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


 
장제스(장개석, 중국어: 蔣介石, 병음: Jiǎng Jièshí) 또는 창카이섹(광둥어: Chiang Kai Shek, 영어: Chiang Kai-shek, 1887년 10월 31일 ~ 1975년 4월 5일)(재임기간 1925년 3월 18일 ~ 1975년 4월 5일) 또는 장중정(중국어: 蔣中正, 병음: Jiǎng Zhōngzhèng)은 중화민국의 군인, 정치·군사 지도자이자 제 3대 총통이었다. 흔히 불리는 장개석의 "개석"(介石)는 바로 그의 자이며 "중정"(中正)은 그의 본명이다. 아명은 서원(瑞元, 루이위안), 족보명은 주태(周泰, 저우타이), 학명은 지청(志淸, 즈칭)으로 종교는 감리교이며, 황푸군관학교 교장, 국민혁명군사령관, 중화민국 국민정부 주석, 중화민국 행정원장, 국민정부군사위원회위원장, 중국 국민당 총재, 삼민주의 청년단 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장 성 펑화현 출신으로 1906년 바오딩 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다음해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유학갔다. 일본 유학시기에 중국동맹회에 가입하고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하였다. 쑨원의 신임을 받아 1923년 제1차 국공합작때는 소련으로 군사시찰을 갔으며, 귀국 후 황푸군관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26년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여 북벌을 시작하였으며 1927년 4월에는 상하이 쿠테타를 일으켜 공산당을 축출하고 1928년에 베이징을 점령하여 북벌 완수를 선언했다.
 
이후 난징에 수도를 정하고 국민정부를 선포, 국민정부 주석과 육군, 해군, 공군 총사령이 되어 정당과 정부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1930년부터 공산당 토벌에 나섰으며, 이를 항일전쟁보다 우선시하였다. 그러나 1936년 공산당 토벌작전을 독려하기 위해 시안에 갔다가 그의 부하인 장쉐량과 그의 군대에 의해 감금당한 시안 사건을 계기로 1937년 제2차 국공합작을 결성하여 공산당과 함께 항일전쟁(중일전쟁)에 나섰다. 1945년 중일전쟁 끝난 이후 1946년부터 다시 공산당과 내전을 벌였으며, 1949년 중국 공산당에 밀려 타이완으로 이전하였다. 중화민국의 총통과 국민당 총재로 장기 집권하다가 1975년 사망했다.
 
1948년 5월 20일부터 1949년 1월 21일까지는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과 중국 대륙의 국가원수를 지냈고 1950년 3월 1일부터 1975년 4월 5일까지 초대~5대(리쭝런의 직무대행기간 및 사망으로 인한 옌자간의 직무승계기간 제외) 중화민국 총통을 역임했다.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중화민국 내에서는 쑨원 다음으로 '제2의 국부'(國父)로 불린다.[위키백과]
 
1949년 12월 10일, 중국 내전에서 실패한 장개석은 대만의 타이베이로 도주했다. 전세가 급격히 불리해진 장개석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 첫째, 양자강을 경계로 북쪽은 공산당, 남쪽은 국민당이 차지하여 중국을 이분하는 것, 둘째, 사천성 등 중국 서남부 지방을 거점으로 공산당에 반격을 노리는 것, 셋째, 대만으로 철수하는 것이 그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만이 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만은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의 체결로 189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중국의 영토로 회복되기까지 51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있었다. 대만인의 격렬한 저항과 일본의 강력한 진압, 착취가 이어졌다. 무장 항일봉기, 5 · 4운동의 영향을 받은 신민회 등 의회설치 운동이 있었고, 국민혁명 시기에는 대만 공산당, 대만 농민 조합이 결성되기도 했다. 만주사변 이후 항일운동은 철저히 탄압 당했으며, 일본은 일본어 보급 등을 통해 황민화 정책을 추진했다. 중일전쟁 · 태평양 전쟁 때에는 20여만 명의 대만인들이 동남아시아 전선 등지로 끌려갔다.
 
일본이 물러나고 국민당 치하가 되었으나 부패한 국민당 정부에서 파견된 신임장관은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급급하여 시민들의 불만을 샀다. 그러던 중 1947년 '2 · 28사건'이라는 참담한 사건이 일어났다.
 
'2 · 28사건'은 사건 전날, 정부의 전매품인 담배를 몰래 팔던 한 할머니가 단속반에게 폭행을 당하자 사람들이 이에 항의한 사태가 발단이 되었다. 경찰은 항의하는 군중에게 총으로 대응했다. 다음 날, 이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장관 집무실에 모여든 시위대에게 다시 기관총을 난사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사건이 확대되었다. 대만의 유력인사들은 대만의 자치와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32개항의 요구안을 제시했다.
 
반발이 거세어지자 신임 장관 진의는 타협하는 듯하면서 시간을 번 다음, 본토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국민당 정부는 3월 8일 2,000여 명의 군인을 파견했으며 이후에도 군대를 계속 증파했다. 3월 9일부터 무자비한 살육이 벌어졌다. 행인을 약탈하고 총질을 했으며 총에 맞은 부상병을 치료하던 간호원에게까지 총탄을 퍼부었다. 숨거나 도망가려는 자는 무조건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약 3만 명 정도가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9년 5월 20일 국민당 정부는 대만 전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계엄령은 1987년 7월에 가서야 해제되었다. 세계 최장기 계엄령이다.
 
