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北 역대 최고위 망명자 김국성: “2013년 장성택 처형에 한국행 결심”


30년 경력의 김국성은 북한의 강력한 첩보국의 최고위로 부상했다. Image caption


 

: 로라 비커

 

입력 2021.10.11

BBC 원문 2021.10.11.

 

[시사뷰타임즈] 비밀을 엄수하는 오래된 습관은 김국성을 떠나지 않았다.

 

그와 취재대담을 하겠다고 논의하는데 만도 여러 주가 걸렸으며 그는 여잔히 누가 경청해 줄 것인가에 대해 우려한다. 그는 사진기에 대비해 어두운 안경을 착용했고, 우리 취재진 중 2명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의 진짜 이름이다.

 

김국성은 북한의 강력한 첩보 기관들로 올라가려고 노력하는데에만 30년을 보냈다. 이 기관들은 최고지도자의 눈, , 그리고 두뇌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자신이 그 기관들의 비밀을 지켰고, 암살범들을 보내 자신들을 비평하는 자들을 살해했으며, 불법 마약 연구소를 지어 혁명 관련기금 모음을 돕기까지 했다고 주장한다.

 

이제, 전 고위 대령은 BBC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 주기로 작정했다. 이 정도의 평양 출신 고위 군관계가 주요 방송국에 취재대담을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은 이 단독 취재대담 중에 빨갱이 중에서도 가장 빨갱이였다고 말한다. 충성스런 공산주의자 공복.

 

그러나 서열과 충성심이 북한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2014년 그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 도망쳐야만 했고, 그 이후고 그는 서울에서 살고 있으며 한국 정보부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는 북한 지도부가 마약 거래에서부터 중동 및 아프리카에의 무기 판매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현금을 벌어들이기 위해 결사적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우리 취재진에 평양에서 이런 결정을 하게된 배후 전략에 대해 말해 주었는데, 이 정권의 한국에 대한 공격이 그것이고, 이 은밀한 나라의 간첩과 사이버 망은 세계 여러 곳에 뻥어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BBC는 독자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내용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가까스로 그가 하는 말들을 확증해줄 곳을 찾았다.

 

우린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 및 뉴욕 주재 사절단에 성명을 부탁했지만 지금까지 회신을 전혀 받지 못했다.

 

 

테러 책무군

 

 

북한 고위 정보부대에 있는 지난 몇 년은 현재의 지도자의 초기 경력에 대해 어느 정도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는 한 젊은이가 자신을 전사라고 열렬히 입증하고자 하는 그림을 그린다.

 

북한은 2009년에 정찰총국 (RGB) 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첩보기관을 결성했는데, 김정은이 중풍 (뇌졸중) 으로 고통을 받아왔던 자신의 아버지를 계승하기 위해 막 단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을 때였다. 이 첩보국의 수뇌는 김영철이었는데, 북한 지도자가 가징 신뢰하는 보좌관들 중 하나로 남아있다.

 

김국성은 20095, 서울로 망명한 전 북한 관계자들을 살해할 테러 책무군을 결성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고 했다.

 

김정은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고지도자 (김정은) 을 만족시키는 행동이었다.” 고 김은 말한다.,

 

“‘책무군이 비밀리에 황장엽을 암살하기 위해 결성됐다. 난 개인적으로 지시하며 그 일을 수행했다.”

 

황장엽은 한때 북한의 가장 중요한 관계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북한 정책 핵심 설계자 이어왔었다. 1997년 그의 서울로의 망명은 결코 용서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한때 서울에서, 황장엽은 북한 정권에 대해 극도로 비평적이었고, 김씨 가족은 복수를 원했다.

 

그러나 암살 시도는 실패했다. 북한의 육군 소령 2명은 이 음모 때문에 서울에서 아직도 10년 징역을 살고 있는 중이다. 평양은 항상 자국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한국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국성의 증언은 그와는 다른 내용을 시사한다.

 

븍힌에서, 테러주의는 북한 최고 존엄인 김정일과 김정은을 보호하는 정치적 수단이다.” 라고 그는 말하면서 계승자가 자신보다 한 단계 위의 지도자에게 충성심을 보이는 것은 선물이었다.” 고 했다.

