자금을 대줄 자본이 있었다.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검사들은 이 한 쌍의 밀접함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맹스웰이 처음 엡스틴을 만났을 땐 맥스웰은 특히 부유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확실한 것은, 자기 아버지의 죽음 여파로 맥스웰이 뉴욕으로 돌아온 뒤. 맥스웰은 부동산업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한 달에 월세가 2천 달러 (1,509파운드) 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보도됐는데, 어느 모로봐도 괜찮은 생활수준이었던 바, 최소한 신탁기금을 고려에 넣지 않더라도, 맥스웰이 익숙했던 수전에 결코 못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관계의 자세한 세부 내용을 자세히 정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관계가 언제 시작됐고, 얼마나 오래 지속됐으며 그리고 얼마나 정확하게 그 특징을 그려야 하는 것인지가 심판자리에서 다투게 될 모든 현안 문제들이었는데, 막 결론이 난 것이다.

 

기소장에 적힌 1994-1997 사이의 기간과 관련된 맥스웰 심판에서의 4가지 혐의는. 맥스웰이 엡스틴의 가장 가까운 관계자들 중 하나였으며 또한 엡스틴과 친한 관계였던 때였다.

 

2000년대까지, 맥스웰은 또 다른 사업가인 텓 웨잇과 연결돼 있었다. 그러나 맥스웰의 엡스틴을 위한 일은 계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2003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이 있었던 2003년에 즈음하여, 엡스틴은 맥스웰을 자신의 최고의 친구라고 표현했고 언론인 비키 워드는 엡스틴 생활의 많은 부분을 맥스스웰이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검사들이 공개한 맥스웰과 엡스틴이 함께 찍힌 친숙한 사진들은 이들 두 명이 여전히 가까운 채로 남아 있었음을 시사했다.

 

법정 서류에서. 야자수 해변에 있는 엡시틴의 대저택에서 일했던 전 직원들은 맥스웰을 이집 관리자이며 직원들을 감독했고 금융사항 뒷배를 봐주고 사회적 조정자로 행동했다고 표현했다.

 

이집 살림을 도맡아 했던 한 사람은 맥스웰이 직원들에게 58쪽에 달하는 지시사항 설명서를 주면서 말하라는 말을 들을 때만 말해야하고, 엡스텐과의 눈 접촉은 피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은 맥스웰이 자신의 변덕스럽고 괴롭히는 아버지를 달랠 때 익혔던 것과 똑같은 기법을 엡스틴에게도 응용하려한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들 관계의 본질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검찰은 그들의 밀착성이, 가장 심각한 미성년자 성밀매라는 혐의를 포함하여, 학대 -기슬레인 맥스웰이 엡스틴의 희생자로 삼을 여자아이들을 물색하여 다듬는 등, 그리하며 5~6가지 혐의가 유죄라고 결정- 를 저지르는 유형들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묘사했다.

 

엡스틴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말하는 새러 랜섬은 BBC 전경 (全景) 프로그램에 맥스웰은 모든 여자아이들을 첨검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맥스휄은 제퍼리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는데...이건 많은 부분이 공동노력을 한다는 얘기였다.” 고 했다.


 

엡스틴이 사망하고 나서 몇 달 동안, 맥스웰은 쫓기는 상태로 숨어있었다. 여러 신문들은 맥스웰의 근황에 대해 추리를 하고 있었다. 세계 야러 나라 신문들의 전면에 맥스웰이 안과 밖 버커로스 엔절러스 지점 밖에서 찍은 사진이 등장했다.

 

그후, 20207, 맥스웰은 미국 뉴 햄셔 주의 외딴 곳에 있는 자신의 대저택에서 체포됐다. 두 세달 뒤, 맥스웰이 스캇 버거슨이라는 최고경영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일반적인 놀랄 거리로 떠올랐다.

 

맥스웰은 브루클린에 있는 대도시 구류 본부에 붙잡혀 있다. 맥스웰이 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오빠 이안은 BBC의 오늘 프로그램에서 여동생이 컨크릿 침대가 딸린 1.8m x 2.7m 크기의 감방에 갇혀있는 중이라고 했다.

 

여동생의 움직임을 추적하며 이동하는 사진기 한 대를 비롯 감시 사진기 10대로 여동생은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하면서 여동생은 감방 구석으로 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으며 감방 문에서 15cm 이내로 접근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여동생의 현재 생활 모습이다.” 라고 했다.

