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주의에 빠진 광란의 물결{완결}


물질주의에 빠진 광란의 물결!!(완결)“ 한석현 글
 
<사람을 천박하게 하는 것들!!>원고지14 매, 2015. 1. 3
 
 
 
얼마전까지 한토마에 글을 올리던 논객이 있었다 그는 나와 정치이념이
 
같았던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통합진보당 이정희를 질타하는 내
 
용의 글을 올리고 나서 글마당에서 바람과 함께사라졌다. 그런 사례가 두
 
번이나 일어나 나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이단종교 신
 
봉자이거나 무신론자였다.정서 공유자라서 신앙적으로는 괴리가 있었지
 
만 이념성향이 같아 인천으로 초청하여 서로 우정을 나누기까지 했다.
 
그런 사건을 겪고나서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어림할 수 있었다. 부정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에게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마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크레샴법
 
칙이 적용하는 비정상의 나라다.불의를 행한 자의 발광은 그야말로 점입
 
가경이라는 느낌이 든다. 유권자 그룹의 문제도 양상은 심각하다.
 
 
 
불신자라면 그럴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해도 하나님을 믿는 목회자들
 
가운데 어떻게 이런 변절자들이 생겨나다니 그러고서도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말하던 사람이 갑자
 
기 벙어리가 된다든지 침묵하던 사람이 수다쟁이로 변하면 변절인 것은
 
언제 어디애서나 흔하게 보는 현상이지만 나의 사전에는 그런 어휘가 없
 
기에 어리둥절해진다.
 
 
 
을미년송구영신의 새해가 훤히 밝아오르고 있다. 작년은 유난히 사건 사
 
고가 중첩했던 그래서 모든 우리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낭패감을 안겨
 
주었던 한해였다.그간 사이버 공간에 떠 있는 부족함이 많은 필자의 수천
 
개의 글을 애정어린 눈으로 읽고 댓글로 격려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에게
 
심신한 감사와 뜻을 전하며 머리 숙여 새해 인사를 드린다.
 
 
 
어제밤 우리 교회에서는 성도님을 모시고 윷놀이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
 
다. 행사를 마친 다음 송구영신 예배 시간에 종이 비행기를 날리기 전 기
 
도 제목에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어린이의 기도 제목도 있더
 
라면서 "쪈의 폭탄 세례를 받으라!"는 고향 친구의 격려를 받았다!"면
 
서 감지덕지하는 목사님의 코멘트에 어리둥절한 생각이 들었다.평소 존
 
경하던 인성이 가다듬어진 목사님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시작과 끝인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
 
고 이땅에 오셨을 때의 행적을 잘 알고 있다. 오늘날 교계는 물신주의에
 
빠져 하나님이 부자나 권세가들을 축복하고 그들과 연합하기를 선호한다
 
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줄 정도의 이상 풍토로 변해버린 듯한 느낌이 짙
 
다. 사실일까? 분명한 것은 베들레헴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나 십자가
 
의 고난을 지기까지 예수님은 약한 자 편에서 고난의 행진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속성이 그러하도록 부추긴 측면이 있음이 인정되지만 현재 특
 
히 대형교회에서 보는 물신주의적 풍조의 만연에는 이율배반적 모순의
 
흔적이 뚜렷이 엿보여주고 있다. 나는 수년전 서초동 사랑의 교회에 들렸
 
다 너무나도 화려한 호화 궁전의 위용에 크게 압도를 당하고 하나님이 그
 
곳에 게실까?“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일개 명예장로일 뿐이지만 필자가 무엇을 알까마는 예수님이 출생과 성
 
장배경이 풍운적이었고 광야생활을 방불했던 것은 진리의 가르침이 그곳
 
에 농축적으로 담겨져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부자에 대한 선호하지 않는 것
 
이 사실이고 이를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라 있지도 않다.
 
 
 
어린이의 꿈이 세계제일의 부자가 되려는 소망에 부풀어 있고 목회자들
 
이 물신주의에 빠져 있을 정도라면 한국 사회는 병든 사회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는 외에 다른 표현기법을 빌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
 
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면 사실상 천국행 길이 원천봉쇄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끔
 
찍한 저주의 길로 들어서는데 매력을 느낄 하등의 이유가 없잖은가?
 
내키인 걸음이라 말하거니와 나는 기독교 귀의후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
 
도 않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우매자를 들어써서 현명자를 부끄럽게 하
 
며 약자의 편인 것은 수천년 전이나 이제나 맥락이 같음을 경험학적 진단
 
을 통해 겪어 익히 알고 있다,
 
 
 
필자는 개종후 기독교의 ‘성결정신’과 유교의 ‘선비정신’의 우연히 같음
 
을 보았다.왕조시대 청백리의 귀감이던 황이 정승은 나라의 제2인자 자
 
리에 올라 있었으면서도 부귀공명을 누리지 아니하고 비가 새는 오두막
 
채에서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청빈 사상의 바탕에서만 구국제민의
 
경륜이 우러나는 이치를 깨달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속성이 그러하도록 부추긴 측면이 있음이 인정되지만
 
정치가 지향해야할 목표가 어디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많은 단서들
 
이 포착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 오묘하여 아름다운 날개의 공작새
 
에게 고운 꾀꼬리 목소리를 안겨주지 않았듯이 한꺼번에 모두를 다 허락
 
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이 상류사회의 일원들을 따돌리고 비주류와 손잡고 구원사업을 펼
 
치신 원인의 일단이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큼을 알
 
았기때문이었다는 점은 유난히 눈길을 끈다.지난 역사의 맥락을 짚어볼
 
때 세종조가 남기는 빛나는 정치적 업적은 황이정성과 같은 어진 조정 중
 
신이 이 있었기에 때문이며 이명박근혜 시대가 국민을 불행의 늪속에 빠
 
뜨린 원인의 일단이 된 것도 풍요로운 로비력의 작용이 말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계가 한국인들을 시험들게 하는이면에는 무제한 로비력으
 
로 국민을 네편과 내편으로 패갈라 내편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네편에
 
게는 무자비란 탄압을 가하는 권력와 횡포와 그와의 야합으로 반대 국민
 
을 억울하게 하고 삶의 질을 가뭇없이 떨어뜨려 감칠맛을 앗어간 것과 무
 
관하지 않다는 관전평이 우세하다.
 
 
 
필자는 박근혜의 분수 없는 넘나듦과 무궤도 행각으로 경천동지할 사건
 
사고가 연발하는 와중에서도 태풍권에 휘말려 있는 한둑 정치가 멀쩡한
 
양 얼버무려지고 음폐호도되고 있는 이면에는 무뇌한인 박근혜 일당에게
 
주어진 무한대의 로비력의 위세 때문이라는 사실에 전율을 금치 못하고
 
있다.그것이 웅변으로 말을 하여 로마 카톨릭 교황청을 움직이고 중국을
 
침묵시키는 것을 보며 로비의 힘이 하나님의 영역을 뛰어넘는 것같은 착
 
각을 불러일으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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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그네 애첩
201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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