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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 바보들의 행진! 우리 국어를 왜 망가뜨리니?
사진=KOBAY
[시사뷰타임즈] “바보들의 행진”은 하길종 감독, 최인호 원작·각본의 1975년 한국 영화다. 위키백과는 이 영화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길지 않게 잘 요약을 해놓았다. “대학 철학과에 다니는 병태(윤문섭)와 영철(하재영)은 그들 나름의 꿈과 이상을 키우면서 젊은 대학 시절을 보낸다. 어느 날 만남에서 서로 알게 된 병태와 영자(이영옥)는 싱그러운 대화 속에서 우정과 애정 사이를 넘나든다. 한편 영철은 여자 친구와의 만남도 시들하여 그의 꿈인 고래를 잡으러 동해바다로 떠난다. 현실의 질식할 것 같은 폐쇄성에 대항이라도 하듯 그는 한없이 넓은 바닷가 벼랑 위에서 자전거를 탄 채 바다를 향해 돌진한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는 그 모든 모순과 부조리의 늪에서 해방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병태는 머리를 빡빡 깎고 군에 입대하는 열차에 오른다. 역 승강장으로 달려나온 영자는 갑자기 문어 대가리 모양으로 깎인 병태의 머리를 보고는 눈물짓는다. 차가 떠날 무렵 차창으로 상반신을 숙인 병태에게 입맞춤을 하려고 발돋움을 자꾸 하는 영자를 보다 못해 순찰 헌병이 살짝 들어 올려주어 연인의 이별을 아릅답게 장식하여 주었다.” 옛 바보들과 신판 바보들의 차이 이 영화에서 나오는 대학생 ‘바보’들은 꿈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즉, 현실 보다 더 낫고, 현실 보다 더 진취적인 것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는 꿈과 바람을 바탕으로 당장은 되지 않는 것을 답답히 여겨 ‘바보’ 짓들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서부터 설치는 21세기 현대판이자 신판 바보들은, 어떤 철학과 꿈을 바탕으로 어떤 것을 갈구하며 바보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무식함’과 ‘편함’을 기초로 그것을 굳히기 작전으로 나가는 제대로 바보다운 바보짓들을 하고 있다. 말과 글의 중요성 이 지구상에는 200곳을 훨씬 넘는 나라들이 존재한다. 유엔이 국가라고 말한 곳 외의 국가들도 있다. 그리고 여러 인종들이 존재하며, 눈동자 색깔, 피부 색깔 그리고 머리카락 색깔들이 몇 가지로 나뉘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들이 ‘인간’이라는 인종임에는 모두 다를 바가 없고, 인간에게 있는 모든 감정은 나라와 인종에 상관없이 똑같이 그대로 다들 간직하고 있다. 이들 나라와 인종은 외형적으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쓰는 말들도 각각 다르다. 그리고 어떤 말을 쓰고 사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진다. 사용하는 단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은 뭔가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생각하게 되며, 쓰는 단어가 적을수록 그 사람은 좀 덜깨이고 형이상학적 생각을 덜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넓지 않은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보아도, 원래 경상도 사람처럼 생긴 사람, 전라도 사람처럼 생긴 사람, 충청도 사람처럼 생긴 사람, 경기도 및 강원도 사람처럼 생긴 사람은 존재할 수 없고, 북한에 있는 여러 도처럼 생긴 사람도 원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가 어느 도에 사는 사람을 만났느냐에 따라 얼굴과 행동 및 사고 방식 등이 “어느 도 사람처럼 생긴 사람” 으로 양육되며 성장되어 가가다 나중엔 굳어버린다. 어느 도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 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면,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조금 있다가 바로 싸움이라도 할 것 같은 불안함이 드는 도도 있고, 웬지 상대방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잘 이해시키려는 듯한 말투의 도도 있으며, 인생이 다 그런 것이니 그렁 저렁 다 받아들이고 살자는 느낌이 드는 도도 있고 인생의 절박함이 웬지 느껴지는 도 그리고 우선 사람이란 경우를 똑바로 따져서 옳게 처신해야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느낌이 드는 도도 있다. 이러한 도에서 태어나서 그렇게 말하고 들으며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그 사람은 서서히 “어느 도 사람처럼 생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서로 간에 느끼는 것이 약간 다를 수 있는 도에 대한 설명이었지만, 지금, 각 도 사람들의 말과 그들의 얼굴을 생각해 보면, 도에 따라 사람들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말 중 어느 곳에 어떻게 강세를 주느냐, 억양의 문제, 중간 중간 감정을 격하게 넣느냐 부드럽게 넣느냐에 따라서도 전반적인 말투는 전혀 다르기에 도가 다른 사람끼리 빠른 말투로 전화 통화를 하면, 못 알아듣는 닫어가 대단히 많이 나올 때가 있다. 