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익산 강경 나바위 성지...김대건 신부, 첫발이자 마지막 발 디딘 곳


사진에서 본당 건물 좌측에 있는 벽돌 건물이 당시 병원으로 쓰였던 곳. 본당 내부 양쪽 벽 상단에는 중국 건축자들이 만든 8각형 창문들이 연이어 나 있다sisaview DB


  

위치: 전북 익산시 망상면 화상리 1158

명칭: 젓갈로 유명한 강경 인근에 있어 흔히 강경 나바위 성지라 불림 

 


입력 2022.10.5


[시사뷰타임즈] 나바위 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된 뒤 조국에 입국하여 첫 발을 디딘 축복의 땅이라고 불리운다.

 

18451012일 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 및 다블뤼 신부 등과 함께 이곳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도착했다. 김 신부로서는 같은 해 1월 육로로 한 차례 입국한데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고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현재의 나바위 성당이 바로 이 곳에 세워졌는데, 베르모렐 신부가 성당을 세울 때는 김대건 신부 일행을 기념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역사적인 곳에 성당이 세워진 것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나바위 성당의 건축 양식은 한국인 정서에 맞게 한옥 형태를 취했다. 그뒤 1916-1917년에 흙벽은 양식 벽돌로, 용마루 부분은 종탑을 헐고 성당 입구에 고딕식 벽돌조를 붙여 세운 종탑으로 바꿨다 이러한 건축 양식의 특이함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 사적 제318호로 보전되고 있다.

 

이 성당은 상기한 역사적 성당 및 한식과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미사가 집전되는 성당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이 성당에서 전에 사목회장을 맡았던 김택열 스테파노 형제가 대전 태평동 성당에서 오는 신자들 일행을 본당 건물에서 나와 마당을 지나고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 맨 아래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맞아주었다.

 

그는 본당 앞에 있는 건물이 과거 병원으로 쓰였고, 열심히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치유되는 기적을 낳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위에 이 성당이 한식과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이라고 적었는데, 김 스테파노는 본당 건물 양쪽벽 맨 위에 8각형으로 나있으며 그 안에 우물 자 창살을 넣은 창은 중국인 건축자들이 해놓은 창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저러한 8각 창을 내놓으면 좋은 기운이 실내에 들어온다고 믿는 관습이 있다지만, 김 스테파노는 저 8각 창으로 들어오는 것은 햇살 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따지면, 이 성당은 한식-양식-중식이 섞인 건물이 된다.

 

한국에는 천주교 신앙이 퍼질 당시 서양식 건축 기술을 본 사람도 가진 사람도 없었다. 한국에 앞서 서양식 선교사들을 맞이하며 서양식 건축 기술을 익힌 중국 건축자들이, 유서 깊은 우리나라 성당들의 벽돌을 쌓은 경우는 여러 곳에 존재하며 이 성당도 그 중 하나다.

 

남녀 7세 부동석의 관습에 따라, 이 성당에는 본당 문을 열고 들어가 좌측에는 여자들이 앉고 우측에는 남자들이 앉곤 했는데, 맨 처음에 이 성당의 본당에 들어갔을 때 제단 정면이 보이지 않도록 쭈욱 기둥들이 본당 입구에 까지 서있는 것을 보며 의아했었다. 제단을 가리며 기둥이 있는 본당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전 11시는 이 성당의 미사 시간이었는데, 태평동에서 간 신자들은 애초에 김스테파노가 설명하는 것을 듣느라 죄다 우측에 앉아있었고, 김 스테파노의 설명이 끝나고 곧 이어진 나바위 본당 신부의 미사 집전 시각이 됐을 때, 본당 신부는 대전 태평동에서 와주신 신자분들 맞으시죠? 그런데 일부러 그쪽에 다 앉으신건가요?” 라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과거 이 본당에서는 남녀를 좌우로 갈라 앉히고 가운데 기둥을 쌓은 적이 있었기에 알고서 그리하신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는 말도 했을 정도로, 물론 다른 본당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지만, 이 본당도 남녀구분이 엄격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나바위 성당은 성모님, 김대건 신부, 정약실 신부 등등의 동상들이 여럿 서 있는데, 동상 받침대에 모후의 성모님등의 글을 궁서체로 동상마다 써놓은 것이 특색이다. 다른 성지 성당들은 한 옆에 표지판을 따로 세워 그 표지판에 설명을 하는 것과 딴판이다.

 

김 스테파노는 또한 이 성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목뼈가 모셔져 있다고 하면서, 그 당시 사람을 12등분하여 잘랐었기 때문에 목뼈가 따로 나온 것이라는 끔찍한 이야기도 해 주었다.