1949년 12월 10일, 장개석은 국민당의 50만 군대와 함께 대만으로 들어와 '중화민국'의 이름으로 국가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일체의 정당 및 단체의 설립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른바 대륙 수복을 위한 마지막 근거지로서 '철혈정치'가 시작되었다. 국민당 기관지 〈중앙일보〉에는 연일 '간첩 000'체포, 처단에 관한 기사가 실렸으며, 타이베이 교외식물원 근처 마장정에서는 대만의 독립운동가, 혁명가들을 사살하는 총소리가 이어졌다. 또한 '국민당 개조운동'을 통해 일당독재에 방해가 되는 진립부, 오국정, 손립인 등이 숙청되었다. 그의 권력은 대만에서도 절대적이었다.
 
냉전체제의 세계질서 속에서 대만은 미국의 소중한 우방이었다. 미국은 1950년 6월 대만 해협에 미 7함대를 배치하여 대만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많은 원조를 했다. 미국은 1970년대 중국과 화해하고 중국의 유엔 가입 및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인정하게 될 때까지, 대만과 장개석 정부를 중국으로 인정했다. 대만은 세계적으로 반공투쟁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중국과 대만은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는 1979년 이전까지 여러 번 무력충돌을 하였다.
 
대만은 경제성장에 집중하여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은 신흥공업국으로 도약하였다. 1960년대에 섬유나 가전제품 등 노동집약적인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수출지향형의 공업화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매년 10% 내외의 고도성장을 기록하였고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무역흑자국으로, 아시아 신흥공업국을 가리키는 이른바 '4마리 용' 중 가장 안정된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았다. 중국대륙과 경제수준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1975년 4월 장개석 총통이 사망하였을 때 정부의 발표는 '붕조(崩殂)'였다. 이는 황제의 죽음에 대한 표현으로, 생전의 장개석이 어떠한 권력을 누렸는지를 대변한다. 부통령이 3년간의 잔여임기를 마친 후, 권력은 장개석의 아들인 장경국에게 계승되어 1988년까지 계속되었다.
 
1970년대 들어 대만의 국제적 고립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1971년 국제연합 대표권 및 안보리 상임이사국 의석이 북경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시작으로, 1972년에는 일본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단교에 들어갔으며 1978년에는 최대의 우방인 미국이 단교를 통보하여 대만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1970년대 대만 외교부는 단교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했고, 이로 인해 국내의 많은 화교들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다른 나라와 국교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위상이 매우 강화된 현재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장경국의 통치기에 대만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었고 내부의 민주화 요구도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그는 신진파를 등용시키고, 종신제인 '만년국회'를 개선하는 등의 조처를 취했으나 근본적으로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례로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대만대학의 한 교수가 대학 내 정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음에도 아무런 수사 발표 없이 종결되었다. 본섬인들은 '2 · 28사건'의 상처와 분노를 안고 살았고, 대륙을 수복하여 곧 돌아갈 것을 믿고 들어온 군인들의 불만도 커졌다.
 
1979년 대만 남서부에 있는 제2의 도시 고웅(가오슝)에서 《미려도(메이리다오)》라는 잡지가 창간되어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미려도'는 대만의 별칭으로, '대만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잡지'라는 부제가 달렸으며 뒷날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주역들이 창간하였다.
 
1979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미려도》는 '대만인권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정부가 불허한 이 행사에는 3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참여하였다.
 
이 사건으로 150명 이상이 체포되어 군사법정 하에서 국가반란죄 등으로 중형을 선고 받았다. 이를 '미려도 사건'이라고 한다. 대만 민주화 운동의 전기를 이룬 사건이다. 이를 기폭제로 1986년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성립되었으며 1987년 7월 14일, 장경국 정부의 계엄령 해제 선포를 이끌어냈다.
 
민진당은 2000년 이후 8년 동안 진수편(천수이벤) 총통이 이끄는 집권 여당이 되었으나 경제 성장 둔화, 물가 급등, 실업률 상승 등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으로 2008년 총선에서 국민당에게 대패하였으며 민진당의 대만 독립 노선은 중국을 자극하여 갈등을 심화시켰다.
 
2008년 다시 권력을 장악한 국민당 마영구(마잉주) 총통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였으며 중화인민 공화국과의 양안관계를 크게 개선했다. 양안관계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양쪽,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관계를 말한다. 일종의 자유무역협정 성격인 경제협력기본협정 등 16개 협정을 체결했고 직항 개설, 우편 왕래, 중국인들의 대만 관광 등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2008년 대만과 중국을 오가는 직항은 하나도 없었지만 현재 매주 558편이 왕래한다.
 
2012년 대선에서 민진당 채영문(차이잉원) 후보는 중국과의 경제 밀착으로 대만의 소리가 묻히고, 경제성장의 열매가 상위층에 독점되는 점을 비판하면서 강력히 도전하였으나 마총통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했다. 이후 양안관계는 더욱 진전되어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경제적 유대관계가 더욱 강화되는 속에서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모색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사 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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