 

인생 대부분을 물질적 풍요에 둘러싸여 살았던 여자에게 이 상황은 창피스런 운명이다. 맥스웰이 대체 왜 감방 속에 들어갈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설명은 검찰이 해야할 일이다.

 

검사들은 돈 때문에 그런 것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자신의 팟캐스트 기슬레인 사냥에서 이 사건을 탐구했고 이와 관련된 책을 쓰고 있는 언론인 좐 스위니는 더욱 깊은 심리학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맥스웰의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퍼리 엡스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고 하면서 진실은 기슬레인이 아버지 비위 맞추는 법을 익혔고 그 이후 두 번째 괴물인 엡스틴의 비위도 맞출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이건 맥스웰이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걸고 한 짓어었다.” 고 했다.

 

라벗 맥스웰과 제퍼리 엡스틴 사이의 또 다른 유사점은 둘 다 자신들이 범한 범죄에 대해 전면적으로 생각해 보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변호단의 변호사들은 기슬레인 맥스웰이 엡스틴의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맥스웰 동반자의 비행 때문에 맥스웰이 비난을 받고 있다는 오래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파스터낙은 맥스웰이 엡스틴 보다 어느 모로라도 비난을 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일축해 버리면서 이 두 사람에게 인생을 삭제 당한 많은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기슬레인이 없이, 엡스틴이 접근할 수 있는 방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심판이 진행 중에 있지만, 이안 맥스웰은 관중이라는 언론에 여동생 변호단을 이해시키기 위한 글을 하나 올렸는데, 이 글은 언론기업들을 질책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는 언론들은 여동생의 이름을 부적확하게 발음한다고 했다. 그는 지즐레인이 아니라 길렌이라고 했다.

 

이 사건을 궁금해 하는 사람에겐 그 누구에게라도, 그 정도이기초적인 세부 사항들이 그토록 지속적으로 잘못돼 갔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일로 보인다. 결국, 이건 한 여자의 이야기이며 자신의 인생 전체를 신문 뉴스면 및 잡담 난에서 살아온 그런 여자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진전돼 감에 따라, 맥스웰에 대대 가정해왔었던 아주 많은 것들이 분명해 졌는바, 맥스웰의 관계 상황은, 그 어느 때라도 맥스웰의 수입의 원천이었으며, 그리고, 맥스웰의 근황은 실제와 같지는 않았었을 가능성이 컸다.

 

맥스웰의 범한 범죄들은 확실히 설명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맥스웰의 발흥과 몰락이 대중들 속에서 행해졌었던 것이기 때문에, 기슬레인 맥스웰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Who is Ghislaine Maxwell? The downfall of a favourite daughter

 

By Jon Kelly

BBC News

 

Published6 hours ago

 

Ghislaine Maxwell, on her father's yacht the Lady Ghislaine, circa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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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was the toast of high society in London and New York. Now Ghislaine Maxwell has been convicted of grooming and trafficking underage girls. After learning to serve her crooked father's whims, she then did the same for another tyrant, Jeffrey Epstein.

 

Ghislaine Maxwell was born on Christmas Day 1961. Three days later, a car carrying her 15-year-old brother Michael crashed into a lorry along a foggy Oxfordshire road. Michael Maxwell would spend the remaining seven years of his life in a coma.

 

Although she had been born into material abundance - her father was the publishing tycoon Robert Maxwell - by every account, Ghislaine Maxwell's earliest years were disfigured by emotional neglect. Betty, her mother, later admitted in her memoir that after Michael's accident the baby "was hardly given a glance" by her devastated parents.

 

One day in 1965, according to Betty, three-year-old Ghislaine Maxwell stood in front of her and declared: "Mummy, I exist." Betty also believed the toddler developed anorexia. To compensate, from this point both parents went to the opposite extreme and began lavishing affection on their youngest child.

 

Robert Maxwell, wife Betty and their children Ian, Isabel, Kevin, Christine, Phillip, Ghislaine and 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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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Maxwell with seven of his nine children. Ghislaine Maxwell is pictured sitting on her mother's knee

 

Though she was never spared the abuse and the rages her father would inflict on every one of his offspring, she would soon emerge as his favourite. And, Betty would later write in her 1994 memoir, that favourite daughter "became spoiled, the only one of my children I can truly say that about".