 

여담이지만, 이 성당은 주위가 해발 고작 40m의 산 -이 산의 명칭이 화산 (華山)- 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산은 도처에 어마어마한 덩치 크기의 바위들이 땅에 묻혀져 있다. 그래서 성당 뒤편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의 길 14를 돌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신자들이 행하며 갈 때, 각처 마다 다른 모습의 예수 상이 엄청난 크기의 천연 바위 위에 올려진 채 세멘트로 부착시켜 놓은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한 처에서 다른 처로 갈 때 길이 없으니 바위를 깎아서 계단 비슷하메 만든 곳을 올라가야하는 곳도 있었다.

 

그 외에서 이 산을 떠나 산자락 멀리에도 거대한 돌벽들이 서 있는가 하면, 신기한 형태의 거대 암석에 작은 나무들이 자라나 있는 진귀한 모습을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길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돌들이 흔하다. 그리고 '나바위' 라는 명칭은 납작바위가 많다하여 부르다가 나바위가 됐다고 한다.



사진: 1() 한옥으로 지은 유물 전시관 () 과거 병원으로 쓰였던 건물 전경. 사진: 2열 신부 요셉 장약실 공훈비 앞 뒷면, 성당 건물 좌측에서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사진 3() 김대건 신부 동상 () 평화의 모후 동상 사진: 4() 복자 안드레아 김신부 순교비 () 성지를 벗어나 그냥 길거리 황순옥이라는 음식점 맞은편 길가에 보이는 거대 괴석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sisaview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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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굿뉴스가 전하는 나바위 성지


간략설명 성 김대건 신부가 첫 발을 내디딘 축복의 땅

지번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

도로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전화번호 (063)861-8182

팩스번호 (063)861-9211

홈페이지 http://www.nabawi.kr/

전자메일 nabawi@nabawi.kr

관련기관 나바위성지 피정의 집 (063)861-9210

문화정보 사적 제318호 (성당과 사제관)

 

한국의 전통양식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독특하게 혼합된 나바위 성당 내부. 1987년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으며가운데 남녀 자리를 구분한 칸막이 기둥이 남아 있다.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금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평야 한가운데 사발을 엎어놓은 듯 작은 산이 있다우암 송시열은 이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해서 화산(華山)’이라 이름 붙였다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광장같이 너른 바위가 펼쳐진다이름하여 나바위’. 오늘날 화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 화산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나바위 성당은 이 너른 바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바로 이곳이 1845년 10월 12일 밤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다블뤼 신부와 함께 작은 배 한 척에 몸을 얹고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김대건 신부로서는 그 해 1월 육로로 한 번 입국한 데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밟은 고국 땅이었다그 때는 나바위 바로 발끝까지 금강물이 넘실거리며 흘렀다고 한다하구로부터 거슬러 올라오자면 황산포(지금의 강경)가 가장 큰 포구였고 나바위는 황산포를 3km 가량 남겨 둔 한적한 곳이다.


망금정과 순교기념탑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당시 고국 땅을 밟은 김 신부의 감회가 사뭇 어떠했을 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1784년 한국 교회가 세워진 후 첫 신부로 맞았던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6년 만인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했고그 뒤 33년간 목자 없는 양 떼였고 다시 세 명의 프랑스 신부들을 맞이했으나 그나마 1839년 기해박해 때 모두 잃었다그리고 6년 동안 또다시 한국 교회는 한 분의 사제도 없는 암흑기를 지내야 했었다.


목자를 기다리는 한국 교회의 양 떼들에게 세 분 성직자의 입국은 참으로 감격적인 사건이었으며 김대건 신부 자신도 그토록 목마르게 그리던 고국에서 첫 방인 사제로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나바위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1836년 12, 15세의 어린 나이로 고국을 떠나 다음해 6월 마카오에 도착한 뒤 그는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 1월 천신만고 끝에 홀몸으로 의주 변문의 수구문을 통해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3개월 뒤 다시 11명의 조선인 선원들과 함께 라파엘호라는 작은 목선을 타고 제물포를 떠나 6월 4일 상해에 도착김가항(金家港성당에서 8월 17일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그리고 그 길로 함께 길을 떠났던 조선인 선원들과 두 분 성직자를 모신 김대건 신부는 첫 방인 신부로 나바위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귀국한 지 1년 만에 관헌에게 붙잡혀 순교함으로써 비록 고국에서의 사목 활동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총명함과 굳건한 신앙은 한국 교회의 가장 든든한 초석이 되었다.