 

향후 일어날 일이 더 많았다. 1년 뒤인 2010, 한국의 해군 함정인 천안함이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46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양은 항상 자국의 연루를 부정해 왔다.

 

그뒤, 같은 해 11, 북한의 수십 게 포대가 한국의 섬인 연평도를 공격했다. 병사 2명과 민간인 2명이 살해됐다.

 

이 공격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에 대해 논의가 많아왔다. 김국성은 자신은 천안함 및 연평도 작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었다.” 고 했지만, 그 사건들은 “RGB 담당관들에겐 비밀이 어니었고, 자부심을 느끼고 과시할 만한 것이었다.” 고 했다.

 

김국성은 그 두 작전은 가장 꼭대기의 명령이 없이는 벌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에선, 하다 못해 도로 하나를 건설하는 것도 최고 지도자의 직접적 승인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폭격은 하급자들이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류의 군사작전은 김정은의 특별 명령으로 설계되고 이행된 것이다. 하나의 성과물이다.”

 

 

청와대 속의 첩자

 

 

김은 북한에서 자신이 책임지고 있었던 것들 중 하나는 한국을 다룰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목표는 한국을 북한에 정치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러한 일은 현장의 눈과 귀를 갖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김은 간첩들을 한국으로 가라고 하여 간첩들을 통해 작전적 임무를 수행토록 지시했던 사례는 많다.” 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말을 공들여 꾸미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흥미있는 사례를 제공한다.

 

북한 요원 한 명이 배치되어 한국 청와애에서 일한 사례가 있었다. 1990년대 초였다. 5년 동안 청와애에서 일을 한 뒤, 그는 안전하게 돌아와서 노동당의 314 연락사무소에서 일했다.”

 

닌 여러분들에게 북한 정보원들이 한국의 여러 기관에선 물롱니고 시민 사화여러 다양한 조직들 속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해 줄 수 있다.”

 

BBC는 이러한 주장을 확인할 길이 없다.

 

난 한국에서 북한 간첩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몇 명을 만나왔고, NK 뉴스 설립자 차드 오캐럴이 최근 기사에서 언급한 바 대로, 한국 감옥들은 한 때 수십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간첩질로 체포된 북한 간첩 수십명으로 채워져 잇었다.

 

몇 안 되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 왔는데 그중 최소 한 가지는 북한에서 직접 보낸 간첩과 관련돼 있었다. 그러나 NK 뉴스 자료들은 2017년 이후로 한국에서 간첩 관련 범죄로 체포된 사람은 훨씬 더 적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이는 북한이 구닥다리 간첩 보다는 정보 수집을 위해 새로운 기술 쪽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하고 가장 고립된 나라들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종전의 고위 북한 망명자들은 평양이 숙달된 6,000명으로 구성돼 있는 해커군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고 경고해 왔다.

 

김국성에 따르면, 종전의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사이버 전투 대비를 위해 새로운 요원을 훈련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는 모란봉 대학교는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을 뽑아서 6년간 특별 교육을 받는 곳에 넣었다.” 고 말한다.

 

영국의 보안 관계자들은 라자루스 집단이라고 알려진 북한의 정찰총국이 NHS (의료보험) 및 기타 세계 여러 곳의 조직들을 불구로 만들었건 사이버 공격의 베루였다고 믿는다. 이 정찰총국이 2014년 시선을 사로 잡은 해킹 사건에서 소니 영화사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여겨진다.

 

김은 정찰총국 사무실은 414 연락사무실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

 

내부적으로, 우린 그곳을 김정일의 정보 본부라고 명명했다.”

 

그는 정찰총국은 북한 지도자와 직통 선화선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요원들이 중국, 라셔 (러시아),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에도 있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북한 자체에서도 작전을 벌인다. 이곳은 또한 북한 간첩요원들 사이의 통신을 지킨다.”

 

 

달러벌이용 마약

 

 

최근, 김정은은 자국이 다시 한 번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하면서 북한 인민들에게 또 한 번의 고난의 행군준비를 하라고 요구했는데, 이 구절은 김정일 치하였던 1990년대의 처참한 기근에서 나온 말이다.