 

Now a New York court has convicted Ghislaine Maxwell of charges so shocking - grooming and sex trafficking girls for abuse by the paedophile financier Jeffrey Epstein - it's tempting to look for an explanation in her dysfunctional childhood.

 

But just as her crimes are impossible to excuse, Maxwell is a difficult woman to comprehend. For a life lived in public, the fine details of her biography have always been unusually elus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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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well was raised in Headington Hill Hall, a vast Italianate mansion overlooking Oxford in the UK. Rather than buying it himself, her plutocrat father had somehow persuaded its owner, Oxford City Council, to rent it to him for a minimal sum in return for renovating the property. It was, he said, "the best council house in the country".

 

Throughout Ghislaine Maxwell's childhood, lavish parties were thrown at Headington Hill Hall, with politicians, celebrities and media grandees in attendance. But after the VIPs had left the building it was a deeply emotionally austere place to grow up.

 

Robert Maxwell had risen from extreme poverty in a Czechoslovak Jewish settlement - most of his family were murdered in the Holocaust - to become a British Army war hero, then an academic publishing magnate, a Labour MP and eventually owner of the Daily Mirror, one of the UK's biggest-selling newspapers.

 

As a businessman, he was reviled as a bully. At home, meanwhile, he is depicted in Fall, John Preston's biography, as a "draconian father" who abused his children both physically and verbally.

 

Robert Maxwell at a party on his yacht with daughter Ghislaine Maxwell and wife Betty, circa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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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Maxwell at a party on his yacht with daughter Ghislaine Maxwell and wife Betty, circa 1990

 

They would be interrogated at the dinner table about geopolitics or their plans for the future and reduced to tears if he considered their answers unsatisfactory. "He would beat us with a belt - girls as well as boys," another of Robert's offspring, Ian, told Preston.

 

Although his favourite, Ghislaine Maxwell wasn't immune from any of this. But while some of her siblings withdrew or rebelled, she was always anxious to please her father - she told Tatler in 2000 he was an "inspiring" parent - and dedicated herself to keeping him happy. It must have worked, after a fashion - Maxwell Snr later named his private yacht the Lady Ghislaine, rather than after Betty or his three older daughters.

 

And evidently, he had grand hopes for his youngest daughter - he apparently harboured ambitions of marrying her off to the late John F Kennedy Jnr.

 

She was educated at Marlborough College and Oxford University, where she studied modern history and languages.

 

"It was very clear to me even as an undergraduate that she was interested in power and money," says the writer Anna Pasternak, who was a contemporary at Oxford and moved in the same social circles. "She was one of those people at parties who always looked over your shoulder to see if there was somebody more powerful or more interesting while she was air-kissing you."

 

Rachel Johnson, the UK prime minister's sister and another Oxford contemporary, recently raised eyebrows when she recalled spotting Ghislaine Maxwell across the Balliol junior common room - "a shiny glamazon with naughty eyes holding court astride a table, a high-heeled boot resting on my brother Boris's thigh."

 

After graduating, Maxwell's father appointed her as a director at Oxford United, the football club he owned and chaired, and also set her up with her own company supplying corporate gifts.

 

Anna PasternakGetty Images

She looked over your shoulder at parties to see if there was somebody more powerful

Anna Pasternak

Contemporary at Oxford University

 

But in the pages of Tatler or Nigel Dempster's Daily Mail gossip column, where she was now a regular fixture, she was usually described as a "socialite" rather than a businesswoman. She began dating Count Gianfranco Cicogna, an Italian aristocrat.

 

She also founded a kind of private member's club exclusively for women. Pasternak attended on a few occasions and, while the idea seemed innovative at the time, she considered Maxwell an unlikely feminist champion.

 

"My recollection is that she was kind of breezily charming to other women, but I don't remember her being a very close friend of another woman," Pasternak says. "I think that women weren't really important to her - only as a means to get to another powerful man."

 

In January 1991, after her father acquired the struggling New York Daily News, she was dispatched to its headquarters as his representative. It was her point of entry into the social scene of Manhattan.

 

But in November that year, her world was upended. Her father vanished from the deck of the Lady Ghislaine off the Canary Islands and his body was later found floating in the sea.

 

Ghislaine Maxwell flew straight to Las Palmas, where the yacht had been taken. By every account, she was inconsolable at the loss of her father. The day after his death, she was deputed to deliver an emotional speech to the world's press, who had gathered at the quayside.