1955년 김대건 신부 시복 30주년을 기념해 나바위 성당 신자들이 화산 정상에 세운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나바위 성당은 1897년 본당 설립과 함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요셉 신부가 1906년에 시작하여 1907년에 완성하였다설계는 명동 성당 설계자인 프와넬(Poisnel) 신부가 했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으며 건축양식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한옥 형태를 취했다그 뒤 1916-1917년에 흙벽은 양식 벽돌로용마루 부분의 종탑은 헐고 성당 입구에 고딕식으로 벽돌을 쌓아 종탑을 세웠으며외부 마루는 회랑으로 바꿨다그리고 1922년 회랑 기둥 아랫부분을 석조로 개조하여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양식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독특하게 혼합된 나바위 성당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 7월 18일 화산 천주교회라는 명칭으로 사제관과 함께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다특히 성당 내부에는 전통 관습에 따라 남녀 자리를 구분한 칸막이 기둥이 그대로 남아있다한 때는 화산 성당이라 불렀으나 1989년부터 본래 이름을 따라 나바위 성당으로 부르고 있다.


1997년 1백주년을 맞은 나바위 성당은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민족과 애환을 같이했다. 1907년 계명 학교를 세워 1947년 폐교될 때까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애국 계몽 운동을 통한 구국에 앞장섰고신사참배에 저항하던 사제와 신자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6.25 당시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성당을 지킨 사제 덕분에 단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미사가 계속 봉헌된 기록을 갖고 있다당시 본당 주임인 김후상 신부는 양들을 버리고는 목자가 아니며미사를 지내다가 죽으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없다는 일념으로 피신하지 않고 미사를 계속 봉헌했다.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 베르모렐 신부가 화산 정상에 지은 망금정.나바위 성지에는 화산 북쪽 암벽에 금강을 바라보고 마애삼존불상이 새겨져 있다나바위 성당이 설립되기 전 금강을 오르내리며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들의 안녕을 기원하던 사람들이 새긴 것으로 여겨진다.


암벽 위 암반에는 1912년부터 매년 6월이면 이곳에서 피정을 하던 대구교구장 드망즈(Demange, 安世華주교를 위해 베르모렐 신부가 지은 망금정(望錦亭)이 있다그 옆 너럭바위 위에는 1955년에 세운 화강석으로 만든 4.5미터 높이의 김대건 신부 순교비가 있다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첫 발을 내디딘 곳임을 알리기 위해 김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와 똑같은 크기로 제작되었다.


성당 뒤편에는 야외제대와 평화의 모후 성모동산이 꾸며져 있고화산으로 오르는 오른쪽 입구에는 2007년 9월 봉헌된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서 있고성모동산 왼쪽으로 정상까지 이르는 길에서 야외 십자가의 길 14처와 2대 본당신부였던 소세(Saucet) 신부의 묘가 있다.


