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죽림동 주교좌 성당


sisaview DB 


 입력 2018.11.19.

 

[시사뷰타임즈] 이 성당은 주교좌 성당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역사가 있고 무게감이 있다. 그리고 성당 전반적 모습이 아름답다.

 

언덕 위에 지어놓은 이 성당은 도로변 자연석 돌들 사이로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있고 언덕을 올라가 본당 주위를 돌아보면, 각종 단풍 든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어서, 단풍 구경을 따로 안가도 될 정도이다.

 

또한 이 본당 건물은 지을 당시, 우리나라엔 기술자가 없어서 중국인 기술자가 지었다고 하며, 하늘에서 보면 자 모양으로 지었다.

 

본당 뒤로 돌아가 보면, 묘소를 마련해 놓았는데, 예전에는 봉분도 있었지만, 주위에서 말이 많아 화장으로 해서 현재의 묘소로 만들었고 차후 이곳을 거치는 신부들이 선종하게 되면 이곳에 안장될 것이라고 한다.

 

또안 이 주교좌 성당에는 별도로 4층 건물을 지어 교육 및 각정 천주교 관련 역사적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본당 뒷채에 복자로 시복된 사람들을 모시는 곳이 있는 곳도 몇 안되고 이렇게 전시장을 마련하고 있는 성당도 보기 드물다.

 

전국적으로 순례객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 성당 소속 평신도 회장 등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해설사역할을 하기도 한다.

 

간략설명 6·25 전쟁 때 피살 당한 성직자들의 묘소 보존

지번주소 강원도 춘천시 죽림동 38

도로주소 강원도 춘천시 약사고개길 23

전화번호 (033)254-2631

팩스번호 (033)257-2631

홈페이지 http://juklim.cccatholic.or.kr

문화정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4

 

성당 건립 중 6.25 전쟁이 일어나 대파되었다가 복구하여 1956년 봉헌식을 가진 성당 정면. 2003년 등록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다.천주교의 강원도 전래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실학(實學)의 학풍을 일으킨 남인(南人)계 선비들이 18세기 말엽에 이른바 강학회(講學會)를 연 것이 교리 탐구와 신앙 수련의 모태가 되면서 천주교 신앙이 이 땅에 싹트기 시작하였다그들 중 이승훈 베드로가 1784년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선배와 동지들에게 세례를 주면서부터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태동하였으나 멀지 않아 거센 박해를 받게 되었다.

 

신해박해(1791)와 을묘박해(1795)에 이은 신유박해(1801)에 이르러서는 서울과 경기도에 밀집하여 살던 교우들이 충청도 · 강원도 등의 산간벽지로 숨어 들어갔는데이들 중 경기도의 신태보 베드로가 40여 명의 교우를 이끌고 갖은 고생 끝에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으로 피난하여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우촌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퍼져나간 신앙에 귀의한 초기 교우들 가운데 춘천 신읍리 지방의 최 요한과 회양 지방의 조신철 가롤로처럼 1815년에 투옥된 이들이 있는데조신철 가롤로는 강원도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이들보다 늦게 1840년에는 춘천에서 신자 아홉 명이 투옥되어 그 중 두 명이 옥사하기도 하였다. 1880년을 전후하여 종교의 자유가 공인되기까지 강원도의 시골 교우촌을 두루 다니며 힘겹게 전교에 헌신한 김 시몬 신부와 최 요한 신부도 울진과 춘천 말고개에서 각각 잡혀 모두 원주 감영에서 치명하였다.

 

1998년 중창 축복식을 갖고 전례적예술적 공간으로 거듭난 성당의 제대.이처럼 강원도 지방에 천주교가 전래된 지 80여 년 동안상주하는 신부 없이도 교인 수는 소리 없이 늘어 천여 명에 이르렀다그러다가 1888년 서울에서 조선 대목구장 뮈텔(Mutel) 민 주교에 의해 파견된 파리 외방전교회 르 메르(Le Merre, 李類斯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풍수원이 본당이 되었으니 신태보의 피난 이후 무려 87년만의 일이었다.