사실, 이렇기에 표준 교과서, 표준 국어를 정하여 국어사전을 만들고 국어책 및 모든 책을 표준어로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구어로는 안 통해도 문어적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다 통해야 비로소 하나의 국민이 될 것이므로. 올바른 표준말을 정확히 쓰면 골 아픈 사람? 요즘은, 쓸데없는 것에도 “그 사람 인권 존중” “그 사람 심정 안 다치기” 등등을 ‘강요’하고 있는 듯한 판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에게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해야한다고 가르쳐주거나 알려주거나 지적하면 꼭 어떤 사람 한 둘이 끼어들어 “거 다 성인들인데, 알아서 다 잘들 할테니, 잔소리는 좀 그렇지 않으나?” 는 식으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 옳은 말 하기도 대단히 신경이 쓰인다. 한국에선 19살부터 성인 취급을 하니 일단 성인으로만 보면 19살짜리 애송이와 90살 짜리 할아버지를 모두 성인이므로 동등하게 생각하려 한다. 예를 들어 ‘19금’ 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그 ‘19금’에 해당하는 내용을 19살 짜리와 나이 6~70인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고 그 바탕을 이해하는 것이 똑같은가? 어쨌건... 한국말의 특징은 어떤 것을 표현하는 내용인 ‘형용사’ 종류가 대단히 많고, 말의 어미들이 엄청나고 다양하게 바뀐다. 그런가 하면, 세계의 표준어라고 칭하는 영어의 경우엔 잡다한 부사적 표현도 많지만 특히 명사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한국말을 함에 있어서, 그렇기에, 형용사적 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어인 형용사들을 일부 말살하며 나가는 것이 된다. 일제가 지들 말을 입력시키려고 한국어를 말살시키려했던 것도 분통이 터지는데, 한국 땅에 한국인으로 살면서 왜 한국어 일부를 말살시키는가? 사람들은 한국에 살면서 늘 한국인과 이야기 하는 시간 보다, ‘바보상자’ 라고 이미 낙인 찍힌 TV를 보면서 TV 속 한국인들이 나와서 하는 말을 많이 듣고 산다. 연예인, 운동인, 잡스런 분야 해설인, 그리고 어느 프로그램 진행자 및 출연자들이 하는 말을 듣는데, 바로 이 사람들이 모든 한국인은 아니어도 과거 국어공부를 좀 열심히 안 한 사람들, 배움이 짧은 사람들을 모두 바보로 만들고 있으며, 저들을 따라한 사람들은 저들이 늘 TV에서 나와 떠들고 있으므로 그것이 표준어라고 굳세게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 -넌 왜 그리 허벅지가 두껍냐? -난 종아리가 너무 얇아. -좀 두꺼운 호스를 가져와 물이 콸콸 나오게. -실이 너무 얇아서 끊어질까봐 겁나네. -저 사람은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목이 무지 두껍네. 이런 류의 말들을 TV에 나오는 ‘바보’들이 주로 쓰는 말이고, 이들의 말을 옳은 줄 알고 ‘편히’ 따라하면서 덩달아 ‘진짜 바보들의 행진’에 참여하는 바보들도 있다. 그러나 저런 식의 말은 대단히 짜증이 나게 만드는 말들이다. 마치 세모와 네모가 똑 같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 윗말은 “넌 왜 그리 허벅지가 굵니?” “난 종아리가 너무 가늘어.” “좀 굵은 호스를 가져와 물이 콸콸 나오게.” “실이 너무 가늘어서 끊어질까봐 겁나네.” “저 사람은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목이 무지 굵네.” 가 너무도 당연하게 바르고 옳은 말이다. 누구라도 이렇게 써야만 한다. 얇다, 두껍다는 어느 사물의 두께를 말하는 것이다. 공책은 두께가 얇고, 전문서적들은 두께기 두껍다. 구름의 층이 많고, 각각 여러 사람들의 층이 많을 때, 그때는 “바둑인구 층이 두터운 편이다. 그러나 별장을 가진 인구 층은 엷은 편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해야 옳은 것인데 무조건 가늘은 것도 얇다고 하고 얇은 것도 책 두께를 말하듯 얇다고 하는 건 엄청나게 잘못된 것이니, 한아름이 더 되도록 굵고 나이많은 나무를 보며 “이 나무 엄청 두껍다.”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잘못 쓰는 한국말인가? 전라도의 ‘세발 낙지’ 이 맛있는 낙지 명칭을 처음 들으면, “전남 무안이라는 곳에는 다리가 세 개 달린 낙지가 있는 모양이로군..” 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세발이라는 말은 한국어와 중국 한자가 섞인 말이다. 세는 細라는 한자이며 얇을 세가 아니라 가늘을 세이다. 하나를 한자를 썼으며 나머지도 한자를 사용하여 발이 아니라 足(족: 발 족)이라고 썼으면 알아듣기가 좋았을 것이다. 순 우리말로만 쓰려면 ‘가는 발 낙지’라고 했어야 옳고 낙지가 발이 가늘다는 것을 한자로 쓰려면 ‘세족(細足) 낙지’라고 했어야 옳다. TV를 보는 많은 한국인들이 TV 속으로 또는 방송국으로 뛰어가 그들의 말 잘못함을 지적하여 고쳐줄 수는 없다. 반대로 TV 속 바보들이 그릇된 말을 쓰는 경우가 많으므로, 차후 바보상자 속에서 ‘바보’들이 말하는 것은 귀로 걸러 들어야 한다. 그리고, TV 밖 많은 사람들이 아무데나 무조건 얇다느니 두껍다느니 하는 1차원적인 말을 쓰지 말고 옳은 말을 쓴다면, TV 속 많은 ‘바보’ 들이 나머지 한국말 옳게 쓰는 사람들을 따라 ‘정상’ 이 될 것이다. Com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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