성당 내부에는 1995년 전주 교구청에서 옮겨온 성 김대건 신부의 성해(목뼈일부가 모셔져 있다제대와 그 위의 예수성심상촛대감실세례대 등은 중국 남경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해서 성당 건축 당시 들여와 조립 또는 설치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991년에는 200여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피정의 집을 건립했다또 피정의 집 앞에는 주차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2천 평 규모의 너른 운동장이 있어서 야영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2011년에는 성당 보수공사를 진행하였다. [출처 주평국하늘에서 땅 끝까지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4년 10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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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ISAVIEW 2016.12.13.   [시사뷰타임즈] 아래 <향토문화전자대전>에 설명이 나와있지만, 이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한 수녀는, “여러분들은 이곳이 설립되고 정확히 170년 39일 만에 찾아오싡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곳에는 산 밑에 십자가의 길 14처가 마련된 것과는 별도로 산 기슭에서 산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의 길 14처가 따로 마련돼 있다. 산 밑에 있는 것은 노약자를 위한 배려로 보인다.   이곳에 신부들을 인솔하고 온 대전광역시 태평동 본당 구본국 주임신부는 과거 이곳은 자연을 많이 살린 곳이었는데, ‘개발’이란 것이 돼 모두 변해있는 것이 좀 아쉽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각 본당에서 많은 신자들이 오기 때문에 피정지도 되며 단체 식사 시설도 마련돼 있다.   아직도 성지로서의 여러 시설을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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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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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골공소 [ 요골公所 ]
  • © SISAVIEW 2016.12.13.   [시사뷰타임즈] 요골 공소는 우리나라에 있던 공소가 오래되면서 허물어진 곳이 많고 남은 곳이 2~30곳 밖에 안되는데 그 중 하나이다.   이곳은 다행히 이곳 동네 주민이자 신자분들이 한옥집 두 채를 합해서 만든 것으로서 당시 작은 집에 살던 주민들이 이 정도면 대단히 큰 면적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이곳이 고향인 현 대전광역시 태평동 구본국 주임 신부는 말한다.   구 신부는 어릴 적 이곳에 살며 어머니와 함께 미사에 참여하곤 했는데, 당시엔 ‘남녀유별’이어서 신자가 신부를 바라보고 앉는 곳에서 볼 때 왼쪽엔 여자 신도들이 앉았고 오른쪽에는 남자 신도들이 앉았었다고 한다. 남녀 모두사 섞여 앉는 요즘과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구 신부는 이곳을 계속 손질하고 새로 고쳤기 때문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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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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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카타콤바, 신리 성지
  • 위로부터: 신리성지 표지, 손자선의 생가, 손자선의 생가에서 기도를 드리는  순례객들 © SISAVIEW   2016.11.15   [시사뷰타임즈] 신리 성지는 조선천주교회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곳으로서 아주 넓지는 앉지만, 손자선 생가가 그대로 보존돼있고, 성령(비둘기)를 안고 있는 철제 투명 소녀상이 있는가 하면, 간단한 집 모양으로 만든 성인들을 위한 기도처도 5곳이 있고, 십자가의 길 14처가 지름 1미터 가까운 바위에 예수가 판결을 받는 장면부터 차례로 14개 마려돼 있는데, 이 14처에 기도를 올리며 돌고 나면 신리성지를 모두 돌아본 것이 된다.   11월15일 신리성지 손자선 성인 생가에는 인부들이 과거 초가집이었던 것이 그대로 유지돼있는 상태에서 새로 볏짚을 입히고 있었다.   이곳의 중요성 때문에 전국 각 본당에서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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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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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머리 성지
  • © SISAVIEW   2016.11.15   [시사뷰타임즈] 원머리 성지는 매우 초라한 곳이다. 아무 시설도 돼있는 것이 없고 ‘원머리 성지’라는 푯말과 무덤 봉분 4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톨릭 추천 성지 속에 들어가 있으며 추천 성지 110곳을 모두 돌아 본 신자들이 가장 감명깊었다고 말하는 성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전교구 신평성당 원머리 성지 조성 사업을 담당하는 신자들이 나와서 이곳 성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면서 땅 1평 헌납을 호소하고 있다. 이곳을 순례한 신자들 중 너댓명이 기꺼이 한 평 가격 33만원(본래 땅값은 33만원이 넘지만, 예수가 33살에 죽었다해서 33만웡으로 맞추기로 본당 신부가 정했다고 한다)을 일년 동안 한달에 3만원 씩 내기로 약속을 하고 이름을 적었다. 원머리 성지는 가꾸고 성역화 해야할 우리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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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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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거산 순교 성지 제2 줄무덤
  •  © SISAVIEW    2016.11.13   [시사뷰타임즈] 성거산 순교 성지는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리 2에 있는 해발 570m 성거산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길을 내고 순례객들이 걸어다니며 기도도 하지만, 예전에는 완전 첩접산중이었고 다른 성지들은 입구와 출구가 있어서 도망갈 퇴로를 마련해 놓고 있었지만, 이곳은 퇴로가 없는 오지였다고 한다.   종교박해를 피해 이 산 속으로 들어온 신도들은 청정수가 흐르는 계곡 5개를 사이에 두고 집을 지었고 그들이 구운 것으로 보이는 옹기가 아직 남아있고 돼지감자도 많이 발견됐다고 한다.   충청남도에는 ‘내포’라는 곳이 있는데 ‘상부 내포’와 ‘하부 내포’로 나뉘는데, 하부 내포 성지 조성 사업에 대해서는 이미 ‘하부 내포 성지’에서 다룬 바 있고, 상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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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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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카풀라
  • 카르멜 산의 성모 스카풀라(좌) 가르멜 산의 성모 스카풀라 또는 갈색 스카풀라./ Wikipedia / sisaview     영어 [Scapulars: 원발음-스캐펼러]]   어깨 넓이의 천 조각을 앞뒤로 바닥까지 내려뜨려 입는 외투이며 일부 수도회의 수도자들이 걸치는 옷이다. 스카풀라는 처음에는 수도자들이 일할 때 착용한 앞치마였으나 지금은 수도복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카풀라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상징한다.   평신도들이 수도회 제3회에 가입하면서 크게 작아진 스카풀라를 걸쳤는데, 그들은 가로세로 2인치×3인치 크기로 만든 두 개의 작은 천 조각을 끈으로 묶어 목에 걸었다. 그들은 외투 속에 이 스카풀라를 착용함으로써 수도회에 속한다는 것을 드러냈다. 보통으로 스카풀라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어떤 성인 또는 신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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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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