 

풍수원 성당과 곰실 공소의 성장 당시 풍수원 본당은 춘천 · 원주 · 화천 · 양구 · 홍천 · 횡성 · 평창 · 양평 등 12개 군에 걸쳐 29개 공소에 2천여 명의 교우를 관할하게 되었다르 메르 신부 후임으로 방인사제 정규하(鄭圭夏아우구스티노 신부가 1896년부터 1943년까지 48년 동안이나 2대 풍수원 주임으로 있으면서 교회는 강원도 땅에 깊이 뿌리내렸다.

 

풍수원의 교세가 점점 늘어감에 따라 이미 1896년 원주 본당 분할을 비롯하여 1920년에는 춘천(죽림동의 전신인 곰실본당을, 1948년에는 홍천 물구비(현 양덕원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풍수원 본당은 경성(서울대목구로부터 1939년 4월 25일 춘천 지목구(1955년 9월 20일부터는 대목구, 1962년 3월 10일부터는 교구)가 분할 · 설립되면서 춘천 교구로 편입되었다가, 1965년 3월 22일 원주 교구가 춘천 교구로부터 갈라져 나가면서 이번에는 원주 교구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당 마당의 성모자상.한편 죽림동 본당의 모체인 춘성군 동내면 고은리 곰실 공소는 1920년에 본당으로 정식 설립되기까지 정규하 신부가 해마다 서너 번씩 찾아가 가정집과 강당에 모이곤 하였으나 교우 수가 무려 300명에 이르자 본당 설립과 상주 사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죽림동 본당의 모체인 곰실 공소 우리나라의 신앙 전래가 외국 선교사의 전교 없이스스로 신앙 교리를 찾아 그 가르침대로 살게 되면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듯이춘천 지역 또한 교회의 정착이 그와 같은 길을 걸었다이 경우 역시 천부적인 종교심성을 지닌 한 젊은이의 자발적인 신심과 열정이 훌륭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으니 그 공로자인 청년의 이름은 엄주언 마르티노(말딩)였다.

 

엄주언(嚴柱彦마르티노는 1872년 12월 10(춘성군 동면 장학리 노루목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착하고 총명하던 그는 열아홉 살 되던 해인 1891년 우연히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감명을 받은 나머지 구도에 나설 것을 결심하였다그로부터 2년 후인 1893년 늦가을에 그는 맏형과 함께 일곱 식구를 모두 데리고 우리나라 천주교의 발상지인 경기도 광주 천진암을 찾아가 그곳에 움막을 짓고 어렵게 지내면서 교리를 배워 이듬해에는 형과 함께 프랑스인 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엄주언의 딸 엄 루치아의 증언이나 1894년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중에서 씨 성을 가진 신부는 없었다). 그렇게 3년간의 광주 생활을 마칠 무렵인 1896년에 나머지 가족도 다 영세한 후 굳은 전교 사명감을 품고 고향에 돌아왔다그러나 그들은 천주학쟁이로 냉대를 받으며 마을에서 쫓겨나 외가의 도움으로 고은리 윗 너브랭이라는 곳에 폐가 한 채를 사서 겨우 정착하였다.

 

춘천교구 성직자 묘역에서 바라본 성당 모습.엄주언 일가는 이처럼 친척과 이웃으로부터 따돌림과 수모를 당하면서도 맨손으로 어렵사리 화전을 일구어 가며 묵묵히 살기 시작하였다마침내 주경야독 하며 근검하게 사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차츰 감동하여 가르침을 청하기에 이르렀다윗 너브랭이에서 여러 해 땀 흘린 보람이 있어 살림과 농지를 늘려 아랫 너브랭이로 옮겼다가 다시 곰실 공소로 옮긴 후 조촐한 강당까지 마련하여 공소 예절을 보게 되자물구비 · 춘천 · 화천 · 양구 순으로 공소를 순방하던 정규하 신부가 곰실에서 해마다 40-50명 씩 세례를 줄 정도가 되었다곰실 공소 교우들은 엄 회장 지도하에 자선 봉사와 엄하고 독실한 모범적 신앙생활에 전념하면서 마침내 300명 가까운 수로 늘어났다. 1920년에는 제대로 규모를 갖춘 공소를 건립하고 지역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실로 모범적인 신앙 공동체로 성장하였다.

