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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출생과 문제점이....
“박근혜의 출생과 성장배경에 문제가!!
한류바람이 온세계를 휩쓴다는 소식이 모든 우리들 귀를 번쩍 처들게 한다. 시작은 일본에서의 배용준에 의한 ‘가을의 연가’가 그 기폭제였다. 그 한류바람이 동남아를 휩쓸더니 중국으로 유러시아로 북미와 남미로 확산되고. 분야별로도 다양화하여 가요나 드라마만이 아니라 기계와 군수, 의료 등 산업적으로도 전분야애 걸쳐 있고 전방위로 테두리를 넓혀가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일본을 크게 압도하여 경쟁력 면에서 열배 이상 압도하고 있다는 등 소식이 우리들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한국의 대재벌의 눈부신 활약상이 단연 압권이다. 그같은 성장 동력이 국리민복의 증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고 있긴 하지만...
그런 소식이 귀결에 들려올 적마다. 바음에 걸리는 것이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의 부진과 부자들의 행태다. 정치는 구국제민의 경륜을 바탕으로 국리민복의 증진에 기여하고 국민으로 하여금 행복권을 누리도록 돕는데 요체를 두어야 하는데 박근혜가 미안마 수준의 정치에 저미하면서 국민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낭패와 곤혹을 안겨주고 있다. 한국의 부자들 또한 하나님이 천국에 쌓아두라는 보물을 땅위에 쌓는데 이골이 나있으니 말이다.
근자 박근혜 등 한국의 집권배들은 걸핏하면경제 건설“을 소리높이 외친다. 그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준다는 명분으로 부자 감세 혜택을 주고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등 인센티브를 주면서 부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네는 거동이 이만저만 가관이 아니다. 그래 국부(國富)를 늘리고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켜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국가 권력과 그와 결탁한 부자들은 답해야 한다. 그러고서도 이에 앉어주어야할 가치가 있다고 믿다니 착각도 유만부동이 아닌가
사람이 이웃과 나누는 정성으로 돈을 벌면 덕이 되기도 하고 이웃들에게 존경을 받는 등 선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돈의 포로가 돼 구두쇠 노릇을 한다면 사람을 얼마나 추악하고 우스꽝스러운 화상으로 만드는지를 아는가?: 이렇게 볼 때 도덕적 청맹과니라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잠시 갈머리를 돌려 잠시 부(富)의 역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넘어가는데 대해 네티즌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한다. 이말은 필자가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류의 편견에 시로잡혀 내뱉는 궤변적 억설이 아니라 세계 제일의 문헌적 가치를 자랑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빗대어 이르는 멀이니 부자(富者)들이나 경세가(輕世家)이고자 하는 정치가, 또는 행정가라면 누구나 귀담아야할 정론에 속하는 담론이라는데 인식을 함께 해주기를 기대한다.
돈이란 선용(善用하면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하기도 하고 이웃들에게 존경을 받는 등 값어치에 버금가기도 하지만 이것의 오남용은 미치광이 손에 비수가 들려지듯 많은 이를 굳히는 역기능 속으로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들기도 한다함은 많은 이들의 공론에 붙여지고 있는 사항이다.
돈을 벌면 틀어쥐고 독점적 지배권을 행사해서는 안되며 “모든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나누라“는 것이 돈에 대한 성경적 해석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구원의 길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한 “자기 소유를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의 말에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청년 이야기, 그리고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성경이야기 등이 떠오른다.
예수가 누구인가? 공자나 석가와 같은 반열에 놓고 “:인류의 스승”이라는 어휘로는 설명되어질 수 없는 진리의 원조정이며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은 귀감이 돼주신 고마운 분이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는 진리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어 이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만화 그림으로 만드는 지고선의 가치의 구현자이시다.
그 분은 출생과 성장배경부터가 세상의 범상한 여니 사람과는 달랐던 유형의 사람었다. 태어난 곳도 베들레헴의 마구깐이었다. 성장배경도 불우했으며 갈릴리는 상류사회 일원들에게는 버려진 땅이었다. 그리고 살아 생전에 수행한 선(善)기능으로 하여 죄값을 치뤄야할 이유가 없었던 어른이다. 그런 그가 십자가의 고난을 무릅쓴 이유가 어디 있었는지 의미의 함축성을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지 않을까? 그이가 상종하고 구원사업을 펼치신 이들도 상류사회의 일원이 아닌 비주류들이었던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이 있다. 예수가 왜 상류사회의 일원들을 “독사의 자식!”이라 하여 상류사회의 일ㅇ원들을 따돌렸느냐?“는 것이다. 이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하늘의 의와 진리가 그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유교의 선비 정신도 맥락이 같았음을 알 수가 있다. 결론으로 가야겠다. 세상에 고난보다 위대한 스승이 없다~”는 철학의 어록에 맀는 말이다.이런 시각기준에서 볼 때 구중궁궐 높은 집에서 인고의 세월을 거침이 없었던 박근혜에게 오천만의 운명이 맡겨진 현실이 얼마나 열한 현실과의 맞닥뜨림인지를 계산해 네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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