 

그 당시, 김국성은 작선부처에 있었으며 최고지도자를 위해 혁명적으로 기금을모금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그 지시는 불법 마약 거래를 뜻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김정일 북한에서의 마약 생산은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최고조였다.” 고 그는 말하면서 그 당시, 작전 부처는 최고 지도자를 위한 혁명적 기금이 다 떨여져 있었다.” 고 했다.

 

그러한 책무를 할당 받은 뒤, 난 노동당 715 연락 사무소 훈련 본부에 있는 생산기지를 외국인 세 명을 해외에서 데리고 들어와 지었고 마약을 생산했다.”

 

그것이 ICE (메써페터민; methamphetamine; 각성제의 일종) 였다. 그후 우린 이 마약을 달러로 현금화 하여 김정일에게 주었다.”

 

그 당시 그의 마약 거래 계정은 그럴 듯하다. 북한은 마약제조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데, 대개가 헤로인과 아편이다. 전 주영 북한 외교관 태영호도 서울로 망명한 사람으로서 오슬로 자유 공개토론에 2019년 북한은 국가가 후원하는 마약 밀매에 관여하고 있으며 널리 퍼져있는 북한 내 마약 중독 병을 치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 바 있었다.

 

난 김씨에게 마약을 판 돈이 어니로 가느야고 물었다. 그 돈이 인민들을 위한 돈으로 바뀌었던 것일까?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자면, 북한에 있는 모든 돈은 북한 지도자의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하면서 그 돈으로, 북한 지도자는 별장들을 짓고, 승용차를 구입하고, 식품을 구입하며, 옷을 사고 또 사치품을 즐긴다.” 고 했다.

 

1990년대에 북한의 오래 끌어온 먹거리 부족사태로 죽은 사람 추산치는 수십만 명에서 1백만 명에 이른다.

 

김씨에 따르면, 또 다른 수입원은 작전 부처가 관리하는 이란에의 불법 무기 거래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는 특수 소형 잠수함, 반 잠수정이 있었다. 북한은 이와 같은 최신예 장비 건조에 아주 능숙하다.” 고 그는 말한다.

 

그의 이러한 말은 북한 잠수함이 소음이 심하고 경유 엔진이다 보니 북한 정치 체제를 좀 선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은 거래는 아주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북한의 이란에 나가있는 부부장은 이 사업을 위해 이란 인들을 자신의 수영장으로 불러들였다고 으스대곤 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에 대한 세계의 유력한 권위자들 중 한 명인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이란과의 무기류 거래는 1980년대 이후로 공개된 비밀이어 왔고 탄도 미사일류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북한은, 엄격한 국제적 제재 대상임에도 불구,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계속 앞닥겨 왔다. 9, 이 나라는 새로운 장거리 순항 미사일, 탄도 미사일 철로 발사 체제, 초음속 미사일, 그리고 대-항공기 미사일 등을 포함한 네 가지 새로운 무기 체제를 실험했다.

 

기숭은 이제까지보다 더욱 세련되게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김씨에 따르면, 평양은 내전을 오래 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에게 무기류와 기술도 판매했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유엔은 북한이 시리아, 미얀마, 리비아 그리고 수단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엔은 평양에서 개발된 무기들이 결국 세게 많은 문제있는 곳들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충성스런 공복의 배반

 

 

김씨는 북한에서 특권 층 삶을 살았다. 그는 김정은 숙모에게서 머시더스-벤츠 승용차를 타보라고 받았으며 북한 지도자를 위해 해외에서 자유롭게 돈을 모급 하며 돌아다니라고 허락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현금으로 수백만 달러를 모금하기 위해 희귀한 금속류 및 석탄을 팔았으며, 판매금은 옷가방에 넣어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말한다.

 

인민 수백만 명이 식량 부족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빈곤한 나라에서, 그의 생활은 살아가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그러한 생활은 극소수나 상상할 수 있는 삶이다.

 

김씨의 강력한 정치적 연결성은 결혼을 통해 다른 정보기관 사이를 이동하게 해 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연결 상태가 그와 그의 가족을 위헙에 빠뜨리기도 했다.

 

2011년 정치적 권좌로 상승한지 얼마 안돼, 김정은은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비롯하여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숙청하겠다고 결심했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건강이 약해지면서, 북한의 사실상 지도자였다는 의견들이 오래도록 있어왔다.