 

Ghislaine Maxwell, holding a framed photograph of her late father, Jerusalem, Israel, 1991

IMAGE SOURCE,GETTY IMAGES

Image caption,

Ghislaine Maxwell, holding a framed photograph of her late father, Jerusalem, Israel, 1991

 

Soon enough it came out that Robert Maxwell had raided the Mirror Group's pension fund of £440m ($583m) as part of a scheme to artificially inflate the company's share price at the expense of 32,000 of his employees.

 

Now the Maxwell family and the British government were left to pick up the pieces - the latter eventually paying £100m ($132m) towards a bailout of the fund. In June 1992, two of Robert's sons, Ian and Kevin, were arrested and charged with fraud. They were eventually acquitted in January 1996.

 

While her father's guilt was obvious to most people, Ghislaine Maxwell continued to defend him. "He wasn't a crook," she told Vanity Fair's Edward Klein in early 1992. "A thief to me is somebody who steals money. Do I think that my father did that? No. I don't know what he did. Obviously, something happened. Did he put it in his own pocket? Did he run off with the money? No. And that's my definition of a crook."

 

While the rest of her siblings accepted Robert Maxwell's death was either an accident or suicide, his youngest daughter insisted he must have been murdered.

 

Despite her protests, the fall-out from the Mirror pension scandal made the UK a less than welcoming place for her. In November 1992 it was reported that she had bought a $4,000 (£3,019) one-way Concorde ticket to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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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2005, Harry Mount was feeling lonely in Manhattan. Aged 33, he'd just been appointed as the Daily Telegraph's New York correspondent but, as yet, knew few people in the city. When a friend asked him if he wanted to tag along with him to a party at Ghislaine Maxwell's house, Mount jumped at the chance. She was, after all, well known as a prominent figure in Manhattan society who'd been photographed with Bill Clinton, Donald Trump and even Pope John Paul II.

 

Among the great and the good of US society, her cut-glass British accent and friendship with Prince Andrew marked her out as an exotic, alluring figure.

 

When Mount arrived at her five-storey mansion on the Upper East Side, he was astonished when she bounded towards him and began bombarding him with questions. He recalls her listening intently to his replies as though he were the most fascinating person in the world.

 

"There was no reason why she should have been particularly friendly to me," says Mount, now editor of the Oldie magazine, where he has written about their encounter. "She could well have frozen me out while being perfectly polite."

 

Mount assumed her effusiveness and charm were by-products of her troubled childhood. "You end up with this mixture of great connections and confidence and you move among the great and the good - but fundamentally, you're not that sure of yourself," he says.

 

"And people who aren't sure themselves are a bit nicer than those who often are."

 

It was only later that Mount realised there was something he had missed.

 

Ghislaine Maxwell had reportedly been left with an £80,000 ($106,000)-a-year income from a trust fund. It should have occurred to him, he later reflected, that this amount wouldn't have been nearly enough to pay for her opulent house. Years later, prosecutors would suggest the property had been funded by Jeffrey Epstein.

 

At that stage Mount didn't know about her connection to the well-known financier. 

 

But before long Epstein's relationship with Maxwell would be scrutinised by every journalist in the city.

 

Jeffrey Epstein and Ghislaine Maxwell

IMAGE SOURCE,REUTERS

Image caption,

Jeffrey Epstein and Ghislaine Maxwell

 

In 2005, the parents of a 14-year-old girl told police Epstein had molested their daughter, and three years later he received an 18-month prison sentence. After his release, the allegations against him began to snowball. He was accused of running a "vast network" of girls for sex.

 

He was arrested again in 2019 on charges of sex trafficking and died in his prison cell just over a month later. Inevitably the authorities' focus turned to Max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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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her father, Epstein was an enormously wealthy man from humble origins - in his case, a working-class neighbourhood in Brooklyn. Also like Robert Maxwell, he would eventually be disgraced and die of an apparent suicide in disputed circumstances.

 

Ghislaine Maxwell's relationship with Epstein was no doubt mutually beneficial. She could introduce him to her wealthy and powerful friends; he in turn had the capital to fund the kind of lifestyle she had grown up to expect.

 

During the trial, as well as emphasising the pair's closeness, prosecutors noted that Maxwell "was not a particularly wealthy person when she met Epstein".

 

Certainly, after she returned to New York in the wake her father's death, it was reported that she was working in real estate and living in a $2,000 ($1,509)-a-month apartment - a decent standard of living by any means, not least when the trust fund was taken into account, but nonetheless somewhat less than she might have been accustomed to.