 

곰실 본당의 춘천 진출 이렇게까지 되는 동안 엄 회장이 풍수원과 서울 명동을 수년간 거듭 방문하면서 상주사제 파견을 간청한 결과 마침내 곰실 공소가 본당으로 설립되면서 1920년 9월 초대 김유룡(金裕龍필립보 신부를 모시게 되었다활기 넘치는 곰실 공동체는 춘천 시내 진출을 위해 교우 전원이 애련회(愛煉會연령을 위한 단체)에 가입하여 가마니 짜기새끼 꼬기짚신삼기 등을 통해 몇 해에 걸쳐 푼푼이 애써 모은 돈에 논까지 팔아 약사리(藥師里고개 현 죽림동 성당 아래 골롬반 병원 터와 아랫마당 그리고 수녀원 터인 당시 김영식의 대자의 집(약사리 148번지)을 사서 개조하여 1928년 5월부터 춘천 본당의 옛 성당으로 쓰게 되었다.

 

성당 뒤뜰 춘천교구 성직자 묘역 한편에 6.25 전쟁 순교자 묘가 자리하고 있다.그 후 1938년 제5대 유영근 요한 신부까지 방인사제가 주임을 맡다가 같은 해에 강원도 지역의 사목 책임이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위임되고곧이어 라리보(Larribeau, 주교가 맡고 있던 서울(경성대목구에서 춘천 지목구가 1939년 4월 25일자로 분할되면서 새 지목구의 초대 지목구장으로 당시 광주 지목구장인 오원 맥폴린(Owen McPolin) 신부가 겸임을 하게 되었다하지만 임지에 가서 직접 사목활동을 하지 못한 채 얼마 후 춘천 본당 제6대 주임으로 있던 퀸란(Quinlan, 신부를 대리로 임명하였다퀸란 신부는 1940년 12월 8일 제2대 지목구장이 되었다.

 

1938년 10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춘천 본당 제6대 주임으로 부임한 퀸란 토마스 신부는 부임 직후 약사리 고개 언덕에 있는 도토리 밭을 매입하여 현재의 성당 자리를 마련하였다그리고 1950년에 죽림동 본당으로 개명하였다골롬반 외방선교회는 춘천 교구를 1994년에 제6대 교구장 장익 요한 주교가 부임하기까지 모두 55년간 사목하였다.

 

새 성당 건립 현재의 죽림동(竹林洞성당은 김유룡 신부와 엄 회장이 이끈 곰실 교우들이 애써 마련한 아랫터에 보태어 퀸란 토마스 신부가 매입한 언덕 위에 서게 되었는데그 기공식은 성당 벽에 라틴어로 붙어있는 초석이 말하듯이 1949년 4월 5일에 있었다새 성당의 건립은 퀸란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한 지 2년 후인 1941년에 감목 대리직을 맡으면서 계획해 오던 것이지만 일제 치하의 외국인 구금 및 연금으로 착공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해방과 더불어 1946년에 그가 다시 복직하였으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로 다시 미루다가 다행히 미군부대의 도움을 얻어 1949년 본격적으로 착공하게 되었다.

 

성역화 사업으로 시내 중심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성당 입구에 새로 설치된 예수성심상.실제 건축 작업은 전남 광주에서 온 씨 성의 한 화교 기술자와 또 한 사람의 기술자가 맡았다석재는 멀리 홍천 발산리 강가에서 날라다 썼다그러나 거의 한 해 동안 돌로 외벽을 훌륭하게 다 쌓고 동판 지붕까지 덮고 나서 내부 공사에 들어갈 참에 6.25 전쟁이 터졌다.