 

김씨에 따르면, 장성택의 이름이 김정은 보다 더욱 널리 퍼져있게 됐었다고 한다.

 

그것이 내가 장성택이 오래 갈 수가 없으리라고 느꼈던 때이다. 난 그가 시골 지역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느꼈다.” 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후 북한 국영언론은 201312, 장성택이 처형됐다고 공표했다.

 

난 놀란 것 그 이상이었고, 그건 치명적인 한 방이었기에 난 간담이 서늘해졌다.” 고 말하면서 난 나의 삶에 즉각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난 내가 북한에서 더 이상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 했다.

 

신문에서 장성택 처형 소식을 읽었을 때 그는 해외에 있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도망갈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맘 먹었다.

 

내 선조들의 무덤 및 가족이 있는 조국을 버리는 것, 그리고 그 당시 외국 땅이었언 한국으로 도피한다는 것은 감정적 고통이 따르는 최악의 비탄에 젖은 결정이었다.” 고 그는 말한다.

 

그의 어두운 안경 뒤에서 조차도, 난 그 기억이 그에게 힘든 것임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시간에 걸쳐 많이 만나는 동안 내가 계속 물었던 한 가지 질문은, 이제와서 말하겠다고 작정한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다라고 그는 말하면서 난 내 북쪽의 형제들을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진정한 자유를 즐길 수 있도록 지금부터 쭈욱 더욱 자유롭게 활동적이 될 것이다.” 라고 했다.

 

한국에는 망명자가 3만 명 이상 있다. 그중 극소수만이 언론에 말을 하기로 결심한다. 더욱 유명한 인물일수록 그와 그의 가족에게 더욱 큰 위험이 따른다.

 

한국에는 망명자들의 설명하는 그들의 삶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결국, 어느 누구라도 어떻게 진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김씨는 대단히 비통상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설명은 북한 전체가 아니라 북한 일부의 이야기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정권 내부의 모습을 제공해 주며, 우리들에게 이 정권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 말해 준다.

 

그는 북한의 정치 사회에선, 사람들의 판단, 그들의 사고 과정 등은 모두 최고지도자에게 궁극적으로 복종하겠다는 신념을 따른다.” 고 그는 말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이러한 풍토가 충성심을 생산한다.

 

이번 취재대담의 시기도 역시 흥미롭다. 김정은은 만일 모종의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기꺼이 한국에 말을 걸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그러나 이런 말에도, 김씨는 역시 경종을 울린다.

 

내가 한국에 온지 몇 년 됐지만,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설정해 놓은 전략은 계속된다. 여러분들이 알 필요가 있는 것은 북한은 0.01%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Drugs, arms, and terror: A high-profile defector on Kim's North Korea

 

By Laura Bicker

BBC News, Seoul

 

Published13 hours ago

 

North Korean defector

Image caption,In a 30-year career, Kim Kuk-song rose to the top ranks of North Korea's powerful spy agencies

 

The old habits of secrecy haven't left Kim Kuk-song.

 

It has taken weeks of discussions to get an interview with him, and he's still worried about who might be listening. He wears dark glasses for the camera, and only two of our team know what we think is his real name.

 

Mr Kim spent 30 years working his way to the top ranks of North Korea's powerful spy agencies. The agencies were the "eyes, ears, and brains of the Supreme Leader", he says.

 

He claims he kept their secrets, sent assassins to kill their critics, and even built an illegal drugs-lab to help raise "revolutionary" funds.

 

Now, the former senior colonel has decided to tell his story to the BBC. It's the first time such a senior military officer from Pyongyang has given an interview to a major broadcaster.

 

Mr Kim was the "reddest of the red", he says in an exclusive interview. A loyal communist servant.

 

But rank and loyalty do not guarantee your safety in North Korea.

 

He had to flee for his life in 2014, and since then he has been living in Seoul and working for South Korean intelligence.

 

He depicts a North Korean leadership desperate to make cash by any means possible, from drug deals to weapons sales in the Middle East and Africa. He told us about the strategy behind decisions being made in Pyongyang, the regime's attacks on South Korea, and claims that the secretive country's spy and cyber networks can reach around the world.