 

But the fine details of the relationship are not easy to pin down. When it began, how long it lasted and how exactly it should be characterised were all issues of contention at the trial, which has just concluded.

 

Four charges in Maxwell's trial related to the period 1994-97, when the indictment stated that she was among Epstein's closest associates and also in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him.

 

By the 2000s, she was linked with another businessman, Ted Waitt. But it appeared that she carried on working for Epstein. By the time of a 2003 profile, Epstein described Maxwell as his "best friend" and journalist Vicky Ward noted that much of his life appeared to be organised by her. Intimate photos of Maxwell and Epstein together released by prosecutors suggested they had remained close.

 

In court documents, former employees at the Epstein mansion in Palm Beach described her as the house manager who supervised staff, looked after finances and acted as a social co-ordinator.

 

A housekeeper testified that Maxwell gave staff a 58-page instruction manual and ordered them to speak only when spoken to, avoiding eye contact with Epstein. It's tempting to conclude that just as Maxwell learned to appease the whims of her capricious, bullying father, she applied those same skills on Epstein.

 

Whatever the exact nature of their relationship, the prosecution portrayed their closeness as a crucial factor in their pattern of abuse - with Ghislaine Maxwell seeking out and grooming victims for Epstein. And now she has been found guilty of five of six counts - including the most serious charge, that of sex trafficking of a minor.

 

"Ghislaine controlled the girls," Sarah Ransome, who says she was abused by Epstein, told the BBC's Panorama programme. "She would be the one getting all the girls in check. She knew what Jeffrey likedthis was very much a joint eff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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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months following Epstein's death, Maxwell went to ground. Newspapers speculated as to her whereabouts. A photograph of her outside a Los Angeles branch of In-N-Out Burger appeared on front pages around the world.

 

Then, in July 2020, she was arrested at her secluded mansion in the US state of New Hampshire. A few months later, it emerged to general surprise that she had married a tech CEO named Scott Borgerson.

 

John SweeneyBBC

Ghislaine learned to service her father and then a second monster that’s her entire life

John Sweeney

Journalist/author of Hunting Ghislaine podcast

 

Maxwell was held at the Metropolitan Detention Centre in Brooklyn. While she waited for her trial to begin, her brother Ian told the BBC's Today programme that she was being held in a 6ft by 9ft (1.8m by 2.7m) cell with a concrete bed.

 

"She is under 24-hour, around-the-clock surveillance, with 10 cameras, including one that moves and tracks her movement," he said. "She's not allowed to move into the corners of her cell and she's not allowed to be within two and a half feet of the cell door. That is her existence."

 

It was an ignominious fate for a woman who had spent most of her life surrounded by material riches. It was left to the prosecution to explain why on earth she would commit the crimes that had put her there.

 

Prosecutors suggested money was an incentive. The journalist John Sweeney, who explored the case in his podcast Hunting Ghislaine and is writing a book about it, suggests a deeper psychological motive was at play.

 

"You can't understand what happened with Jeffrey Epstein without understanding her relationship with her father," he says. "The truth is that Ghislaine learned to service her father and then had to service a second monster - that's what she's done her entire life."

 

Another similarity between Robert Maxwell and Jeffrey Epstein is that both escaped a full reckoning for their crimes. And defence lawyers argued Ghislaine Maxwell was a scapegoat for Epstein - the age-old story of a woman taking the blame for the misdeeds of her partner.

 

But Pasternak dismisses the idea that Maxwell is in any way less culpable than Epstein. "There is absolutely no way that he could have had access to that many young girls, whose lives they've obliterated, without Ghislaine," says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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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the trial was under way, Ian Maxwell wrote an article for The Spectator putting across his sister's defence. It began with a reprimand to the media corps.

 

They'd been pronouncing her name inaccurately, he said. It wasn't "Jizlaine". Instead, he insisted, it was "Giilen".

 

For anyone following the case, it seemed remarkable that such a basic detail had been so consistently wrong. This was a woman, after all, who had lived her entire life in the news pages and gossip columns.

 

But as the trial progressed it became apparent that so much that had been assumed about her - her relationship status at any one time, the source of her income, and, quite often, her whereabouts - were likely not as they seemed.

 

Her crimes surely defy explanation, too. And for all that her rise and fall were conducted in public, Ghislaine Maxwell remains unknowable.

 

[기사/사진: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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