 

성당 파괴와 납북 기막힌 전란이 터지자 춘천시에서는 그 이튿날인 6월 26일 아침부터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게다가 남침이 시작된 바로 다음 주일인 7월 2퀸란 토마스 지목구장 신부가 본당 미사를 드리는데 인민군이 들이닥쳐 성당 안에서 공포를 쏜 후 20여 명의 교우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캐나반(Canavan, 보좌신부와 함께 체포 연행하였다소위 이 죽음의 행진으로 교황사절 번(Byrne, 주교를 비롯한 외국인 사제수녀개신교 목사 등 수백 명이 끌려가 평안북도 어느 험한 산비탈에 강제 수용되었는데캐나반 신부도 번 주교처럼 그곳에서 모진 고생과 추위를 못 이겨 선종하였다그래도 1953년 4월까지 34개월간의 포로 생활에서 기적같이 살아서 돌아온 사람 중에는 퀸란 토마스 신부와 크로스비 필립보 신부도 있었다.

 

그리고 라 파트리치오 신부고 안토니오 신부진 야고보 신부는 모두 아일랜드 출신으로 1950년 남한에서 피살되었다이렇게 6.25 전쟁 중에 순교하거나 납북되어 모진 고생 끝에 생환한 후 선종한 성직자들의 시신은 죽림동 성당 뒷마당의 성직자 묘역에 모셔져 있다.

 

말딩 회관곰실 공소 회장으로 죽림동 성당의 기초를 놓은 엄주언 마르티노 회장을 기념하여 명명하였다.이밖에도 춘천 지목구에서는 6.25 전쟁을 전후로 평강 본당의 백응만(白應萬다마소신부가 연행되어 옥사했고의주 본당의 김교명(金敎明베네딕토신부가 행방불명되었으며소양로 본당의 콜리어(Collier, 신부와 홍천 본당의 크로스비(P. Crosbie, 신부도 퀸란 지목구장 신부와 함께 죽음의 행진을 했다연길 · 함흥 · 원산 지역의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의 남하를 헌신적으로 돕던 양양 본당의 이광재(李光在티모테오신부 또한 1950년 6월 24일 공산군에게 연행되어 원산 와우동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0월 9일 총살당하였다.

 

처참한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3일부터 중공군이 밀물처럼 쳐들어오자 국군은 이른바 1.4 후퇴라는 참패를 당하였고, 5월에는 유엔군의 반격이 있었는데 그 작전 중의 공습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짓다만 죽림동 새 성당의 한쪽 벽이 무너지고 사제관 등 부속 건물이 대파되었다.

 

성당 복구와 완공 이 와중에서도 1951년 8월에 제13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커머포드(Comerford, 토마스 신부는 마당에 천막을 치고 미사를 드리면서 서서히 복구 준비를 하였다복구 준비는 한참 전란 중임에도 불구하고 미군과 교황청의 지원으로 비교적 잘 진전되어 1953년에는 대부분 완료되었다한편 수용소에서 살아온 퀸란 신부는 그곳에서 순교한 번 주교의 뒤를 이어 한동안(1953-1957교황사절 서리를 겸하였다. 1955년 9월 20일 춘천이 지목구에서 대목구로 승격되자 퀸란 신부는 11월 23일 초대 춘천 대목구장으로 부임하면서 주교로 서품되었다이듬해인 1956년 6월 8춘천 교구와 죽림동 성당 주보 축일인 예수성심 대축일에 새로운 모습을 갖춘 주교좌성당의 봉헌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성역화 사업으로 새로 단장된 성당 전경성당 앞으로 중정회랑전정이 조성되었다.주교좌성당 중창(重創모두가 그처럼 힘을 모아 파괴된 성당을 복구하고 완공했던그 어려운 시대에 최고로 잘 지은 훌륭한 죽림동 성당이었지만 4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크게 보수할 필요성이 생겼다누수로 삭아가는 지붕과 천장몹시 녹이 슨 창틀과 꺼지는 마루뒤틀린 문틀누전 위험이 큰 배선 등 견고한 석조 벽채를 제외하고는 가벼운 개보수를 넘어 총체적 중창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2000년 대희년과 교구 설정 60주년이라는 성숙과 도약의 뜻 깊은 해도 아울러 맞게 된 춘천 교구로서는 그 상징이자 중심인 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성당의 모습을 일신하여 새 천년기에 들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이 일을 더욱 뜻있게 이루고자 방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94년 12월 14일 춘천 교구장으로 착좌한 장익 요한 주교는 죽림동 본당 제22대 주임 이정행 요한 신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협조와 가톨릭 미술가회 중진 작가들의 적극적 참여에 힘입어, 1998년 4월부터 다섯 달에 걸쳐 성당 안팎 공간의 형태는 역사적인 모습 그대로 보존한 채 순전히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기량과 성의와 노력으로 전례 거행에도 합당하고 예술적으로도 흡족한 성당을 실현하는데 진력하여 마침내 9월 14일 십자가 현양 축일에 중창 축복식을 가졌다또한 80여 년 전 죽림동 성당 터를 마련하고 주교좌성당의 기초를 놓은 엄주언 마르티노 회장의 공적을 기리고 춘천교구 가톨릭 회관으로서의 전교사업을 목적으로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말딩회관’(사제관 포함)을 건립하여 1999년 4월 24일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성역화 사업으로 새단장한 성당 전경.