 

The BBC cannot independently verify his claims, but we have managed to verify his identity and, where possible, found corroborating evidence for his allegations.

 

We contacted the North Korean embassy in London and the mission in New York for a statement, but have so far received no response.

 

A 'terror task force'

 

Mr Kim's last few years in North Korea's top intelligence unit offer some insight into the early career of the current leader, Kim Jong-un. He paints a picture of a young man eager to prove himself as a "warrior".

 

North Korea formed a new spy agency called the Reconnaissance General Bureau in 2009, just as Kim Jong-un was being groomed to succeed his father, who had suffered a stroke. Chief of the bureau was Kim Yong-chol, who remains one of the North Korean leader's most trusted aides.

 

The colonel said that in May 2009, an order came down the chain of command to form a "terror task force" to kill a former North Korean official who had defected to the South.

 

"For Kim Jong-un, it was an act to satisfy the supreme leader (his father)," Mr Kim says.

 

"A 'Terror Force' was formed to assassinate Hwang Jang-yop in secret. I personally directed and carried out the work."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L) walks in front of his youngest son Kim Jong-un as they watch a parade to commemorate the 65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in Pyongyang in this October 10, 2010

IMAGE SOURCE,REUTERS

Image caption,The former North Korean Supreme Leader Kim Jong-il with his son, Kim Jong-un, in the background

 

Hwang Jang-yop was once one of the country's most powerful officials. He had been a key architect of North Korean policy. His defection to the South in 1997 had never been forgiven. Once in Seoul, he was extremely critical of the regime, and the Kim family wanted revenge.

 

But the assassination attempt went wrong. Two North Korean army majors are still serving 10 year prison sentences in Seoul for the plot. Pyongyang always denied it was involved and claimed South Korea had staged the attempt.

 

Mr Kim's testimony would suggest otherwise.

 

"In North Korea, terrorism is a political tool that protects the highest dignity of Kim Jong-il and Kim Jong-un", he says. "It was a gift to demonstrate the successor's loyalty to his great leader."

 

There was more to come. A year later, in 2010, a South Korean navy ship, the Cheonan, sank after being hit by a torpedo. Forty-six lives were lost. Pyongyang has always denied its involvement.

 

Then, in November that year, dozens of North Korean artillery shells hit the South Korean island of Yeongpyeong. Two soldiers and two civilians were killed.

 

There has been much debate over who gave the order for that attack. Mr Kim said he was "not directly involved in the operations on the Cheonan or Yeonpyeong Island", but they "were not a secret to RGB officers, it was treated with pride, something to boast about".

 

And those operations would not have happened without orders from the top, he says.

 

"In North Korea, even when a road is built, it cannot be done without the direct approval of the Supreme Leader. The sinking of the Cheonan and the shelling of Yeongpyeong Island are not a thing that could be carried out by subordinates.

 

"This kind of military work is designed and implemented by Kim Jong-un's special orders. It's an achievement."

 

'Spy in the Blue House'

 

Mr Kim says one of his responsibilities in the North was developing strategies to deal with South Korea. The aim was "political subordination".

 

That involved having eyes and ears on the ground.

 

"There are many cases where I directed spies to go to South Korea and performed operative missions through them. Many cases", he claims.

 

He doesn't elaborate, but he does give us one intriguing example.

 

"There was a case where a North Korean agent was dispatched and worked at the Presidential Office in South Korea and returned to North Korea safely. That was in the early 1990s. After working for the Blue House (South Korea's Presidential Office) for five to six years, he came back safely and worked at the 314 Liaison Office of the Labor Party.

 

"I can tell you that North Korean operatives are playing an active role in various civil society organisations as well as important institutions in South Korea."

 

The BBC has no way of verifying this claim.

 

Kim Jong-un

IMAGE SOURCE,REUTERS

Image caption,The North Korean supreme leader, Kim Jong-un. "All the money in North Korea belongs to the leader," said Kim Kuk-song.

 

I have met several convicted North Korean spies in South Korea, and, as NK News founder Chad O'Carroll notes in a recent article, South Korean prisons were once filled with dozens of North Korean spies arrested over the decades for various types of espionage work.

 

A handful of incidents have continued to occur and at least one involved a spy sent directly from the North. But NK News data suggests that far fewer people have been arrested in South Korea for spy-related offences since 2017, as the North turns to new technologies, rather than old fashioned spies, for intelligence gathering.

