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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논산시 강경성지성당 - 성 김대건 신부 첫 사목지가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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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설명 김대건 신부 일행이 상륙해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한 곳 지번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 228 도로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옥녀봉로27번길 13-3 전화번호 (041)745-1298 문화정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650호
[시사뷰타임즈] 논산시 내 강경읍에 1961년에 건립된 성당이어서 본래의 성당이름은 “강경성당” 이고, 인근의 주민들도 다 그렇게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 왜, 어떻게 “강경성지성당” 으로 불리게 된 것인지 그 연유를 좀 물어보려 했으나, 이 성지성당 사무실 입구 유리문에는 “23일까지 사무쉴은 휴무” 라는 긍이 종이에 적혀 붙어있었다. 그리고 더 아쉬운 것은, 강경성지성당의 본당에 뜰어가서 분위기에 흠취해 보고도 싶고 고요히 앉아 성당 및 성당 역사를 모두 정신 속으로 흡입하는 자세로 경건하게 마음 속 기도라도 올리려 했으나 본당의 출입문들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느낀 것은, 건죽에 조예가 깊은 보드뱅 신부가 설계와 감독을 하여 지어진 성당이어서 그런지, 철로 된 본당문의 손잡이, 주위 장식 등등이 한국에서 보던 것이 전혀 아니었고 대단히 이국적이었다. 아래, 가톨릭 굿뉴스에서의 자세한 설명에도 나와 있듯 이 성당이 종교적으로나 건축학 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50호로 지정됐다는 것만 보아도 이 성당은 여러 모로 독특한 곳이다. 그런데, 좀 의아스러운 것은, 한국 천주교 측에선 전국에 있는 성지 목록을 설명과 사진을 곁들여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2011년 제1판, 2014년 제2찬 그리고 2015년 제3판이 가장 최근에 발간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였고 대개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 책을 보고 성지 순례를 떠나고 또 이 책에 적힌 모든 성지를 모두 순례하여 상을 받은 신자도 있지만 2020년에 40~50곳이 추가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에는 이 강경성지성당이 기록돼 있는지 모르지만, 2015년 3판까지 나온 책에는 강경성지성당에 대한 소개가 전혀 없었다. 누락됐던 것인 듯하다. ‘가치’ 라는 것은 동등하기에 좀 초라한 (?) 공소 또는 현재 조성하고 있는 성지들도 소개를 하면서 김대건 신부가 유학을 다녀온 후 외국인 신부와 함께 강경에 상륙하여 첫 사목활동을 하고 또 현재 성 대건 안드레아 기념관까지 있는 이 성당이 누락됐다는 것은 좀 큰 실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성당은 종교적/건축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을 떠나, 성당 자체의 부지는 산자락 자체를 모두 아우르는 대형 성지들에 비해선 좀 적은 편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은 부지를 돌아가며 처처 마다 동판에 조각을 하여 돌 위에 얹어놓는 방식으로 묵직함을 갖고 있어 좋았지만, 성모 동산은 규모가 좀 적다. ![]() (상) 성 김대건 교육관과 성모 동산 (중) 본당 앞에 있는 비석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 강경성지성당의 정원 모습과 23일까지 사무실 휴무. sisaview DB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성당은 세심하게 배려되고 잘 가꾸어 놓아 편안히 있을 수 있는 정원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역사도 깊고, 종교적으로도 가치가 높으며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기념관도 있기에 많은 성자들이 자신들의 신앙 및 신심을 깊이하기 위해 주목하여 찾을 성지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가톨릭 굿뉴스가 소개하는 강경성지성당 [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강경성지성당 하느님의 종 페레올 주교, 성 다블뤼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현석문 가롤로, 성 최형 베드로 등 일행 14명 강경 포구 인근에 상륙
2021년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16세 때인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 프란치스코는 병사하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입국을 시도하여 페레올 주교와 함께 변문으로 왔으나, 김 부제 홀로 1월 15일 서울에 도착했다. 1845년 4월 페레올 주교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작은 목선을 구입하여 신자들과 함께 상해로 향했다. 그는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1845년 8월 17일 상해(上海) 김가항(金家港)성당에서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845년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라파엘호라 명명한 작은 목선을 타고 상해를 출발하였다. 하지만 도중에 풍랑을 맞아 제주도 용수리 포구에 표착하게 되었다. 이후 재정비를 마치고, 충청도 강경포구를 목적지로 길을 떠난 페레올 주교, 성 다블뤼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현석문 가롤로, 성 최형 베드로 등 일행 14명은 1845년 10월 12일 저녁 8시경 강경 포구 인근에 상륙하였다. 서양인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조선 상복으로 갈아입고 방갓을 쓰고 포선으로 얼굴을 가린 다음, 사공 2명에게 각각 업혀 육지에 발을 내려놓았다. 강경의 천주교 신자 2명의 안내를 받아 눈에 뜨이지 않게 조용히 하선한 뒤, 김대건 신부는 강경 교우 구순오(具順五)의 집에 한 달 남짓 머물며 고국에서 첫 사목활동을 시작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강경에서 성사를 집전하고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라파엘호를 정리하고 새로이 배를 준비하는 등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준비를 했다. 이 집에서 페레올 주교는 2개월 이상 은거하며 자신의 교구에서 처음으로 교구장 직무를 수행했다. 따라서 강경은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 활동지와 사제관이 되었으며, 페레올 주교의 주교관이자 조선대목구의 대목구청이 되었다. 현재의 강경성당은 1961년 건립된 것으로, 당시로서는 특이한 구조방식인 첨두형 아치보로 내부를 구성하는 등 현대적 처리가 돋보이는 성당 건축물이다. 건축에 조예가 깊은 보드뱅 신부의 설계와 감독으로 지어져, 건립 당시의 구조와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2015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50호로 지정되었다. 2019년 5월에는 본당 부지 내 공사를 통해 김대건 교육관과 김대건 신부가 서품을 받은 김가항성당을 본뜬 김대건 기념관을 건립하고 잔디광장과 함께 십자가의 길, 성모 동산을 조성하였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맞는 올해는 구순오의 집과 라파엘호의 복원을 진행 중이다. ※ 강경성지성당 - 충청남도 논산시 옥녀봉로27번길 13-3 Com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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