 

주교좌성당 성역화 죽림동 성당은 2003년 6월 25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11월 21일 말딩회관 내에 본당 설립 100주년(2020)을 앞두고 마련한 역사전시실 축복식을 가졌다그리고 2013년 6월 14일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는 죽림동 성당 성역화 사업 기공식을 갖고 공사를 시작해 그해 12월 1일 축복식을 가졌다죽림동 성당 성역화 사업은 성전이 지닌 역사와 아름다움을 살리면서 근현대 신앙 증인들과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현양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으로성 골롬반 의원 폐원과 성 골롬반 수녀원 이전으로 확보된 성당 앞 부지에 전정 · 중정 · 회랑 등을 지어 새롭게 단장하였다. 2014년 6월 1일에는 교구 주보이자 본당 주보인 예수성심상(오광섭 작)을 새로 제작하여 시내 중심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성당 입구 언덕 위에 설치하고 축복식을 가졌다이는 청동 소재로 된 예수성심상 중에서 국내 최대 규모이다. [출처 죽림동 성당 홈페이지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4년 11월 16)][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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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계방향으로]1.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교회 광장의 폐허된 교회들 속에서의 교황 /로이터 통신2. 카라고쉬의 ‘무원죄 잉태’ 교회에서 기도하는 교황 / 로이터 통신사3. 이슬람 시아파 정신적 대 지도자라는 사람과의 회동 / EPA4. 이랔에서 최초로 미사 집전을 하게 되는 교황 / BBC 영상 입력 2021.3.7.BBC 원문 1시간 전   [시사뷰타임즈] 후랜시스 교황이 역사적인 이랔 최초 방문 3일째 되는 날, ISIS 공격대원들이 점령했던 이랔 북부 여러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2014년 ISIS가 표적으로 삼았던 사람들 속에 있었던 크리스쳔들은 인권 학대를 제대로 알리고 있는 중이다.   교황은 모술시 -예전에 ISIS의 요새였던- 의 폐허가 된 교회들 사이에서 기도를 드린 뒤, 카라고쉬에서 크리스쳔들을 만났다.   코로나바이러스 우려에도 불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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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03-07
    • 956
  • 합덕 성당: 1929년 건립, 유서 깊고 저명한 성당
  • 이 창의 모든 사진: sisaview DB 입력 2020.10.2.   [시사뷰타임즈] 합덕 성당의 본당은 지금으로부터 91년 전에 건립된 것이므로, 천주교의 고난의 역사를 대변하는 곳들 중 하나이며, 본당 내부나 본당 문이나 고색이 창연하다.   새롭게 ‘현대적’ 으로 말끔하게 안 팍을 지어 놓은 성당들은 깔끔함과 세련된 맛은 느낄 수 있고 그동안의 모든 것을 종합하여 대변인 같은 맛은 있으나, 세월의 무게, 옛 신앙인들의 피와 땀 그리고 정성스런 신앙, 고매하고 숭고한 한국 천주교의 역사 및 한국 천주교를 굳건히 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던 생활과 세월은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성당 그 자체로 풍기는 내음도 별로 없다.   합덕 성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성당 건축 양식이 ‘고딕식’ 이라고 불리우는 여러 성당들은 성당 건물의 외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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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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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괴 성모 순례지 - 성모님께 봉헌된 어머니 성당
  •   sisaview DB /루르드의 성모 재현 동굴 사진=감곡성당임 가밀로 신부가 성모님께 기도하여 마련된 성당임 마밀로 신부가 일제 신사터가 되려할 뻔 한 곳을  기도로 지킨 곳 인민군이 사령부로 사용할 때 성모상에 쏜 총알 피해 가많은 치유의 기적이 있는 성당 입력 2019.9.20.   위치: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357-2성당 전화번호: 043) 881-2808~9   [시사뷰타임즈] 19일 목요일, 매괴 성모 순례지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30분 쯤이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은 후 본당에 들어갔는데 20여명이 채 못되는 신자들이 제대를 바라 보며 여기 저기 듬성듬성 앉아있기에 평일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고, 그냥 성당에 앉아 묵상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순례’차 이곳 성당을 찾은 것인데, 작지만 성의를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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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20