 

North Korea may be one of the world's poorest and most isolated countries, but previous high-profile defectors have warned that Pyongyang has created an army of 6,000 skilled hackers.

 

According to Mr Kim, the previous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ordered the training of new personnel in the 1980s "to prepare for cyberwarfare".

 

"The Moranbong University would pick the brightest students from all over the country and put them through six years of special education," he says.

 

British security officials believe that a North Korean unit known as the Lazarus Group was behind a cyber-attack that crippled parts of the NHS and other organisations around the world in 2017. The same group is believed to have targeted Sony Pictures in a high-profile hack in 2014.

 

Mr Kim says the office was known as the 414 Liaison Office.

 

"Internally, we dubbed it "Kim Jong-il's Information Centre."

 

He claims it had a direct telephone line to the North Korean leader.

 

"People say these agents are in China, Russia, and Southeast Asian countries, but they also operate in North Korea itself. The office also safeguards communication between North Korean spy agents."

 

Drugs for dollars

 

Kim Jong-un has recently announced the country is once again facing a "crisis" and in April he called on his people to prepare for another "arduous march" - a phrase that has come to describe a disastrous famine in the 1990s, under Kim Jong-il.

 

Back then, Mr Kim was in the Operations Department and was ordered to raise "revolutionary funds" for the Supreme Leader. That, he says, meant dealing in illegal drugs.

 

"The production of drugs in Kim Jong-il's North Korea peaked during the Arduous March," he says. "At that time, the Operational Department ran out of revolutionary funds for the Supreme Leader.

 

"After being assigned to the task, I brought three foreigners from abroad into North Korea, built a production base in the training centre of the 715 liaison office of the Workers' Party, and produced drugs.

 

"It was ICE (crystal meth). Then we could cash it to dollars to present to Kim Jong-il."

 

His account of drug dealing at this time is plausible. North Korea has a long history of drug production - mostly heroin and opium. A former North Korean diplomat to the UK, Thae Yong-ho, who also defected, told the Oslo Freedom Forum in 2019 that the country had engaged in state-sponsored drug trafficking and was trying to fix a widespread domestic drug addiction epidemic.

 

I ask Mr Kim where the drug money went. Was it converted into cash for the people?

 

"To help you understand, all the money in North Korea belongs to the North Korean leader," he says. " With that money, he'd build villas, buy cars, buy food, get clothes and enjoy luxuries."

 

Estimates of the death toll from North Korea's prolonged food shortages in the 1990s range from hundreds of thousands to up to a million people.

 

North Korean woman collecting grass to eat in a field, North Hamgyong Province, Jung Pyong Ri, North Korea on May 7, 2010 in Jung Pyong Ri, North Korea.

IMAGE SOURCE,GETTY IMAGES

Image caption,A North Korean woman collects grass to eat in a field in North Hamgyong Province, May 2010

 

Another source of income, according to Mr Kim, came from illegal weapons sales to Iran, managed by the Operations Department.

 

"There were special midget-submarines, semi-submersibles. North Korea was very good at building cutting edge equipment like this," he says.

 

This may be a bit of North Korean propaganda as the country's submarines have noisy, diesel engines.

 

But Mr Kim claims that the deals were so successful that North Korea's deputy director in Iran would boast about summoning the Iranians to his swimming pool to do business.

 

North Korean weapons deals with Iran have been an open secret since the 1980s and even included ballistic missiles, according to Professor Andrei Lankov, one of the world's leading authorities on North Korea.

 

North Korea has continued to advance the development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despite being subject to strict international sanctions. In September, the country tested four new weapons systems including a new long-range cruise missile, a train-launch system for a ballistic missile, a hypersonic missile, and an anti-aircraft missile.

 

The technology is growing ever more sophisticated.

 

According to Mr Kim, Pyongyang also sold weapons and technology to countries fighting long civil wars. In recent years, the United Nations has accused North Korea of supplying arms to Syria, Myanmar, Libya and Sudan.

 

The UN warns that weapons developed in Pyongyang could end up in many troubled corners of the world.

