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강요한 대통령은 파멸했다


 

닉슨의 강박증이 워터게이트 초래
한쪽에 충성하면 다른 쪽엔 배신
믿음을 중시하는 관계로 복원해야

위험한 충성
에릭 펠턴 지음, 윤영삼 옮김
문학동네·1만5000원
 
“난 단순한 충성을 원하는 게 아냐. 진짜 충성을 원한다고. 대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똥구멍을 핥으며 꽃 냄새가 난다고 말할 수 있는 놈. 자기 거시기를 잘라 나한테 바칠 수 있는 놈 말야.”
미국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이 자신의 보좌관에게 기대하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다. <위험한 충성>의 지은이 에릭 펠턴은 이 발언을 기록한 뒤 “충성을 강요하는 존슨의 저질 발언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음 정권을 이어받은 리처드 닉슨 역시 강박적으로 충성을 요구했다”고 적었다. 또한 “이러한 충성 제일주의가 워터게이트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분석을 좀더 보자. 충성을 향한 닉슨 대통령의 집착은 갈수록 심해져 결국 ‘우리 대 그들’이라는 피해망상적 대결구도를 만들어냈다.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충성심이 없다는 뜻, 결국 닉슨 행정부의 조직문화는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처단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닉슨은 정보기관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사적으로 처리해주길 기대했다.
이 시대에 충성은 무엇인가. 누가 충성을 바라고 누가 충성을 하는가. 세상은 “충성하라”는 외침과 “충성이 밥 먹여주냐”는 냉소 사이에서 아슬아슬 흘러간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 저널>에 문화 칼럼인 ‘포스트모던 타임스’를 써온 칼럼니스트 에릭 펠턴이 작정하고 기획해 충성에 관해 모든 것을 망라한 책을 써냈다. 충성의 본질을 이해해 그 단어에 튄 더러움과 악함을 걷어내자는 취지다.
충성을 강요하는 이들에 대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대개 사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옳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도덕적 불안을 충성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다는 증거다.” “충성을 강요하는 사람일수록 거의 예외 없이 충성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몰염치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충성, 책의 원제인 ‘로열티’(loyalty)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뜻한다. 그 자체로 나쁜 뜻일 리는 없다. 책도 충성이 멍청하고, 비굴하고, 초래하는 위험이 크다고 해도 이를 회피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황량하고 비인간적인 길뿐이라고 강조한다. 충성의 반대편에 있는 배신은 누구나 싫어한다. 단테는 배신을 가장 비열한 악덕이라고 생각해 <신곡>에서 지옥의 맨 아래 단계인 아홉번째 지옥을 ‘불충’의 죄를 지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했다. 가족과 국가와 친구를 배신한 이들이 이곳에 와서 차가운 얼음 바닥에서 신음하며 물어뜯기는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데 충성에는 비극적 오점이 있다. 다양한 사람과 맺는 헌신이 서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더 자주, 더 많은 충성의 대상이 얽힌다. 가족, 친구, 보스, 기업, 국가 등 다양한 대상에게 매번 동시에 충성할 수는 없다. 충성의 핵심 특성은 편파성인데 결국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어느 쪽을 향한 충성이 누군가에게는 배신이 되기도 한다. 정의와 조직, 국가와 가족 사이 등 선택은 늘 혼란스럽다.
헌신의 대상이 올바르지 않을 때는 그 결과가 더없이 참혹하다. 어느새 히틀러의 옹호자로서 다른 이들에게 충성 맹세를 강요하는 하인리히 힘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충성 그 자체가 순수한 선이라 할 수 없다. 충성의 특성이 충성하는 대상에 따라 결정된다면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오늘날 충성이 더럽혀진 것은 ‘헌신의 대상’의 문제일 수 있다.
친구 사이의 의리, 한 여자만 사랑하겠다는 맹세, 우리 신용카드만 써달라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 차마 못할 짓까지 시켜가며 충성을 입증하라는 권력자 앞에서 우리는 늘 고민한다. 어려운 일이다. 충성만 강조하는 리더도 이상하지만 충성이 없는 조직도 위험하다니 말이다.
책은 “억지 의무감이 아닌 믿음을 소중히 여기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이해관계”로서 충성을 복구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충성을 갈구하는 자, 충성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의 욕망으로 꽉 찬 이 사회에서 ‘셀프 개혁’만을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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