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노인이 들려주는 세상살이 이야기!!


“팔십 사세 노인이 들려주는 세상 사는 이야기!“ 한석현 글
<박근혜의 인간적 불행과 비극!!> 2014. 2. 16
박근혜의 인간적 비극과 불행은 민주주의라는 개방적 문화 콘텐츠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은둔형 인간인 박근혜한태 턱없이 많은 비자금 폭탄이 안겨지게 된데서 비롯돼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기 시작했다고 보아야지 않을까?. 돈은 도야된 인격의 소유자에게 주어져야 제격일 것은 정한 이치다. 칠푼이이며 수첩공주이기도 한 박근혜에게 턱없이 많은 비자금이 안겨졌으니 미치광이 손에 비수가 들려지듯이 많은 이를 굳히는 역기능 속으로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든 것은 당근이라는 것이다.
돈이 인간을 천박하게 만드는 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성장배경 그의 풍운적인 삶의 발자국이 선명한 그림을 아루새겨준다. 알피와 오메가이시며 시작과 끝인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등 외식하는 상류사회 일원들이 ‘독사의 자식“으로 비춰졌다는 것은 많은 함축적인 의미을 던져준다고 본다.
이단종교인 유불사상도 이를 빠뜨리지 않고 풀이해 설명 해 주고 있다. 불교는 칠년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득도에 성공하여 특히 동남아 일대를 석권한 불교 이야기다. 유교의 선비 정신을 적절히 표현해 준 것이 왕조시대 청백리의 귀감이던 황이 정승이다. 그는 일인지 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있으면서 부귀공명을 마다하고 비가 새는 오두막채에서 사는 것에 뿌듯한 긍지로 여겼다.
왜였을까. 아름다운 날개의 공작새에게 고운 꾀꼬리를 안겨주지 않았듯이 동시다발로 한꺼번에 모두를 허락하지 않으며 물질적 풍요의 구가자에게서 정신의 고갈과 영혼의 멸절을 혼미케하는 극명한 이치를 깨달아 알았던 것과 사치와 허영이 스스로의 내면적 결손을 카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객관세계에 스스로 속빈 강정임을 드러내 보여준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 이치 설명에서 빠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이 미 전 대통령이던 존슨과 죤 에프 케네디 등이다. 존슨은 가난뱅이 출신 대통령이었다. 그와는 대조적인 것이 졸부 가정 출신 죤에프 케네디였다. 이 때 그들에게서는 두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음이 눈에 띄었다. 존슨은 한풀이 차원에서 최고 명품만을 선호하고 케네디는 아무 것이나 닥치는대로 몸에 걸치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들 두 대통령의 공적 평가가 어떠했는지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사치와 허영이 인격에 미치는 영향은, 아니 그보다 그의 사람값은 본레의 인격의 값에서 그가 몸에 걸친 치장값을 뺀 나머지 수치로 가리어진다는 수학공식이 소상한 설명을 대신해 준다고 일말하면 논리의 비약일까?. 그런 의미에서 팻션계의 여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박근혜에 대한 국제적 평가가 어떠할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이같은 시각 기준에서 볼 때 “돈이면 만사 OK!”라는 생각으로 부자 선호 사상에 얽매어 살아온 이명박근혜가 얼마나 ‘골빈당’이며 ‘속빈 강정’인지를 속속들이 알아차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같은 등식의 삶은 인간의 본질을 왜곡하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크레샴 법칙의 적용을 보다 용이하게할 공산이 크다.
투표의 등가성이 말해주듯이 본디 민주 정치사회는 그러짆아도 힘이 팔팔한 달려가는 말에 날개를 딜아주려는데 요체를 두고 있는 것이 아나며 못사는 다수로 하여금 가진 소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인간적 기존권을 누리고 행복권을 보장하려는데 합목적성을 두고 존립의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이야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인간적 조예나 경륜에 도달하지 못한 외화내빈한 식(外飾)하는 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미쳐날 뛰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 없는 참상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영적 감각이 뛰어난 한국인들을 진력나게 한다.

비추천 : 1
추천 : 0

Comment



대표논객

시사 토론방 추천 베스트

더보기

시사 토론방 조회 베스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