 

'A loyal servant betrayed'

 

Mr Kim led a privileged life in North Korea. He claims he was given use of a Mercedes-Benz car by Kim Jong-un's aunt, and allowed to travel abroad freely to raise money for the North Korean leader. He says he sold rare metals and coal to raise millions in cash, which would be brought back into the country in a suitcase.

 

In an impoverished country where millions of people are struggling with food shortages, this is a life few can imagine, let alone live.

 

Mr Kim's powerful political connections through marriage allowed him to move between different intelligence agencies, he says. But those same connections also put him and his family in danger.

 

Not long after ascending to the political throne in 2011, Kim Jong-un decided to purge those he perceived as a threat, including his own uncle, Jang Song-thaek. There had long been suggestions that Mr Jang was the de-facto leader of North Korea, as Kim Jong-il's health faded.

 

According to Mr Kim, Jang Song-thaek's name had become more widespread than Kim Jong-un's.

 

"That's when I felt Jang Song-thaek wouldn't last long. I felt he would be banished to the countryside," he says.

 

People visit the statues of late North Korean leaders Kim Il Sung and Kim Jong Il on the occasion of the 79th birth anniversary of Kim Jong Il, known as the 'Day of the Shining Star', at Mansu Hill in Pyongyang on February 16, 2021.

IMAGE SOURCE,GETTY IMAGES

Image caption,People bow at the statues of late North Korean leaders Kim Il-sung and Kim Jong-il, February 2021

 

But then North Korean state media announced in December 2013 that Mr Jang had been executed.

 

"I was more than surprised, it was a fatal blow and I was appalled," Mr Kim says. "I immediately felt a danger to my life. I knew I could no longer exist in North Korea."

 

Mr Kim was abroad when he read about the execution in a newspaper. He decided to make a plan to flee with his family to South Korea.

 

"To abandon my country, where my ancestor's grave and family is, and to escape to South Korea, which at the time for me was a foreign land, was the worst grief-stricken decision of emotional distress," he says.

 

Even behind his dark glasses, I can see that the memory is difficult for him.

 

The one question I keep asking during our many meetings, over many hours, was why he decided to speak now.

 

"This is the only duty that I can do," he says. "I'll be more active from now on to free my Northern brethren from the grasps of dictatorship and for them to enjoy true freedom."

 

There are more than 30,000 defectors in South Korea. Only a few decide to speak to the media. The more high profile you are, the higher the risk to you and your family.

 

There are also many in South Korea who doubt defectors' accounts of their lives. After all, how can anyone truly verify their stories?

 

Mr Kim lived a highly unusual life. His account should be read as part of North Korea's story - not the whole. But his story offers us a view inside a regime few are able to escape, and tells us something about what it takes for the regime to survive.

 

"North Korea's political society, their judgement, their thought processes, they all follow the conviction of ultimate obedience to the Supreme Leader," he says. Over generations, it produces a "loyal heart".

 

The timing of this interview is also interesting. Kim Jong-un has hinted he may be willing to talk to South Korea in the near future, if certain conditions are met.

 

But here too, Mr Kim offers a warning.

 

"It's been years since I came here, but North Korea hasn't changed at all," he says.

 

"The strategy we set up continues. What you need to know is that North Korea hasn't changed 0.01%."

 

[기사/사진: BBC]


[이 게시물은 SVT님에 의해 2021-10-20 11:33:31 [메인 큰 타이틀]에서 복사 됨]
- Copyrights ⓒ 시사뷰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mment

로그인후 댓글작성 가능합니다.