    • 3008
  • 배티 순교 성지 - 최양업 신부의 한국 최초 신학교
  •   sisaview DB입력 2019.9.20.   위치: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471순교자들의 임금이신 주님,영원으로부터 감추어진십자가의 권능과 지혜를제 마음 안에 부어주시어당신의 발자취를 따름으로써 저로 하여금당신의 거룩한 십자가의 종들과 함께당신의 거룩한 마음과지극히 복되신 성모님의 달고 단 사랑과순교자들의 공로를 통하여 현세에서는 전우가 되게 하시고후세에서는 공동 상솎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조선 포교지의 부제최양업 토마스   이 기도는 최양업 토마스 부제가 1847년에 홍콩에서여든 두 분의 기해·병오박해 순교자전라틴어 번역을 끝마치면서 바친 기도이다.  [시사뷰타임즈] 배티 성지는 말 그대로 천주교의 성지 임과 동시에 충북 진천군이 자랑하는 관광명소이자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기도 하낟.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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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20
    • 322
  • 대전교구 산막골 성지: 페롱 신부, 황석두 성인이 순교한 곳
  •  sisaview DB입력 2019.5.7.   [시사뷰타임즈]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금덕길 187-15 (금덕리 357-2)에 위치한 산막골 성지는, 기해박해를 피해 천방산으로 깊이 깊이 숨어든 곳 답게 대단히 깊이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승용자 및 승합차는 갈 수 있지만 버스는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길이 좁다. 걸어서 올라가려면 몇 십분을 꾸준히 가야 한다.   오늘 찾아간 산막골 성지는 그동안은 과거 교우촌으로 형성됐던 곳이 거의 다 허물어 질 정도가 된 집 몇 채만 있을 뿐 전혀 성지 같지 않았는데, 서천본당 김종민 신부(사도 요한)이 이곳의 천주교 史的 의미를 깊이 연구해 보다가 충분히 성지로서 가꿀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 성지 개발에 나선 것이어서 현재까지도 십자가의 길 14처, 성모상, 십자고상, 황석두 루카 성인 동상 외엔 다른 것이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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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07
    • 1592
  • 어농 성지 - 주문모 신부의 묘를 모신 곳
  •                                                                                   sisaview DB 입력 2019.2.13.   [시사뷰타임즈] 어농 성지는, 부지가 대단히 방대하며 오르는 도로 길가에 대형으로 십자가의 길 14처 부조상들이 서있다,   또한, 십자가 동산이라고 하여 통나무 두 개를 열 십자로 하여 십자가를 만들어 놓은 것이 부지 내에서 올라가는 길 한 옆에 무수하게 있다.   성지 내에는 죽창을 상징하는 대단히 높고 대형인 조형물이 있고 성모상 앞에는 아기자기하게 자그마한 천사 조각상도 있는 등 성지 전체가 이 세상을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어농 성지에 있는 본당 제대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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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3
    • 792
  • 단내 성지: 단내에 이어 남한산성까지 이어진 순교
  •  sisaview DB 입력 2019.2.13.   간략설명 남한산성에서 백지사로 순교한 정은 바오로의 안식처지번주소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단천리 357 도로주소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이섭대천로155번길 38-13전화번호 (031)633-9531팩스번호 (031)634-9530홈페이지 http://www.dannae.or.kr전자메일 dannae-hl@casuwon.or.kr   언덕 위에 건립된 성당 외부.이천시 호법면 단천리에 위치한 단내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광주 유수부인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정은 바오로(鄭溵, 1804-1866년)와 그의 재종손인 정양묵 베드로(鄭亮默, 1820-1866년)의 고향이자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다. 앞에 단천이 흐르고 뒤에 숲이 울창한 와룡산이 감싸고 있는 단내 성지는 한국 교회사에서 처음으로 성직자를 조선 땅에 영입한 주역 가운데 하나인 순교복자 윤유일 바오로(尹有一, 1760-1795년)의 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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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3
    • 521
  • 골배마실 성지 - 김대건 신부가 자랐던 곳