밤툰 - 100% 무료웹툰
블랙잭딜러 STC555.COM
강원도정선중고차 STC555.COM
정선카지노잭팟 STC555.COM
정선잭팟 STC555.COM
세븐럭카지노 STC555.COM
블랙잭이기는법 STC555.COM
슈퍼카지노주소 슈퍼카지노 STC555.COM
카지노사이트추천 STC555.COM
인터넷카지노 STC555.COM
강원랜드친구들 STC555.COM
스포츠서울경마 STC555.COM
하이게이밍카지노 STC555.COM
에비앙카지노주소 강친 STC555.COM
에비앙카지노주소 룰렛전략 STC555.COM
월드카지노주소 STC555.COM
우리카지노주소 STC555.COM
블랙잭더블 STC555.COM
카지노사이트 라이브카지노 STC555.COM
개츠비카지노주소 엠카지노 STC555.COM
엠게임 STC555.COM
맨하탄카지노사이트 STC555.COM
대박카지노주소 카지노머신 STC555.COM
카지노호텔 STC555.COM
강원랜드입장료 STC555.COM
더킹카지노주소 STC555.COM
더카지노사이트 STC555.COM
ag슬롯카지노주소 STC555.COM
33카지노주소 STC555.COM
카지노사이트주소 w카지노 STC555.COM
라이브홀덤 STC555.COM
생방송다이사이 STC555.COM
M카지노 STC555.COM
슈퍼카지노 STC555.COM
슈퍼카지노주소 슈퍼카지노 STC555.COM
더킹카지노 STC555.COM
엠카지노 정선카지노슬롯머신 STC555.COM
트럼프카지노 33카지노 STC555.COM
eggc카지노주소 STC555.COM
맥스카지노 STC555.COM
더카지노 카지노게임사이트 STC555.COM
에비앙카지노 카지노예약 STC555.COM
필리핀카지노 STC555.COM
인터넷카지노 STC555.COM
인터넷카지노주소 STC555.COM
T카지노 STC555.COM
에프원카지노 트럼프카지노 STC555.COM
온라인카지노주소 STC555.COM
개츠비카지노 STC555.COM
카지노더블 STC555.COM
카지노사이트【STC555.COM】
UCC 카지노주소 STC555.COM
에그벳카지노 STC555.COM
F1카지노 카지노슬롯머신 STC555.COM
트럼프블랙잭 STC555.COM
월드카지노 STC555.COM
에그카지노 STC555.COM
ag슬롯 STC555.COM
하이게이밍카지노 STC555.COM
와우카지노사이트 STC555.COM
카지노100전백승 STC555.COM
생방송강원랜드 STC555.COM
로얄카지노 STC555.COM

[ 시사 View 社說 ]

재명학? 민주당 내 … 입력 2021.12.1. [시사뷰타임즈] 참으로 유치하고 수준 낮은 20대 대통령 선거... 더보기

[ SVT 기획 탐방 ]

2021 강경젓갈 축제...젓갈만 파는데 엄청난 점포 크기 입력 2021.9.22. [시사뷰타임즈]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강경 젓갈 골목’ 은 우리... 더보기

[ SVT 여행 Travelling ]

지구에서 가장 백신화 된 곳: 감염-사망 폭증, 성탄절 행사 취소 {자료사진) 2021.6.24. 영국의 해외영토인 지브롤터에 있는 지브롤터 바위 앞에 있는 공항 도... 더보기

[ Autos ]

두바이 비행기 전시회: 일광욕판-춤판 갖춘 미래 개인 비행기 선뵈 “탐험자” 라는 미래의 개념 비행기에는 착륙 후에 화물칸 대형 문을 열면 초호화 야트 (... 더보기

[동물의 왕국]

육식 독수리 벌: 고기 만찬 즐기도록 장 세균 특수 진화 연구원들은 독수리 벌의 내장에 독수리, 하이이나 그리고 썩는 고기를 먹고 사는 다른 동... 더보기

[ 기묘한 구름-멋진 구름 ]

흉악하고 끔찍한 모습, 초거대 화산재 구름 BBC 방영 영상 중에서 [BBC 제공 영상으로 보기] 입력 2021.4.11. [시사뷰타임즈] 라 소우프리에... 더보기

[ 교·통·사·고 ]

영국해협 선박전복: 27명 사망, 임신녀 그리고 어린이 세 명 포함 입력 2021.11.25.BBC 원문 속보 생방 [시사뷰타임즈] 영국과 프랑스가 마주 보고 있는 영국 해... 더보기

[엽기-진기-명기-호기심]

걸그룹 EXID 하니의 핫팬츠 [사진-마이데일리] 13일 오후 서울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2관에서 열린 '케이... 더보기

[성인남녀 이야기]

근황 . Cross_X [39.xxx.xxx.xxx] 더보기

[여자레걸 · 남자육체미]

모델 '비키니 화보 포즈' http://osen.mt.co.kr/article/G1110406704 [사진 모두 보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