  •  sisaview DB 입력 2019.2.13.   간략설명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곳지번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810(양지파인리조트 내) 전화번호 (031)338-1702팩스번호 (031)338-1780홈페이지 http://www.euni.or.kr전자메일 yanggi-hl@casuwon.or.kr관련기관 은이 성지 관련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632-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골배마실은 한국 최초의 방인 사제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무덤이 있는 미리내에서 산길로 30리, 찻길로 80리 거리에 위치한 골배마실에서 그 옛날 김대건 신부는 그의 나이 15세 때 신학생 후보를 찾아 헤매던 모방 신부에 의해 장래 조선 교회를 이끌 목자의 재목으로 선택된다. 그리고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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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3
    • 791
  • [은이 성지] 김대건 신부 세례받은 곳, 첫 사목활동 한 곳
  •  김대건 신부가 수품받은 상해 김가항 성당을 복원해 2016년 봉헌식을 올린 새 성당 외부.sisaview DB    입력 2019.2.13.   [시사뷰타임즈]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프랑스 선교사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던 곳인데,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은 중국 상해의 김가항(金家巷) 성당이다. sisaview DB  은이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가 어릴 때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던 그 자리에 물방물 모양의 조형물이 있고 이 조형물 속에 세례를 주고 받는 모방 신부와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철판에 구멍 뚫어 새겨놓은 것이 있다.   또한, 김대건 신부가 첫 사목 활동을 했던 곳이 은이 공소이어서 은이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있다. 그러므로 은이 성지는 천주교회사적으로 대단히 의미심장한 곳이다.sisaview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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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3
    • 837
  • 의정부 양주, 성역화 성지화 추진
  •             양주순교성지를 알리는 현수막, 미사시간을 알리는 현수막 그리고 성역회 예정부지의 모습 sisaview DB    입력 2018.11.19.[시사뷰타임즈] 의정부 교구는 양주에서 순교자 5명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이곳을 성역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현재 컨테이너를 하나 가져다 놓고 순례객들이 오면 이 속에서 설명을 하ㅣ기도 하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지원하는 마음’이 필요한 곳이다........    의정부 ‘양주 순교성지’ 선포교구 내 첫 선포, 성지 성역화와 순교자 연구 추진 [가톨릭평화신문: 2016.6.5.] 의정부교구는 5월 28일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위치한 양주 관아터에서 양주 순교성지 선포식을 거행했다. 이로써 양주 관아터는 의정부교구 관내의 첫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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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1-19
    • 1554
  • 죽림동 주교좌 성당
  • sisaview DB  입력 2018.11.19.   [시사뷰타임즈] 이 성당은 ‘주교좌 성당’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역사가 있고 무게감이 있다. 그리고 성당 전반적 모습이 아름답다.   언덕 위에 지어놓은 이 성당은 도로변 자연석 돌들 사이로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있고 언덕을 올라가 본당 주위를 돌아보면, 각종 단풍 든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어서, 단풍 구경을 따로 안가도 될 정도이다.   또한 이 본당 건물은 지을 당시, 우리나라엔 기술자가 없어서 중국인 기술자가 지었다고 하며, 하늘에서 보면 十자 모양으로 지었다.   본당 뒤로 돌아가 보면, 묘소를 마련해 놓았는데, 예전에는 봉분도 있었지만, 주위에서 말이 많아 화장으로 해서 현재의 묘소로 만들었고 차후 이곳을 거치는 신부들이 선종하게 되면 이곳에 안장될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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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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